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원법은 '이 법에 따른 감사를 방해한 자'에 대해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한다. 감사원의 '월성원전 조기폐쇄 결정의 타당성 점검(국회감사요구)' 보고서에는 감사방해죄의 모델(?)들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다. 산업통상자원부 공무원들의 조직적 감사 방해 행위는 한 편의 소설로 손색이 없다. 산업부 공무원들은 처음 감사원 요구에 따라 제출한 문서에서 대통령 비서실 보고 문서 등 대부분의 문서를 누락했다. "그 뒤 산업부는 감사원의 추가 자료제출 요구가 2019. 12. 2.(월)로 예상되자, 같은 해 12. 1. 23시 24분 36초부터 다음 날 01시 16분 30초까지 약 2시간 동안 사무실 컴퓨터에 저장된 월성1호기 관련자료(총 122개 폴더)를 삭제한 후, 감사원에 제출하지 않았다." 일요일 밤 관련 파일을 무더기로 삭제한 것이다. "산업부에 중요하고 민감하다고 판단되는 문서는 우선적으로 삭제, 처음에는 삭제 후 복구되어도 원래 내용을 알아볼 수 없도록 파일명 등을 수정하여 다시 저장 후 삭제, 그러다 삭제할 자료가 너무 많다고 판단하여 단순 삭제 방법 사용, 이후에는 폴더 자체를 삭제"했다고 이어진다.
범죄 영화의 한 장면이지 공직자들의 행위라고는 상상하기 어렵다. 영혼이 없다는 비아냥을 듣기는 해도 자칭 타칭 엘리트인 대한민국 중앙 부처의 공무원들이다. 적어도 공직자가 해서는 안 될 짓임을 당연히 인식했을 것이다. 보고서는 월성 원전 조기 폐쇄를 위해 경제성 평가를 조작한 과정도 자세히 묘사하고 있다. 한동안 유행(?)하던 직권남용죄의 증거들이 수두룩하다. 경제성이 '불합리하게' 낮게 평가되었다는 감사원의 표현은 가장 온건한 단어이다. 대전지검의 수사는 이런 범죄 행위들을 수사하는 것이다. 범죄의 단서가 드러났어도 모른 체한다면 검찰의 존재를 부정하는 직무 유기가 아닐 수 없다. 사실 감사원이 고발 조치를 했어야 마땅하다. 고발을 하지 않은 데 대해 최재형 감사원장은 이렇게 말했다. "다수의 감사위원들이 추가 수사를 하면 범죄가 성립될 개연성이 있다는 데 동의했다." 노골적인 압박 탓에 최 원장이 일정한 타협을 한 것으로 볼 수 있는 대목이다. 보고서 자체가 말해 주기 때문이다.
'정치 수사'라는 검찰 비난도 근거 없는 억지이다. 감사원의 보도 자료 마지막에 주목할 문구가 있다. "참고로, 문책대상자들의 자료삭제 및 업무관련 비위행위 등과 관련하여 수사기관에 수사참고자료 송부 예정"이라는 대목이다. 야당의 고발 이전에 검찰이 수사 자료를 확보하고 있었다는 말이다. 감사 자체도 국회의 요구에 의한 것이고 범죄를 수사하는 게 검찰 수사의 성격이다. 감사 보고서도 그 점을 명확히 하고 있다. "정부의 에너지 전환 정책, 원전 조기폐쇄 추진 정책결정의 당부는 이번 감사의 범위에 해당하지 않음." 따라서 검찰의 수사를 탈원전 정책에 대한 수사, 에너지 전환 정책 수사라고 하는 건 무리한 규정이다. 검찰의 국정 개입이란 말도 있을 수 없다. 경제성 평가 '과정'에서 범죄가 있었는지가 초점이다. 검찰의 수사는 불필요한 논란을 자초하지 않도록 그에 집중해야 한다. 정치권의 과도한 개입은 그런 점에서 자제해야 마땅하다. 여당의 위기감을 모르는 바 아니다. 자칫 탈원전 정책의 정당성까지 부인될 수도 있는 사안에 경고성 메시지를 발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검찰이 정책의 타당성까지 검증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수사는 범죄행위를 밝히기 위한 것일 뿐이다. 정책 수사라는 말로 검찰을 공격한다면 내용을 잘 모르는 국민들조차 감사원 감사, 검찰 수사의 의미를 확대 해석하게 만드는 것이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격앙된 반응 역시 마찬가지다.
검찰 수사를 비난하는 사람들에게 감사원 홈페이지에 공개된 보고서를 읽어 볼 것을 권한다. 보고서를 읽어 보지 않은 사람, 읽고 싶지 않은 사람이라면 입을 다물었으면 좋겠다. 보고서를 읽고 나서도 검찰의 정치 수사라고 하는 사람은 대한민국 주권자임을 포기하는 것이다. 주권자를 농락하는 공직자들을 단지 우리 편이라고 감싸려고만 한다면 주권자의 자격이 없다. 요설을 퍼뜨리는 정치인도 장관도 '보고서 읽기' 권고 대상에 해당함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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