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미국에서 열린 '2020 빌보드 뮤직 어워드'에서 그룹 방탄소년단(BTS)은 4년 연속 '톱 소셜 아티스트' 수상의 영광을 안았다. 그 자리에서 BTS는 해외 밴드와 온라인 협업으로 화려한 퍼포먼스를 선보였는데, 이색적인 것은 무대 대형화면에 인천국제공항 터미널 내부 전경과 세계 주요 도시가 목적지로 표시된 출국 전광판, 비행기 등이 등장했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 소속사 측은 코로나 팬데믹으로 단절된 세계가 다시 연결되기 바라는 마음을 담아 퍼포먼스를 기획했다고 한다.
여권 하나만 있으면 전 세계 어디든 갈 수 있었던 코로나19 이전의 세상이 너무나 그리워서인지 몰라도 BTS의 인천국제공항 퍼포먼스는 더욱 애틋하게 다가왔다. 사실 해외여행은 찌든 직장생활, 육아에 지친 일상, 치열한 삶의 경쟁에서 벗어나 잠시나마 행복할 수 있었던 최고의 '힐링' 중에 하나였다. 특히 빈부격차, 공정문제, 저성장 시대가 주는 피로 속에서 가성비나 가심비만 따진다면, 해외여행 만큼 좋은 '피로회복제'도 없었다. 물론 지금도 제한적이나마 해외여행이 가능하지만 자가격리 2주가 있는 이상, 정상적인 해외여행은 불가능하다.
과거, 우리나라는 불온사상 통제나 외화유출 방지 등을 이유로 해외여행을 제한하고, 단순 관광목적으로는 여권조차 만들 수 없었던 시절도 있었다. 그러나 1989년 해외여행 완전자유화 이후 대학생들의 배낭여행과 연수는 붐을 이뤘고, 많은 여행사와 패키지 상품들이 생겨났다. 그 결과, 여행 전문기업도 탄생했고, 해외여행과 관련된 모든 과정에서 파생되는 일자리도 창출되었다.
해외여행을 가려면 의류, 의약품 등 각종 여행물품 구입은 물론, 여행자보험도 가입하고, 환전도 해야 한다. 또, 공항을 오고가기 위해 택시나 리무진 버스도 타야 하며, 면세점도 이용한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해외여행은 경제활성화와 소비촉진에 큰 기여했고, 각종 부가가치 창출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어 유관산업을 성장시키는 데에도 한 몫 했다.
그러나 코로나19는 모든 것을 멈추게 만들었다. 단지 비행기만 멈춘 것이 아니었다. 항공사 매각설, 항공종사자 무급휴직, 여행사 도산, 면세업 불황 등의 뉴스들은 도미노처럼 항공산업에 대한 불안의 그림자를 계속 드리웠다. 특히 코로나19로 인한 휴직에 힘들어 하며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내 장기는 기증해달라'는 유서를 남긴 채, 극단적 선택을 한 20대 항공 승무원의 슬픈 뉴스는 정말 큰 충격이었다.
현재 항공업계는 여객기를 화물기로 개조하고, 무착륙 관광비행 등 체험 비행상품으로 버티고 있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파격적인 대책이 마련되지 않는 한, 항공사와 여행사의 줄도산은 자명하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가 온다해도 항공수요가 회복되는데, 상당기간이 소요될 것이다. 특히 저비용항공사가 몰락하고 여행업 생태계가 무너질 경우, 저렴한 가격으로 해외여행을 하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다. 이로 인해 과거처럼 해외여행이 돈 많은 부유층의 전유물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존재한다. 최근 몇 년 동안 '일본에 초밥 먹으러 가자'라는 말이 유행하고, 스킨스쿠버를 즐기러 필리핀이나 태국에 다녀오는 식의 동남아시아 여행이 가능해진 것도 저비용항공사의 노선 확대와 저렴한 경비 등이 그 이유였다.
그동안 코로나19라는 괴물과의 그 힘든 싸움보다 '방역이냐 경제냐'의 정책적 판단과 대응이 더 힘들었다는 의견이 많았다. 마치 우산과 부채를 파는 두 아들을 둔 어머니의 심정과도 같았을 것이다. 특히 항공업은 국가적 방역을 넘어 글로벌 상황까지 고려해야 한다는 점에서 더 애가 탔다. 현재 각국의 항공사들은 대출 등 정부지원에 의지한 채, '비즈니스 트랙'(기업인 특별 입국절차) 도입에 이어 '트래블 버블'(Travel Bubble : 방역 우수국가 간 의무격리 면제)이 속히 추진되기를 바라고 있는 실정이다.
팬데믹 장기화로 '위드(with) 코로나'가 불가피해진 상황적인 측면과 최근 코로나 백신에 대한 희소식들은 '트래블 버블'의 신속한 추진을 통한 선제적 대응을 하자는 목소리에 힘을 싣고 있다. 더욱이 이번 기회에 발틱 3국(리투아니아·에스토니아·라트비아)의 '발틱 트래블 버블'처럼 우리나라도 중국·일본·대만 등과 '동아시아 트래블 버블' 체제를 구축하여 벼랑 끝에 선 항공업계의 활로를 찾는 동시에, 동아시아 각국 간에 해묵은 감정까지 다 해결하는 외교적 성과로 이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사실 우리나라에서 해외여행이 주는 의미는 개인에게도 각별하다. 북쪽으로 갈 수도 없는 고립된 섬 같은 반도라는 지정학적 위치와 숨 막히는 경쟁중심의 사회구조 속에서 해외여행은 하나의 오아시스 역할을 했다. 또, '딸 낳으면 비행기 타고, 아들 낳으면 버스 탄다'는 말이 있듯이 비행기를 타는 것은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그만큼 해외여행은 많은 이들의 버킷리스트(죽기 전 하고 싶은 일)였으며, 심지어 공무상 해외여행을 자주 가는 공무원이나 정치인들은 밉상의 대상이 되기까지 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SNS 텍스트를 분석해 보면, 언제나 행복도가 가장 높게 나오는 특정 지역이 있다고 한다. 바로 인천국제공항이 있는 영종도이다. 해외여행을 떠난다는 그 설렘과 기대감이 어떤지 겪어본 사람들은 충분히 공감할 것이다.
코로나 시대를 살고 있는 지금, 그 이전의 평범한 일상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를 알게 되었다. 심심하고 무료했던 그저 그런 날들을, 삶에 지쳐 울고 싶었던 그저 그런 날들을, 설렘과 즐거움으로 보상해 주던 해외여행의 시간들!
그 해외여행이 주었던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 하루 빨리 우리의 일상시간으로 돌아와 주었으면 좋겠다. 하루 빨리 코로나19에서 벗어나, 해외여행이라는 행복추구권을 행사하고 싶다.
이상철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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