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반친소] '타란튤라' 무시무시한 독거미? 알고보면 연약한 존재

[내 반려동물을 소개합니다] 독거미 타란튤라
입은 작은 자극에도 쉽게 상처…배는 잘못 만지면 펑 하고 터져
크게 올드윌드·뉴윌드 종 구분…독이 약한 뉴윌드 입문용 제격

타란튤라는 관리하는 시간이 다소 적게 든다. 수분·먹이 급여는 일주일에 한 번이면 되고, 체취도 없다.
타란튤라는 관리하는 시간이 다소 적게 든다. 수분·먹이 급여는 일주일에 한 번이면 되고, 체취도 없다.

타란튤라는 독거미의 일종이지만 성격이 온순한 편이라 애완용으로 많이 기른다.
타란튤라는 독거미의 일종이지만 성격이 온순한 편이라 애완용으로 많이 기른다.

자취를 시작하며 겪는 어려움이 무엇일까 생각해 봤을 때 결코 빠지지 않는 키워드는 '벌레'이다. 부모님과 함께 살 때면 "아빠"라는 외마디 비명으로 어느 정도 상황을 해결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혼자다. 파리채로 때려잡든, 두꺼운 책으로 눌러 잡든 살생에 익숙해져야만 한다.

"제 손에 죽은 거미만 수십 마리가 넘을 거예요. 사과부터 해야 할 것 같아서..." 기자의 고해성사에 이인태(36) 씨가 당황스러운 웃음을 터뜨린다. 인태 씨는 대구 동구 봉무동에서 타란튤라(tarantula) 거미 20여마리와 동거 중이다. 타란튤라는 독거미의 일종이지만 성격이 온순한 편이라 애완용으로 많이 기른다.

◆독 있어도 인기있는 반려동물 "해치지 않아요"

긴 다리를 자유자재로 움직이며 독을 쏘아 대는 거미는 공포 영화의 단골 소재다. 대체로 약자보단 강자, 주연배우보단 악역을 도맡는다. 하지만 인태 씨는 어쩐 일인지 타란튤라를 '유약함의 대명사'라 표현한다. "공포 영화 주인공이라고요? 얼마나 가녀리고 연약한 녀석들인데..."

인태 씨는 식사 시간마다 사육장을 주의 깊게 살핀다. 조금이라도 크거나 딱딱한 먹이를 씹으면 입을 다치는 타란튤라 때문이다. 작은 개체들은 입 내부가 연약해 작은 자극에도 상처가 쉽게 생긴다. 배 부분도 어찌나 약한지 잘못 만지면 펑 하고 터져 버린다. 벨벳같이 부드러운 배렛나루에 취했다간 타란튤라를 잃을 지도 모른다. 하다 하다 사랑을 나누다 죽는 경우도 있다. 수컷과 암컷이 교미하는 것을 '메이팅'이라고 하는데, 이때만 되면 반려인들은 가슴이 쿵쾅댄다고. 은밀한 장면을 지켜보게 된다는 기대감이 아니라 수컷이 죽을까 봐 하는 노파심 때문이다. 메이팅에 고통을 느낀 암컷들은 관계 도중 이빨을 드러내곤 하는데, 그 이빨에에 꽂혀 수컷들은 종종 사망한다. 이 무슨 황망한 죽음이란 말인가.

"너무 약한 타란튤라가 불쌍해서 조물주가 독 쏘는 능력이라도 주신 거 같다니까요" 조물주가 하사한 것치고는 독도 그리 강하지 않다. 대략 말벌과 비슷한 수준의 독이다. 사람에게 치명적이지는 않지만 통증, 발적, 붓기, 알레르기 반응을 유발한다. 하지만 올드월드 종은 다르다. 타란튤라는 크게 올드월드 종과 뉴월드 종으로 구분되는데, 올드월드는 독도 강하고 움직임도 빠르다. 일반 사람들이 생각하는 사악한(?) 거미의 모습을 조금 더 갖췄다고 보면 된다. 반려동물로서 타란튤라는 뭐니 뭐니해도 뉴월드다. 뉴월드는 온순하고 독도 약한 편이라 타란튤라 입문용으로 인기가 좋다.

