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판 위에서 웃는 시민들의 얼굴을 보며 기쁜 마음으로 20년이 훌쩍 넘는 세월 동안 얼음을 손질했습니다." 25년간 대구실내빙상장 얼음을 지켜 온 정빙원 김용근(67) 전 실장은 지난 10월 30일 퇴임식을 갖고 정빙차에서 내려왔다. 재임시절 그가 직접 얼리고 다듬은 빙상에서 임효준, 진선유, 김소희, 최은경 등 수많은 대구의 선수가 실력을 갈고닦아 전세계를 휩쓸었다.
4일 오후 대구 북구 대구실내빙상장에서 만난 김 전 실장은 "대구시민의 안전하고 즐거운 공간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노력해왔다"라며 이같이 말했다. 1995년 대구실내빙상장이 만들어지면서 정빙원으로 취직한 그는 40대 초반부터 제2의 인생을 시작했다. 앞서 지역의 한 농산물 저장창고에서 10년간 근무해 온 김 실장은 섬세함을 무기로 정빙원에 합격했다. 농산물은 습기가 많거나 온도가 급격하게 변화할 경우 변질 우려가 있어 섬세한 관리가 요구된다.
그는 "양파나 마늘 등을 변질되지 않도록 하려고 온도를 변화시켜 보는 등 각종 실험을 해봤다"며 "이곳에서 다양한 온도에서 변화하는 얼음의 특징을 습득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우연한 기회에 새롭게 생기는 빙상장에서 냉동기술자를 모집한다는 소식을 들은 지인이, 채용 소식을 전해줘 빙상장에 관심을 갖게 됐다"라며 "20대 후반에 배운 공조냉동기술과 고압가스 관련 기술로 대구시민을 위해 일할 기회를 얻어 항상 감사하게 생각하고 살아왔다"고 말했다.

그는 빙상장에 들어서면 옛 추억에 잠긴다. 김 실장은 "깨끗이 정비한 빙상을 보면 어린 시절 논에 물이 얼어붙으면 타고 놀던 앉은뱅이 썰매가 생각이 난다"라며 "아무도 밟지 않은 첫 길을 간다는 것은 언제나 설레는 일"이라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빙상장에 들어가면 화를 내는 사람은 없어지고 하얀 얼음처럼 맑아져 모두 환하게 웃는다"라며 "즐거워하는 사람들을 보면 나도 모르게 웃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대구실내빙상장을 전국 최고의 빙질을 자랑하는 곳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해왔다. 김 실장은 "일반인뿐만 아니라 선수들까지 함께 사용하는 공간이기 때문에 바람만 불어도 미끄러져 나갈 정도로 완벽해야 한다"라며 "얼음의 온도, 수평, 두께 등 단 하나라도 어긋나선 안 된다. 빙판에서 용납할 수 없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20년 넘게 빙상장을 관리해 온 배테랑인 그에게도 대프리카로 불리는 대구의 한여름 열기는 힘들게 만든다. 그는 "대구는 워낙 더운 도시다 보니 여름에 일하기 힘들었다. 최대한 여름에도 빙질을 높이기 위해 각종 노하우를 동원해 최선을 다했다"라며 "하지만 외부온도가 38도까지 올라가는 날에는 냉동설비를 최대한 가동해도 얼음이 녹는 일이 발생해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고 회상했다.
하루에도 10~12회 정도 정빙차에 오르던 그는 직접 스케이트를 타고 얼음 상태를 확인하거나 손님들의 안전을 위해 안전요원 역할도 해왔다. 김 실장은 "일을 시작한 뒤 1년 정도 흐른 뒤 직접 스케이트를 타며 얼음 상태를 확인하면 더 좋을 것 같았다"며 "코치 선생님들의 도움으로 스케이트를 배워 좀 더 섬세한 작업을 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빙질관리를 마친 뒤 건강도 챙길 겸 노란조끼를 입고 시민들의 안전을 위해 돕다 보니 어느새 24년 동안 스케이트를 타왔다"고 소개했다.
열정이 넘치는 김 실장은 쇼트트랙 선수들을 위해 특허를 내기도 했다. 그는 "12년 전 근무를 하다가 쇼트트랙 연습 시 안전을 위해 설치하는 안전보호대를 선수의 어머니가 직접 빙상장에 들어가 옮기는 것을 보고 자동화 장치를 생각하게 됐다"며 "모든 것이 자동화돼 가는 시대에 전혀 스마트하지 않은 환경을 보며 바뀌어야 한다는 생각에 '안전보호대자동이송장치'를 개발하게 됐다"고 털어놨다.
퇴직한 그이지만 앞으로도 대구실내빙상장 발전을 위해 격려와 자문을 아끼지 않을 예정이다. 김 실장은 "오랫동안 작업을 해오며 익힌 빙질 관리 노하우를 언제든 대구실내빙상장 발전을 위해 봉사하고 싶다"고 전했다.
댓글 많은 뉴스
권영세 "이재명 압도적 득표율, 독재국가 선거 떠올라"
이재명 90% 득표율에 "완전히 이재명당 전락" 국힘 맹비난
이재명 "TK 2차전지·바이오 육성…신공항·울릉공항 조속 추진"
이재명, 민주당 충청 경선서 88.15%로 압승…김동연 2위
전광훈 "대선 출마하겠다"…서울 도심 곳곳은 '윤 어게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