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청라언덕] 마당집의 꿈, 후회 안해도 될까?

지난 3일 오후 대구 수성구 범어네거리 일대에 들어선 고가의 주상복합 아파트 모습. 김영진 기자 kyjmaeil@imaeil.com
지난 3일 오후 대구 수성구 범어네거리 일대에 들어선 고가의 주상복합 아파트 모습. 김영진 기자 kyjmaeil@imaeil.com
장성현 경제부 차장
장성현 경제부 차장

마당 딸린 이층집은 오랜 꿈이었다. 온종일 해가 들고 바람이 통하는 거실, 언제든지 사뿐사뿐 걸으며 흙 내음을 맡을 수 있는 작은 마당.

수년 동안 시간이 날 때마다 도심 주택가를 다녀보고, 대구 외곽의 전원주택단지도 둘러보며 대리만족만 하다가 올해 초 드디어 결단을 내렸다. 교외에 땅을 구해 집을 짓고 부모님까지 3대가 함께 살기로 했다.

수십 차례의 발품 끝에 땅을 구했고, 설계가 진행 중이다. 직접 집을 지으면 10년은 늙는다더니 아직 넘어야 할 고개가 첩첩 쌓여 있다.

아파트에서 벗어나기로 했지만 누군가 뒷덜미를 당기는 느낌이 든다. 하루가 다르게 오르는 도심 아파트값을 보며 자산 형성의 기회를 날리는 게 아닐까 하는 불안감이다.

희한하게도 도심을 떠나기로 결심한 이후부터 대구 집값이 천정부지로 올랐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지난달 대구의 주택종합매매가격은 전월 대비 0.75% 상승했다. 특히 수성구는 전국 최고 수준인 1.91%나 올랐다. 수성구에서도 범어동 일대 신축 아파트들은 한두 달 만에 1억~2억원이 뛰었고, 호가는 10억원을 훌쩍 웃돈다.

전세 시장도 혼돈 그 자체다. 전·월세 신고제, 전·월세 상한제, 계약갱신청구권제 등을 핵심으로 하는 임대차 3법 이후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은 역대 최악이다.

KB국민은행이 발표한 월간 KB주택시장 동향에 따르면 10월 대구의 전세수급지수는 197.1로 2003년 7월 이후 최고였다. 수치가 높을수록 공급 부족이 심각하다는 뜻이다.

일례로 수성구 두산동 967가구 규모의 주상복합아파트는 전용면적 84㎡ 아파트 전세가가 두 달 만에 1억원이 올랐고, 그나마 매물도 2건에 불과하다.

상황이 이러니 부동산 투자 열풍은 잦아들지 않는다. 얼마 전 만난 지인은 올해에만 대전과 부산, 경기도 광명에 투자용으로 집을 샀다고 했다. 재건축 사업이 기대되는 오래된 아파트와 집값 상승이 예상되는 수도권 아파트다. 올 들어 아파트 매매가격이 크게 뛰면서 지인은 10억원가량의 투자 수익을 기대하고 있었다.

또 다른 지인은 "씀씀이가 큰 주변 사람들이 대부분 부동산 투자로 돈을 벌었다"고 했다. 갭투자를 하거나 투자 수익이 기대되는 동네 아파트를 매입한 뒤 단기간에 시세 차익을 보고 빠지는 식이라고 했다. 양도세를 내더라도 수천만원의 수익을 남긴다는 것이다.

이쯤 되면 부동산 시장 과열과 투기꾼을 잡겠다며 23차례나 내놓은 정부의 부동산 대책은 '백전백패'다. 세 부담을 늘리고 대출을 규제하는 대책이 나올 때마다 집값은 비이성적으로 뛴다. 보유세와 거래세, 양도소득세를 한데 묶은 우리나라 부동산 세금이 이미 OECD 평균을 훌쩍 넘는데도 그렇다.

시장 참여자들은 정책 의도와 반대로 움직이고 있다. 정부가 각종 규제로 집값을 잡겠다며 신호를 보내지만 수요자들은 '집값이 더 오르기 전에 빨리 집을 사야겠다'고 해석한다. 집값이 뛰니 다급해진 수요자들은 영혼까지 끌어모아 집을 사고, 무주택자들은 대출 규제에 막혀 발만 동동 구른다.

대구의 주택시장이 공급 확대를 통해 안정을 찾으려면 최소 2년은 걸릴 것이다. 최근 2, 3년간 쏟아졌던 분양 물량의 입주 시기까진 기다려야 한다. 그러나 애써 기다린 뒤에도 비싼 그 집에 들어가 살 수 있다는 보장이 없다.

정책은 조화와 균형이 중요하다. 단기 조절에 급급해 모든 수단을 무분별하게 쏟아버리면 오히려 심각한 부작용에 직면한다. 마당 집의 꿈이 정부의 연이은 헛발질에 아쉬운 선택으로 끝나지 않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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