이인태 씨는 타란튤라 20마리와 동거 중이다. 집에 있던 쪽방을 아예 타란튤라 방으로 꾸몄다.
이인태 씨는 타란튤라 20마리와 동거 중이다. 집에 있던 쪽방을 아예 타란튤라 방으로 꾸몄다.
타란튤라에게 급여하는 먹이를 위한 사육 공간도 추가적으로 필요하다. 밀웜, 귀뚜라미 등 곤충의 모습..
타란튤라에게 급여하는 먹이를 위한 사육 공간도 추가적으로 필요하다. 밀웜, 귀뚜라미 등 곤충의 모습..

◆한 마리에서 멈출 수 없어 "입양 기회 항상 노려요"

타란튤라 반려인들 사이 유명한 말이 하나 있다. '타란튤라를 키워보지 않은 사람은 있어도 한 마리만 키워본 사람은 없다' 인태 씨도 한 마리로 시작해 어느덧 20마리 넘게 사육 중이다. 집에 있던 쪽방은 아예 타란튤라 방으로 꾸며졌다. 타란튤라 한 마리만 두고 보면 쪽방 하나를 뺄 만큼 사육공간이 크게 필요하지 않다. 하지만 타란튤라는 동족 포식을 하는 특성상 합사가 불가능하다. 한 마리 한 마리 다른 사육공간을 마련해야 한다. 1인 1실을 내어주다 보면 반려인들의 집은 어느새 타란튤라 공간으로 가득 찬다. "100마리 넘게 키우는 반려인들은 자기가 자고 눕는 곳을 뺀 모든 공간을 타란튤라에게 내어줍니다. 타란튤라 집에 사람이 얹혀사는 수준이죠. 아주 지극정성입니다" 이뿐만이 아니다. 타란튤라에게 급여하는 먹이를 위한 공간도 추가적으로 필요하다. 타란튤라는 밀웜을 대체로 먹고, 특식으로 가끔 귀뚜라미도 먹는데 이 벌레들을 키우는 데에도 꽤 많은 공간이 할애된다. 밀웜 같은 경우는 번식을 어마어마하게 하는데, 타란튤라의 몇 십 배나 많아져 처치 곤란일 때도 있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격이다.

타란튤라는 유체에서 성체로 성장하며 탈피 과정을 겪는다. 탈피를 하며 벗겨낸 타란튤라 껍질의 모습.
타란튤라는 유체에서 성체로 성장하며 탈피 과정을 겪는다. 탈피를 하며 벗겨낸 타란튤라 껍질의 모습.

"저보고 전생에 파브르가 아니였겠냐고 놀리는 사람도 많아요" 이쯤되면 만족할 법도 한데 인태 씨는 아직도 시시탐탐 입양 기회를 엿본다. "분양을 하려고 마릿수를 늘려가는 반려인도 꽤 많은 걸로 알고 있어요. 하지만 저는 오로지 제 만족이에요. 이 녀석들 커가면서 색깔도 바꿔가는 거 아세요?" 타란튤라는 스파이더링, 유체, 아성체, 준성체, 성체로 성장하며 몸 색깔이 변한다. 탈피(껍질이나 가죽을 벗김) 과정에서 껍질을 벗겨내며 다른 발색을 하는 것이다. 인태 씨는 매번 어떤 색깔이 나올까 복권 긁는 기분으로 탈피 과정을 지켜본다. 그렇다고 이 기간이 마냥 달갑지만은 않다. 탈피 때면 타란튤라는 극도로 예민해진다. 30분 만에 탈피를 끝내는 유체기와는 달리 성체기 때는 3시간도 더 걸리는데 이 과정에서 많은 타란튤라들이 무지개 다리를 건넌다. 탈피 기간에는 사육 환경을 최대한 어둡고 습하게 해 주는 것이 좋다. 조금만 건조해도 탈피부전이라고 탈피에 실패해 다리가 잘리거나 죽음에 이르게 된다.

타란튤라는 촘촘하게 거미줄을 치는데 그 모양이 마치 구름같아 반려인들 사이에선
타란튤라는 촘촘하게 거미줄을 치는데 그 모양이 마치 구름같아 반려인들 사이에선 '솜사탕' 이라 불린다.

