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사라면 합리적이고 부정하지 않은 사람을 말하는 것이겠죠. 주민들의 그런 칭찬에 항상 부합하려고 스스로를 많이 다잡습니다."
복덕규(60) 경북 포항시의회 의원(북구 두호·환여동)은 현재 무소속 의원이다. 그에게는 신사, 엘리트 사회운동가, 복 대감 등 따라다니는 수식어들이 많다. 그는 이런 별명들에 맞게 의정활동을 하려고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그런데 그는 지금의 점잖은 이미지와는 다르게 노동운동가 출신이다. 그가 처음 정계에 뛰어든 것은 1980년대를 휩쓴 노동운동에 의해서라고 한다.
그는 고교 졸업 후 1978년 옛 강원산업(현 현대제철)에 입사했다. 현장노동자로 근무하며 저녁마다 동료들과 사회운동 연구 소모임도 가졌다.
그러다 1987년 강원탄광에서 촉발된 노동자 대투쟁 열풍이 포항까지 전파되며, 강원산업의 첫 노동조합 설립을 위해 나서게 됐다.
투쟁활동을 하던 그를 회사에서는 일방적으로 해고 통보했고, 다시 1년 간의 소송으로 중앙노동위원회로부터 복직 판결을 받았지만, 회사가 거부하며 좀처럼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당시 그는 함께 해고당한 동료들과 수십m 높이의 굴뚝까지 올라가며 점거 농성을 벌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30대의 혈기왕성한 시기였죠. 제 자신의 부당과 싸우다보니 서서히 사회 전반의 부조리에 눈을 뜨는 계기가 되는 시기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본격적으로 노동운동에 뛰어든 그는 2006년 뜻하지 않게 지방의원에까지 도전하게 된다.
시민후보를 찾던 지역 사회단체의 추천으로 민주노동당에 발을 딛게 됐다. 복 의원은 2006년 제5대 포항시의원으로 당선되고 이어서 6대 시의원까지 민주노동당 소속으로 활동했다.
하지만, 2011년 민주노동당이 통합진보당으로 재창당하는 과정에서 과감히 탈당을 결심했다. 정당이 추구하는 바가 평소 자신의 방향성과 가치관 등에 맞지 않다는 판단에서였다.
"정당에 속해있으면 자신의 편이 있다는 안도감이 크죠. 반대로 기초의회에서 정당과 계파에 휘둘리지 않고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하는데는 제약이 있습니다. 차라리 무소속으로 제 뜻을 펴고 싶었던 마음이었습니다."
비록 정당을 나왔어도 복 의원에 대한 지역민들의 관심은 전혀 줄지 않았다. 제7대, 8대를 무소속으로 내리 당선하며 벌써 4선의 중진 의원이 된 까닭이다.
이러한 시민들의 성원에 힘입어 복 의원은 '영구임대아파트 공동전기요금 지원', '자전거 이용 활성화를 위한 조례' 등 서민생활과 직결되는 많은 조례를 남겼다.
특히, 그가 발의한 '포항시 소음·먼지·악취 줄이기 실천조례'는 최근 한양대학교 지방자치연구소에서 진행한 '제1회 이달의 모범조례'에 초대 수상자로 선정되는 영예까지 안았다.
무소속으로 시의원 경력의 절반을 채운 지금, 그는 강점을 살려 지역의 중재자로서의 역할을 정치 목표로 삼고 있다.
복덕규 시의원은 "많이 부족하지만, 정당정치를 탈피하고 시민들만 바라보고 의정활동을 하겠다"며 "단지 꿈이 있다면 포항시의회 최초의 무소속 의장에 당선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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