"어미 새가 둥지를 떠나면 아기 새가 슬픈 법이지."
2005년 나온 영화 전우치에서 화담 역을 맡은 김윤석이 무심히 내뱉은 대사에는 세상 이치가 녹아 있다.
부모의 빈자리는 누구도 채울 수 없거니와 시간이 지날수록 커지기 마련이다.
초대 구단주를 잃은 삼성라이온즈의 처지도 그럴 것이다. 가을 야구를 지켜만 봐야 하는 것도 괴로운 데다 이건희의 부재와 코로나19 등 대내외 환경마저 녹록지 않아 자칫 '둥지마저 잃을 수 있다'는 불안감에 떨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라이온즈에 대한 이건희 회장의 사랑은 각별했다. 일본 유학 시절부터 야구를 좋아하기 시작했던 그는 귀국 후 라이온즈의 창단에 깊이 관여, 초대 구단주를 맡아 20년 가까이 사자들을 키워냈다.
특히 어린이 등 아마야구 저변 확대에 공을 들였다. 초·중·고 야구대회를 열며 홈런왕 이승엽, 투수 배영수 등 어린 사자들을 길러냈다. 이들이 마음껏 훈련할 수 있도록 경산 라이온즈 볼파크 등 통 큰 선물을 주기도 했다.
아기 사자들이 성장해 '삼성 왕조'를 이룩했음은 물론이다. 삼성은 2000년대 들어서 세 번(2002, 2005, 2006년)이나 우승했다. 2002년 우승했을 때는 이 회장이 삼성그룹 직원에게 '삼성야구단에서 경영을 배워라'고 할 정도로 그룹 내 위세도 높았다.
2014년에는 사상 첫 4회 연속 통합 우승이라는 금자탑을 쌓기도 했다. 돌이켜보면 삼성 팬이라서 참 행복했던 시절이었다.
라이온즈가 약해지기 시작한 것은 공교롭게도 이 회장이 2014년 5월 10일 급성 심근경색으로 쓰러진 뒤부터다. 물론 병상에서도 라이온즈에 대한 이 회장의 사랑은 여전했다. 보름 후, 넥센전에서 이승엽이 홈런을 터뜨리자 의식 없이 병상에 누워 있던 이 회장이 깨어나기도 했다.
'마누라와 자식을 빼고 다 바꿔라'며 조직을 다그쳤지만 라이온즈에 대한 사랑과 투자만큼은 한결같았던 이건희다운 모습이었다.
그렇지만 사자 가문의 몰락까지는 막지 못했다. 투자가 줄어들면서 '종이 사자'로 전락하기 시작했다.
박석민, 최형우, 차우찬 등 삼성 왕조의 주역들도 팀을 떠났다. 음주운전, 원정 도박 등 선수들의 부적절한 처신도 자주 언론에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라이온즈는 하위권을 전전했고 올해 가을 야구도 무산됐다.
삼성은 '왕조 부활'을 외치며 올 시즌을 시작했다. 그러나 말뿐이었다. 스토브리그에서부터 천하태평이었다. 이렇다 할 전력 보강을 하지 않았다. 거포 타자인 다린 러프의 공백을 메워줄 타자 부재에다 용병 농사도 반타작만 한 상태였다. 지난해보다 약해진 전력으로 순위를 올리는 것은 어불성설이었다.
내년이라고 다를까. 15승을 올린 뷰캐넌 등 몇몇 선수를 제외하고 믿을 만한 카드가 많지 않다. 이번 스토브리그에서 트레이드 및 FA 대어를 낚아와야 할 처지다.
성적 하락보다 더 비관적인 것은 우승을 위한 어떤 시도도 불사하던 투지와 집요함이 사라졌다는 점이다. 평소 스승의 말을 듣지 않고 사고를 치던 전우치는 스승이 죽은 후 정신을 차렸다. '거문고를 쏴라'는 스승의 말을 명심, '악의 화신' 화담과의 싸움에서 이길 수 있었다.
"스포츠를 통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또 하나의 교훈은 어떤 승리에도 결코 우연이 없다는 사실이다.
천재적인 재능을 타고난 선수라도 노력 없이 승리할 수 없다. 모든 승리는 오랜 세월 선수·코치·감독이 삼위일체가 돼 묵묵히 흘린 땀방울의 결실이다." 라이온즈는 이건희 회장이 남긴 말을 가슴속 깊이 새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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