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포항 수성사격장 집회서 쫓기듯 떠난 국방부 차관

박재민 차관 "한미동맹·국가안보 차원 사격 훈련 중단 어렵다"…주민들 "단상서 내려와라"
이강덕 포항시장 "포천 사격장으로 돌아가면 해결될 문제…국방부 입장 바꿔야"

4일 오후 박재민 국방부 차관이 포항시 남구 장기면 수성사격장 인근에서 진행된 주민 집회를 찾아 입장을 설명하고 있다. 배형욱 기자
4일 오후 박재민 국방부 차관이 포항시 남구 장기면 수성사격장 인근에서 진행된 주민 집회를 찾아 입장을 설명하고 있다. 배형욱 기자

"수성사격장에 대한 질문에 답변을 갖고 온 게 아니라면 단상에서 내려가라."

박재민 국방부 차관이 4일 오후 2시 경북 포항시 남구 장기면 수성리 수성사격장 인근에서 진행된 주민들의 '미군 아파치헬기 사격훈련 중단, 수성사격장 폐쇄' 집회를 찾았다. 하지만 주민 설득은커녕 갈등만 더 키운 상황이 됐다.

주민 200여 명은 사격장 폐쇄 구호를 외치며 박 차관을 기다렸다. 그러나 박 차관은 폐쇄 또는 이전을 요구해온 주민들의 기대와는 달리 "한미 동맹 문제와 국가안보 측면에서 사격훈련을 중단할 수 없다. 깊이 사죄 드린다"고 말했다. 이에 화가 난 한 주민이 단상에 설치된 마이크 확성기를 껐고, 주민들은 군 당국에 대한 비난을 쏟아냈다.

박 차관은 "수성사격장은 유일하게 미군 아파치헬기가 훈련할 수 있는 곳이다. 민·관·군 협의체를 구성해 대화하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실망한 주민들은 대화를 거부했다. 박 차관이 단상에 올랐다 쫓기듯 내려오기까지 10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박 차관은 현장을 벗어난 자리에서 "주민들에게 먼저 알리지 않고 미군 헬기 훈련을 진행한 부분에 사죄 드린다. 군과 주민이 서로 만족할 수 있는 좋은 안이 만들어지길 희망한다"고 했다. 오는 16일부터 4주간 일정이 잡힌 헬기 훈련도 진행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도 전했다.

박 차관은 이후 이강덕 포항시장과 민·관·군 협의체 구성을 논의코자 포항시청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 자리에서 이 시장은 사격훈련장 유지안을 받을 생각이 없다고 밝혔다.

그는 "사격장은 폐쇄·이전해야 한다. 주민에게 한미 동맹 차원의 사격훈련을 이해해달라고 하는 것은 정부가 할 얘기가 아니다. 정부는 그런 문제를 풀라고 존재하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포천에 있는 로드리게스 사격장으로 돌아가면 해결될 문제다. 국방부가 입장을 바꿨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이에 박 차관은 "이 시장이 관심을 두면 협의도 하고 아이디어도 낼 수 있을 것"이라며 "훈련을 안 하기로 했다고 하면 얼마나 좋겠나. 어려우니 이러는 것"이라고 털어놨다. 이 자리는 양측 분위기가 점차 격앙되면서 비공개로 전환됐다.

장기면 주민들은 60여 년간 수성사격장에서 진행된 군 당국의 각종 사격훈련을 참아온 상황에서 지난 2월 사전 협의 없이 미군 헬기 사격훈련이 진행되자 강하게 불만을 드러내고 있다.

4일 오후 포항시 남구 장기면 수성사격장 인근에서 진행된 주민 집회를 방문한 박재민 국방부 차관이 단상에서 내려와 주민의 항의를 듣고 있다. 배형욱 기자
4일 오후 포항시 남구 장기면 수성사격장 인근에서 진행된 주민 집회를 방문한 박재민 국방부 차관이 단상에서 내려와 주민의 항의를 듣고 있다. 배형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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