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종문의 한시산책] 밤에 풍교에 배를 대고(楓橋夜泊·풍교야박) - 장계

달 지고 까마귀 울고 서리 하늘 가득한데 月落烏啼霜滿天(월락오제상만천)

강 단풍 고기잡이 불빛 시름으로 졸며 보네 江楓漁火對愁眠(강풍어화대수면)

고소성 밖에 있는 한산사에서 姑蘇城外寒山寺(고소성외한산사)

한밤중 치는 종소리 나그네 배에 들려오네 夜半鐘聲到客船(야반종성도객선)

가을도 이미 깊을 대로 깊었고, 밤도 이제 어지간히 깊었다. 과거시험에 벌써 세 번이나 고배를 마시고 고향으로 돌아가던 한 나그네가, 나뭇잎 같은 작은 배를 소주(蘇州)의 교외 풍교(楓橋)에다 댔다.

그때 갑자기 산 너머로 달이 넘어가면서, 천길만길의 캄캄한 어둠이 왈칵 들이닥쳤다. 그 어둠 속에서 까마귀 떼들이 가윽- 가윽- 음울하게 울어대고, 서리가 내릴 듯 싸늘한 밤공기가 온천지 간에 가득 차 있다. 이것이 첫 구절 일곱 자의 내용이다. 정말 놀랍게도 불과 일곱 자 속에 무려 세 개의 완전한 문장이 들어가 있고, 시각과 청각과 촉각적 이미지들이 이미지의 범벅을 이루고 있다. 어둡고 음산하고 으스스한 느낌을 주는 쓸쓸하고 삭막하기 짝이 없는 풍경 앞에서, 낯선 타향에 배를 대는 나그네로서는 근심과 우수에 잠기지 않을 도리가 없다.

이미 밤이 깊었기 때문에, 나그네는 지금 뱃속에서나마 불편한 대로 잠시 눈을 붙이고 싶다. 하지만 온몸을 엄습하는 바로 그 근심과 우수 때문에, 그는 숙면 상태에 들지 못하고 뱃전에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다. 졸다가 문득 바라보면 캄캄한 어둠 속에 강가 단풍나무들의 검붉은 자태가 어렴풋하게 보이고, 고기잡이배의 깜빡깜빡 비치는 불빛들이 꿈결처럼 아련하기만 하다. 비몽사몽의 상태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는데, 고소성 밖 한산사에서 정말 난데없이 동종(銅鐘)을 친다. 한밤중에 울려 퍼지는 동종소리가 물을 건너서 배를 타고 있는 나그네의 귓바퀴를 한 바퀴 돌자, 우수에 찬 나그네의 가슴이 그만 찡하다 못해 짠해져 온다. 작품 속의 나그네는 누구인가? 중당(中唐) 시대의 이름 없던 시인 장계(張繼)가 바로 그 사람이다.

하지만 장계는 나그네의 우수를 절묘하게 포착한 이 한 편의 빼어난 시로 수천 편의 그저 그런 시를 남긴 시인들보다도 오히려 더 유명해졌다. 남아 있는 시가 얼마 되지도 않은 그가 중국문학사에서 차지하는 위상은 미미하지만, 그래도 이 작품은 중국문학사 전체를 대표하는 명작 중의 명작이다. 막상 가보면 볼거리도 별로 없는 한산사가 이 한 편의 시로 소주를 대표하는 관광지가 되어 세계의 관광객들을 우르르 끌어모으고 있으니, 정말 대단하다 한 편의 시여!

이종문 시조시인, 계명대 한문교육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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