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0년의 화두는 단연 '코로나19'다. 나날이 늘어나는 확진자와 사망자로 온 세상이 패닉에 빠져 있다. 인류 역사를 뒤흔든 전염병의 대유행은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 아니다. 이 책은 인류의 문명사를 개관하며 홍역, 페스트, 천연두 등 온갖 감염병으로 고통 받던 인류가 어떻게 이를 극복했는지 들려준다. 그리고 이런 노력을 비웃듯 새롭게 등장한 감염병도 소개한다.
◆감염병과 인간, 불편하지만 오래된 동행
이 책은 19세기 외딴 섬에서 유행한 홍역 이야기로 시작한다. 홍역이 지속적으로 유행하려면 일정한 장소에 수십만 이상의 사람이 몰려 있어야 한다. 인류 최초의 문명이 감염병과 함께 시작된 건 그 때문이다. 이후 여러 질병이 인간 사회에 떠돌며 숱한 생명을 앗아갔고, 그때마다 역사의 흐름은 몇 번이나 굽이치며 전혀 생각지도 못한 곳에 이르렀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인류도 부단히 노력했다. 항생제와 백신을 개발하며 치명적인 질병을 역사의 뒤안길로 보냈다. 특히 20세기 냉전기에 동서 양 진영이 손을 맞잡고 이뤄낸 천연두 퇴치는 인류사에 길이 남을 쾌거였다. 마침내 감염병과의 전쟁에서 승기를 잡았다고 생각한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그 뒤로도 에볼라, 에이즈, 사스 등 새로운 병이 속속 등장했고, 현재는 '코로나19'가 발생해 인류를 시험대 위에 올려놓았다.
◆인간과 바이러스, 왜 공존할 수밖에 없는가?
성인 T세포 백혈병 바이러스는 평균 잠복 기간이 50~60년으로 감염자의 약 5%만이 발병한다. 사실상 무해하다고 할 수 있다. 물론 '그래도 완전히 없는 편이 낫지 않나?'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바이러스는 비슷한 지위를 가진 다른 종류의 바이러스와 경쟁한다. 다시 말해, 일단 체내로 들어온 무해한 바이러스는 몸 한구석에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다른 유해한 바이러스가 들어올 자리를 없애버린다는 뜻이다.
만일 성인 T세포 백혈병 바이러스가 완전히 박멸된다면 어떻게 될까? 이 바이러스를 무력화하기 위해 우리 몸이 오랜 시간에 걸쳐 만든 면역체계는 무용지물이 될 것이고, 이 바이러스가 사라진 자리에 새로운 바이러스가 침투할 가능성도 있다. 그 바이러스는 어쩌면 점잖은 전임자와는 비교도 못할 만큼 치명적일 수도 있다.
저자는 "질병은 박멸만이 답이 아니다"고 말한다. 일말의 위험도 감수하지 않으려는 마음이 더 큰 위기를 불러올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따라서 "인간이 질병에 적응해 살아가듯 질병 역시 그 나름의 방식대로 인간에 적응하며, 그 과정에서 공존의 길이 발견될 수 있다"고 말한다. 저자는 결론적으로 "바로 이 길을 찾아내는 것이야말로 인류가 나아가야 할 길"이라고 강조한다.
◆한국 독자들에게 보내는 특별한 편지
저자는 한국어판 출간을 기념해 한국 독자들을 위한 서문에서 "이번 코로나 팬데믹이 세계화 시대 주요국가로 부상한 이후로 한국이 처음 경험하는 '감염병에 의한 생명의 위기'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으며, 종종 위기가 찾아오겠지만 결국에는 슬기롭게 극복해 나가리라 믿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번 코로나 팬데믹을 통해 문명과 감염병에 관해 궁극적인 의문을 품어보길 소망한다"고 했다.
인류는 과학기술의 발전에 힘입어 백신과 치료제를 개발하고 환경을 지배하는 종으로 발돋움했다. 20세기부터 여러 전염병을 퇴치하고 팬데믹을 차단했다. 저자는 자신도 "지난 30년 동안 북미와 아프리카를 포함해 전 세계를 돌며 치명적인 전염병을 막기 위해 노력해왔다. 하지만 이번 코로나 팬데믹을 경험하며 인류와 감염병의 관계에 전부터 품어왔던 의문이 더욱더 깊어졌다"고 했다.
이런 의문을 품으면서도 자신 역시 "의료인으로서 눈앞에서 죽어가는 사람을 결코 외면할 수 없기 때문에,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변이하는 코로나 바이러스들과 오늘도 싸우고 있다"고 했다.
저자는 편지 말미에 이렇게 말했다. "인간이 자연의 일부인 이상, 전염병은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감염병과 어떻게 공생하고 어떻게 잘 어울리며 살아갈 것인가…그것을 다시 한번 고민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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