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탈원전 신음하는 경북] "보상금도 못 받고…주민만 새우등"

윤영곤(55) 천지원전대책위 사무국장 "보상금 탓에 가족간 갈등 겪는 가구도"
"집 넓히고 벌금 150만원, 과태료 年 48만원"

윤영곤(55) 영덕군 천지원전생존권대책위원회 사무국장이 자녀 방으로 쓰고자 지은 가건물을 가리키고 있다. 윤 사무국장은
윤영곤(55) 영덕군 천지원전생존권대책위원회 사무국장이 자녀 방으로 쓰고자 지은 가건물을 가리키고 있다. 윤 사무국장은 "집이 전원개발 예정구역에 포함돼 재산권이 제한됐으나 집이 비좁아 자녀가 머물 공간이 없어 증축했다"면서 "내 집에 건물을 지었다는 이유로 검찰 조사를 받고 과태료까지 내는 신세가 됐다"고 말했다. 홍준헌 기자 hjh@imaeil.com

"10년 가까이 집수리조차 제대로 못했습니다. 정부가 손바닥 뒤집듯 정책을 바꾸면서 원주민들은 보상금도 못 받고 그야말로 '새우등' 터진 꼴입니다."

영덕군 석리 천지원전생존권대책위원회 윤영곤(55) 사무국장은 마당에 지은 가건물을 가리키며 한숨을 쉬었다. 16㎡짜리 가건물을 지은 뒤 그는 검찰 조사까지 받아 벌금 150만원을 납부했고, 매년 과태료 48만원을 부담하고 있다.

집 부지가 원전 예정부지로 고시돼 개발행위가 제한된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점점 커가는 4남매의 생활 공간 확보를 위해 어쩔 수 없이 가건물을 지었다.

'석동마을'로도 불리는 영덕군 석리는 지난 2012년 9월 마을 내 55가구가 통째로 천지원전 예정 부지에 포함됐다. 금방 보상이 끝날 것처럼 보였지만 사업은 차일피일 미뤄지다 결국 2018년 6월 '탈원전 정책'의 타겟이 됐다. 8년 동안 개발행위 제한으로 집수리조차 못한 채 보상을 기다리던 주민들은 '낙동강 오리알'이 된 셈이다.

윤 사무국장은 "원전 부지로 고시된 건 2012년이지만 원전 건립 이야기가 처음 나온 2008년부터 따지면 약 12년간 집수리나 개축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다"며 "유치원생이던 첫째가 중학생이 됐는데, 방이 좁아 집을 늘리려고 해도 방법이 없었다. 화장실 지붕 석면 슬레이트조차 제거 공사를 할 수 없는 지경"이라고 하소연했다.

윤영곤 씨가 자녀 4명이 쓸 방으로 지은 17㎡(5평) 규모 가건물 내부 모습. 홍준헌 기자 hjh@imaeil.com
윤영곤 씨가 자녀 4명이 쓸 방으로 지은 17㎡(5평) 규모 가건물 내부 모습. 홍준헌 기자 hjh@imaeil.com

원전과 탈원전을 오락가락한 정부 정책은 금전적 피해를 넘어 지역 사회에도 해악을 끼쳤다. 보상금을 노리고 들어온 외지인들과 평소 고향엔 관심도 없던 가족들이 찾아와 석리 마을을 조각조각 찢어놓은 것이다.

원전과 탈원전을 오락가락한 정부 정책은 금전적 피해를 넘어 지역 사회에도 해악을 끼쳤다. 보상금을 노리고 들어온 외지인들과 평소 고향엔 관심도 없던 가족들이 찾아와 석리 마을을 조각조각 찢어놓은 것이다.

그는 "장남이 부모님을 모시고 살았는데, 원전 보상금을 노리고 자식들이 찾아오면서 형제나 부모 간에 재산 싸움까지 벌어져 풍비박산난 집이 5, 6가구가 된다.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그는 "워낙 시골이어서 돈만 주고받고 소유권 이전 등기를 하지 않은 집들도 있었는데, 보상금을 노리고 옛 소유자나 그 후손들이 찾아오면서 사실상 쫓겨나다시피 한 집들도 있었다"며 "한수원은 원전이 들어오면 실거주자에게 모두 보상해줄 수 있다고 했었는데, 원전이 무산됐으니 마을만 무너진 꼴"이라고 했다.

천지원전 예정부지에 포함됐던 경북 영덕군 석리 일대 전경. 홍준헌 기자 hjh@imaeil.com
천지원전 예정부지에 포함됐던 경북 영덕군 석리 일대 전경. 홍준헌 기자 hjh@imaeil.com

윤 사무국장을 포함한 석리 원주민들은 산업부와 영덕군에 '원전을 짓지 않더라도, 그동안의 피해에 대해서는 납득할 만한 보상을 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지난해 6월 보상금 대신 가구당 1천600만원 수준으로 공공요금이나 집수리 비용 등 '지원금'을 받는 것으로 산업부, 한수원과 잠정 합의했지만 고시 해제를 두고 산업부와 영덕군 간 의견 차이가 생기면서 지금까지 최종 결정이 나오지 않고 있다.

최근 주민들이 결정이 미뤄진 '1년 반' 기간에 대해 추가 보상을 요구했지만, 한수원 측에서 '이미 이사회 보고가 끝났다'며 난색을 표해 실제 보상까지는 기약이 없어진 상황이다.

그는 "사유 재산권조차 행사하지 못하는 불편에 조각난 마을 공동체까지, 주민들은 이미 10년 가까이 많은 고통을 겪었다. 마을 이장은 생업을 포기하고 세종시에서 1인 시위를 할 정도"라고 하소연했다.

기획탐사팀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