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중기의 필름통] "모든 범죄가 실시간 생중계된다"…영화 '인퍼머스'

영화 '인퍼머스' 스틸컷
영화 '인퍼머스' 스틸컷

'모든 범죄가 실시간 생중계된다.'

11일 개봉한 '인퍼머스'(감독 조슈아 콜드웰)는 지긋지긋한 현실을 벗어나기 위해 강도짓을 하는 20대 여자의 위험한 질주를 그린 영화다. 자신의 범죄를 SNS에 실시간 중계하면서 유명해지고 싶다는 욕망까지 충족시킨다.

'팔로워 49명'. 주인공 아리엘(벨라 손)은 따분한 이 동네를 벗어나는 것이 꿈이다. 엄마는 형편없는 새 아빠에 빠져 있고, 친구들도 하나같이 철없고 덜 떨어지는 애들 뿐. 아리엘은 유명해져 많은 돈을 버는 것이 꿈이다. 그러나 현재 인스타그램의 팔로워는 49명. 시골 소녀의 변함없는 일상이 주는 성적이다.

'뉴 팔로워 147명'. 어느 날 클럽에서 남자를 유혹하다 그의 여자 친구와 몸싸움을 벌이게 된다. 그녀의 거친 폭력 장면이 인스타그램에 올라 일파만파 퍼지면서 일탈의 충격을 경험한다. 할리우드로 가기 위해 한푼 두푼 모은 돈이 사라진 것을 알게 된 아리엘은 집을 뛰쳐나온다. 그리고 감옥에 다녀온 적이 있는 딘(제이크 맨리)과 함께 도망간다.

'팔로워 3천 명'. 돈이 필요한 둘은 강도짓을 하게 된다. 총을 겨누고 윽박지르며 돈을 요구하는 딘을 아리엘이 찍어 인스타그램에 올린다. 순식간에 팔로워가 늘어나면서 아리엘은 희열을 느낀다. 그렇게 원했던 유명세와 돈을 너무나 쉽게 얻었던 것이다.

'팔로워 178만 명'. 이후 그녀의 돌출적이고 공격적인 욕망은 끈이 풀리고, 마약처럼 범죄를 반복한다. 이제 강도짓은 돈이 아닌 유명세를 위한 일이 되고, 폭주기관차를 탄 둘은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는다.

'인퍼머스'는 유명(famous)해지고 싶은 주인공의 욕망이 악명 높은(infamous) 범죄로 변질되는 과정을 그린 액션영화다. SNS가 일상을 좌우하는 현실의 뒤틀린 욕망도 터치한다. 희망 없는 현실을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을 치면 칠수록 둘은 더욱 큰 수렁에 빠진다. 잠깐 느끼는 희열은 허상일 뿐, 더 이상 내일이 없는 극단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다.

'인퍼머스'는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1967)의 인스타그램 버전과도 같은 영화다. 1930년대 대공황기의 보니와 클라이드도 더 이상 희망이 없는 내일을 포기하고, 오늘을 위해 대담한 강도행각을 벌인다.

영화 '인퍼머스' 스틸컷
영화 '인퍼머스' 스틸컷

배우이자 감독인 조슈아 콜드웰은 뮤직비디오처럼 감각적인 영상으로 영화를 끌어간다. 아리엘이 총을 구입해 신상을 자랑하듯 스마트폰으로 찍는 장면이나, 강도 행각의 스틸 사진 등은 모두 인스타그램 유행을 반영한 것이고 화면 가득 큰 자막으로 인스타그램의 반응들을 묘사한 것도 SNS 시대의 영상 문법이다.

'인퍼머스'는 피 묻은 돈이 흩날리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기둥 뒤에 앉아 있는 아리엘이 스마트폰을 보면서 얘기한다. "나는 운명을 믿어. 이 우주가 나를 위한 계획이 있다고 믿어. 이게 내 운명일까?"

아리엘은 간곡히 원하면 우주가 답을 해줄 것이란 생각을 가지고 있다. 자신의 행동이 모두 우주의 섭리의 하나이며 자신도 그런 운명이라는 것이다. 우주까지 끌어와 심오한 질문과 성찰을 고민을 하는 듯 하지만, 영화의 과정과 결과는 참으로 가볍고 경박하다.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가 당시 시대성이 잘 반영된 문제작이었다면 '인퍼머스'는 자극이 필요한 현대 젊은 청춘들의 돌출적이고 병적인 집착을 그린 액션 영화다. 시대에 대한 반항이 아닌 자신들의 처한 현실을 고함과 주먹질로 풀어내고 잠시 만족하다 포기해 버린다.

'미드나잇 선'(2017)에서 청순한 매력을 보여줬던 벨라 손은 시종 판에 박힌 연기로 영화를 가볍고 의미 없는 것으로 전락시키는 데 노력(?)한다. 따분한 일상을 부수고, 사회질서를 흔드는 쾌감을 노린 일탈도 아니다.

인스타그램에 올리기 위해 정성스럽게 음식을 장식하지만, 정작 그 맛이나 향기는 관심 없는 듯한 그런 영화다. 그 또한 SNS 세태의 풍자일까? 100분. 청소년 관람불가.

문화공간 필름통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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