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의 삶은 곡선이다
장독대 옆에 앉아 있던 참새가
길 건너 전깃줄까지
직선으로 몇 번 왕복할 동안
나비는 갈지자 날갯짓으로
샐비어와 분꽃 사이를 맴돈다
아버지는 바람같이 대처를 돌아다녔고
엄마는 뒷산 손바닥만 한 콩밭과
앞들 한 마지기 논 사이를
나비처럼 오가며 살았다
나비의 궤적을 곧게 펴
새가 오간 길 위에 펼쳐본다
놀라워라 그 여린 날개로
새보다 먼 거리를 날았구나
엄마가 오갔던 그 길
굴곡의 멀고 긴 아픔이었구나
차라리 부럽다. 바람같이 대처를 돌아다니고 나비처럼 콩밭과 논 사이를 오가던 삶은. 살림살이 고된 내 누이들은 참새의 직선도 나비의 곡선도 아닌 지그재그 갈팡질팡 대형마트 매장 진열대 사이를 오가며 하루 여덟 시간 삶의 발자국을 찍고 있다. 소음 속 기계 앞에 꼼짝도 않고 붙어 서서 내 형제들은 제품을 만들고 있다.
이 지랄 맞은 자본주의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농경사회에선 그래도 논과 밭을 오가며 발자국을 찍었건만 지금은 대형 매장에서 싸늘한 시멘트 바닥에 하루 종일 비정규직의 발자국을 찍어야지만 살아갈 수 있다. 차라리 '굴곡의 멀고 긴 아픔'을 걸었던 어머니의 발자국이 행복했다는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직장과 집, 학교와 집, 이 다람쥐 쳇바퀴가 결국 현대인의 삶이라면 너무나 끔찍하다.

시인 유홍준: 1998년 『시와반시』로 등단. 시집 『喪家에 모인 구두들』 『나는, 웃는다』 『저녁의 슬하』 『북천-까마귀』 『너의 이름을 모른다는 건 축복』이 있다. 시작문학상 이형기문학상 소월시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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