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임언미의 찬란한 예술의 기억] 각별한 예술혼의 도시

구상 시인의 시집 『초토의 시』 표지화는 전쟁기 대구에 머물렀던 이중섭이 그린
구상 시인의 시집 『초토의 시』 표지화는 전쟁기 대구에 머물렀던 이중섭이 그린 '아이들의 유희'이다

임언미 대구문화 편집장
임언미 대구문화 편집장

우리가 옛사람을 기리는 것은 그들이 단순히 옛사람이기 때문은 아니다. 말 그대로 '아무것도 없던' 궁핍의 시절, 무에서 유를 일군 공은 그들을 단순한 '옛' 사람이 아닌 '특별한' 사람으로 기억하고 기리게 만든다. 그 '특별한' 사람들 중에는 예술인들이 많다. 남들보다 한발 앞서 현실 너머의 세계를 내다보던 그들, 그들이 남긴 흔적들을 따라가 보면 그들이 꿈꾼 문화예술로 풍요로운 미래상이 보인다. 한발 앞서 갔기에 때로는 현실성 없음으로 오인돼 따가운 시선을 받기도 했지만 같은 꿈을 꾸는 동지들이 있어서 의지가 됐다.

특히 일제강점기를 넘어 6·25전쟁, 그리고 경제 성장기에 이르기까지 이른바, 격동기를 지나온 예술가들은 서로 어떻게 의지하며 활동했을까. 개화기 이후 쏟아진 새로운 문물들, 새로운 종교와 함께 들어온 서양음악, 서양화 등의 기법은 예민한 영혼의 예술가들을 성장하게 만들었다. 근대기 예술가들은 그들의 새로운 도전을 이해해 줄 동료를 찾아 나섰다. 음악가 박태원과 박태준, 화가 서동진과 이인성, 민요시인 윤복진, 시인 이상화와 백기만, 서화가 죽농 서동균 등이 그들이다. 이들은 서로의 예술적 재능을 흠모하며 교류했다.

일제강점기 빼앗긴 들을 노래하던 이상화 시인은 이웃에 살던 서화가 죽농 서동균의 재능을 빌려 글씨를 써서 선물하곤 했다. 그 이야기를 증명하는 작품 두 점이 현재 대구에 있다. 작곡가 박태준이 곡을 쓰고 동요시인 윤복진이 노랫말을 쓴 동요집 「물새발자욱」의 표지화는 화가 이인성이 그렸다. 그들은 이인성이 운영하던 대구 최초의 한국인 다방 '아루스다방'과 기업인 이근무가 운영하던 무영당 서점(백화점)에서 주로 모였다. 이곳은 당대 예술가들이 모여 빼앗긴 나라를 걱정하고 서로가 지향하던 예술 세계를 나누던 사랑방이었다. 박태준과 윤복진은 여러 작업을 함께 했는데 그들이 만든 또 다른 동요집 「중중때때중」 출판 기념으로 무영당 2층에서 찍은 사진이 남아 있다.

일제강점기가 끝나자마자 이어진 6·25전쟁 혼란 속에서도 예술 활동은 이어졌다. 특히 피란 도시가 된 대구에는 중앙 무대의 예술인들이 몰려들면서 대구는 각별한 예술혼의 도시가 되었다. 6·25전쟁기 대구에서 출판된 구상 시인의 시집 「초토의 시」 표지화는 전쟁기 대구에 머물렀던 이중섭이 그린 '아이들의 유희'이다. 이중섭 화가와 그를 후원한 구상 시인과의 일화는 잘 알려져 있다.

1세대 남성 현대무용가 김상규의 무용 발표회에는 여러 예술인들이 함께했다. 김상규는 특히 전란 속에서 친분을 나눈 구상·모윤숙·유치환·마해송 시인 등의 작품을 무용으로 만들기도 했다. 그의 공연에는 조지훈 시인과 구상 시인이 종종 함께했다. 이 두 시인이 김상규의 무용 공연을 보고 '정진하는 인간상을 보여줬다'는 찬사를 보냈다는 기록이 있다.

특히 구상 시인과 김상규 무용가의 관계는 돈독했다. 구상 시인이 신병 치료를 위해 왜관에 머물 때도 김상규 무용가를 만나기 위해 대구를 오갔다고 한다. 1950, 60년대 어려움 속에서도 꾸준히 발표 무대를 이은 김상규 무용 발표회 팸플릿을 보면 구상 시인이 몸담았던 신문사가 후원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6·25전쟁이 발발하던 해 군악대로 입대했던 이기홍 지휘자는 군악대 생활을 통해 전국의 음악인들과 교류하며 음악 전 분야를 공부했다. 제대 후 현악기 연주자들을 모아 대구현악회 창단 공연을 준비할 때, 손수 포스터를 그려준 사람도 친구인 서양화가 백태호 화백이었다. 오페라 도시를 꿈꾸며 오페라 운동에 전 생을 바친 음악가 이점희 선생이 기획한 오페라의 포스터 원화도 서양화가 백낙종 선생이 그려줬고, 이 자료는 대구시 문화예술 아카이브에 보관돼 있다.

여러 사례를 모아 놓고 보니 이런 협업은 예술의 속성이자, 각 장르 예술 영역의 확장이라고 이야기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코로나 시대라는 또 다른 격동기를 살아가는 현재의 예술가들도 동료들과 의지하며 이 시기를 넘어가고 있다.

대구 중구 수창동의 대구예술발전소는 여러 장르 예술가들이 함께 입주해 교류하는 대표적인 장소이다. 옆방에 입주한 설치 작가의 도움을 받아 무대 세트를 만들어 춤을 추는 무용수, 화가의 작품에서 받은 영감으로 전시장에서 멋진 음악을 들려주는 연주자들…. 먼 훗날 돌아보면 이들의 창작의 공유도 큰 예술적 성취로 기억될 수 있을 것이다. 구상 시인의 시집 표지에 실린 이중섭의 그림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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