겉모습만 예쁜가. 하는 짓도 예쁘다. "먹이를 주면 신난다고 엉덩이를 흔들면서 빙빙 돌 때가 있어요. 얼마나 귀여운지 몰라요" 사실 엉덩이를 흔드는 행위는 습도 체크를 위해 엉덩이에서 두 다리가 쑥 나오다 몸체가 흔들 대는 모습이다. 하지만 반려인들은 타란튤라의 모든 모습에 의미를 부여한다. "아침마다 앞발 두개로 세수를 해요. 얼마나 부지런하다구요 몸단장 하는 모습 너무 귀여워요" 앞발 두 개를 독니 부분에 갖다 대는 행동도 앞으로의 사냥을 준비하는 몸 정리에 불과하다.

그 뿐만 인가. 타란튤라가 치는 거미줄은 심지어 '솜사탕'이라 표현된다. 타란튤라는 한국종 거미보다 조금 더 얇고 촘촘하게 거미줄을 치는데 그 모양이 마치 구름 같아 반려인들 사이에선 '솜사탕'이라 불리운다. 시력이 좋지 않아 주인을 알아볼 수 없는 타란튤라이지만 왠지 모르게 자신을 알아보는 것 같다는 반려인들도 꽤 많다. "모든 반려동물이 그렇듯 타란튤라 반려인들도 '자기 만족'에서 타란튤라를 사육하는 게 아닐까요? 그냥 제가 좋으면 됐죠! 타란튤라 녀석들도 저를 좋아할 거라 믿고 사육하는 겁니다"

◆탈출이라도 하는 날엔 가족들 반대 더 심해져

"이 사실을 가족들에게 알려야 할지.." 타란튤라 반려인들이 활동하는 카페 '절사모(대한민국 절지동물 사랑모임)'에 심상찮은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보증이라도 잘못 선 건가? 동호인끼리 이런 개인적인 고민도 공유하나 싶어 냉큼 클릭해보니 보증보다 더 큰일이 난 것 같다. 타란튤라가 탈출했단다. 타란튤라는 호감형 반려동물이 아니다. 때문에 반려인들은 입문 단계에서 가족들의 반대에 부딪힌다. 딸아이를 키우고 있는 인태 씨도 타란튤라를 키운다고 선언하기까지 길고 긴 고민의 시간을 가졌다. "나만 좋다고 키울 수 없잖아요. 가족들의 동의를 얻는 게 가장 중요했죠"

타란튤라는 독거미의 일종이지만 성격이 온순한 편이라 애완용으로 많이 기른다.
타란튤라는 독거미의 일종이지만 성격이 온순한 편이라 애완용으로 많이 기른다.

우여곡절 끝에 타란튤라를 키우게 되더라도 고비는 많다. 게시글처럼 타란튤라가 탈출하는 경우인데, 사육장을 옮길 때나 먹이를 주는 과정에서 이런 참사가 일어난다. 한두 마리 키우는 반려인들이야 없어지면 바로 알기라도 하지, 수십 마리 키우는 반려인들은 한참 후에 없어졌다는 것을 알게 된다. '절사모' 회원들의 타란튤라 탈출 이야기는 게시판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타란튤라을 찾다 2년 동안 모은 비상금이 탄로나 곤란했다는 회원도 있고, 탈출 소식을 가족들에게 전하자마자 온 가족이 짐을 싸고 호텔로 떠나버렸다는 회원도 있다. 타란튤라는 절대 먼저 공격하지 않는다. 구석진 곳에 숨어서 탈수로 죽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겨울철에는 얼어 죽는다. 잃어버렸다 생각되면 휴지에 충분히 물을 적셔 구석진 곳곳에 놓아두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다. 수분 섭취를 위해 휴지쪽으로 접근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비반려인들에게 타란튤라를 강요하고 싶진 않아요. 예뻐 해주길 원하지도 않고요. 사람마다 취향이 다른 거잖아요" 인태 씨는 말한다. 누구에게 때려 잡고 싶은 벌레일지 몰라도, 타란튤라는 나에겐 함께 먹고, 함께 자는 가족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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