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어역 4번 출구에 있습니다'
라디오 광고에서 흔히 나오는 문장이다. 그만큼 우리는 위치를 알리기에 전쟁을 치른다. 모든 것이 온라인화 되고 있는 온택트 시대에도 말이다. 특히 법률 서비스가 그렇다. 온라인, 전화 상담도 충분히 가능한 분야이다. 하지만 결국 의뢰인은 변호사의 온기를 느끼고 싶어 한다. 위로받고 싶어 한다. 해결책을 만나고 싶어 한다.
내가 광고를 맡고 있는 법무법인이 이사를 갔다. 그동안 발걸음을 해주신 의뢰인도 제법 계셔서 고민이었다.
'어떻게 새 주소를 알려드리지?'
그렇다고 '범어역 4번 출구에 있습니다'라는 말은 죽기보다 싫었다. MBC 사거리, 죽전 사거리, 황금 사거리라 말하는 순간 남들과 같은 브랜드가 될 것 같았다. '어떻게 표현할까?'가 고민일 땐 나는 항상 고객으로 돌아가 본다. 내가 고객이 되면 정답이 번쩍하고 눈앞에 나타나는 경우가 많았다.
우선 2호선 지하철을 탄다. 범어역에 내린다. 몇 번 출구인지 찾는다. 지하철 표지판을 보고 4번 출구의 계단으로 올라선다. 지상으로 올라왔다. 걷는다.
아이디어는 여기에 숨어 있었다.
'법무법인 OO는 범어역 4번 출구에서 백 아흔 다섯 걸음에 있습니다!'

내가 고객이 되어 본 성과였다. 고객이 되니 이런 카피가 저절로 보였다. 어떻게 하면 고객들이 더 많은 발걸음을 하고 싶게 만들까란 고민의 결과물이었다. OO 사거리에 있다면 그냥 위치만 말하는 것 같다. 하지만 발걸음이란 워딩을 쓰면 왠지 발걸음을 해달라는 말처럼 들린다.
이제 우리가 기대하는 건 고객들의 발걸음이다. 그냥 오길 바라지 않는다. 범어역 4번 출구에서 한 걸음 한 걸음 세며 와주길 바란다. 광고의 내용이 진실인지 아닌지 확인하는 차원에서 말이다.
변호사를 찾는 의뢰인이라면 지금 가시밭길을 걷는 사람일 것이다. 그렇지만 이 법무법인을 찾는 의뢰인이 그렇지 않았으면 좋겠다. 발걸음을 새며 그것이 가시밭길인지도 몰랐으면 좋겠다. 그 발걸음 끝엔 그 문제를 해결해줄 변호사를 만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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