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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옥렬의 매일춘추] 하나의 눈과 다수의 눈

김옥렬 현대미술연구소대표

김옥렬 현대미술연구소 대표
김옥렬 현대미술연구소 대표

지금 우리의 삶은 언제 어디서나 다수의 눈에 감시되고 있다. 아침에 집을 나서면 곳곳에 설치된 감시카메라는 나도 모르는 가운데 나를 본다. 하나의 눈과 다수의 눈들이 수없이 교차하는 가운데 생각할 시간도 없이 인간의 무의식을 파고든다. 최첨단의 정보화 사회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온라인을 통해 자유와 통제 사이를 넘나들며 생각보다 빠른 속도로 일상의 습관뿐 아니라 가치관까지 빠르게 변화시킨다.

집을 나서는 순간부터 다수의 눈(CCTV)은 하나의 눈을 주시한다. 공공의 장소뿐 아니라 실내 어디를 가더라도 수많은 눈이 나를 지켜보고 있다. 보는 것은 카메라지만 보이는 것은 익명의 나 혹은 너다. 감시카메라의 눈은 불안이 잠재된 현대인의 눈이자 정보화 사회의 병리적인 눈들로 진화한다. 이 거대한 도시 공동체 속에서 감시카메라의 눈들은 안전지대를 만들기 위해 언제 어디서나 익명의 군중을 보고 있다.

이 눈들의 영역은 감시권력이었던 '판옵티콘(panopticon, 1791년 제레미 벤담이 감옥 개혁을 위한 모델로 제안한 '판옵티콘)'을 떠올린다. 'pan'은 그리스의 '모두'를 'opticon'은 '본다'는 뜻을 가진 합성어다. '모두를 본다'는 감시카메라는 피감시인에게 감시당하고 있다는 감시권력을 내면화한다. 권력의 시선으로 정보의 독점을 취하는 빅브라더(big brother)라는 시선의 권력처럼, 통제를 위한 법이 필요한 이유다.

컴퓨터가 발달한 오늘날의 정보화시대의 감시카메라는 위험과 안전의 경계에서 일반화되어 사적공간까지 침투해 있다. 감시카메라는 안전과 감시, 그 사이에서 작동하는 일상의 눈들이다. 현대 정보화 사회에서 이 감시의 눈들이 가닿는 곳의 경계에 있는 인간의 눈, 그 감시의 시선 너머 시각예술은 하나의 시선과 다수의 시선이 교차하는 지점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을까.

시각미술은 다양한 방식으로 권력이 가진 공적이거나 사적인 문제를 다루어 왔다. 정보화 사회에 산재한 감시카메라를 보는 예술가의 시선이 포착하는 것은 권력의 시선에 무한 노출된 현대인의 심리 혹은 정신을 탐구하거나 권력의 시선에 내재된 갈등이거나 혹은 감시용 카메라에 무방비상태로 포착되는 현대인의 자화상이자 공동체 속에서 고립된 개인의 사회학적 초상이다. 이러한 예술가의 응시는 복잡하게 얽힌 다층적 시선의 관계 속에서 발생하는 감시 혹은 엿보기라는 관음증적인 눈과 호기심에 편승하는 심리를 보여주기도 한다.

하나의 눈과 다수의 눈 사이에는 넓고 깊은 바다처럼 수많은 생태계가 산재해 있다. 이런 최첨단기술로 명멸하는 수많은 눈들 속에서 정보윤리의 법제화는 느리다.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에 인간의 눈이 보고 감각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두가 보고 보이는 감시의 시대에 맞는 진지한 질문이 필요해 보인다. 하나의 눈과 다수의 눈이 만나는 사이버 유목민의 눈에 어른거리는 희망하나, 죽은 시인의 사회가 아닌, 최첨단의 정보시대에 새로운 시인의 탄생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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