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중년의 남자가 아침에 일어나서 아파트 현관문을 연다. 신문을 들고 와서 소파에 앉아 신문을 넘기면서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기사들을 본다. 신문이 오지 않는 일요일을 빼곤 필자가 늘 하는 행동이다. 아마 이 신문을 보고 있는 대다수의 구독자도 비슷할 것이다. 저녁에 퇴근을 할 때는 항상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면서 혹시 우편물이 있는지 우편함을 확인한다.
얼마 전 관찰 예능 프로그램에서 아침에 한 중년 배우가 현관문을 열고 신문을 들고 오자, 그 장면을 보고 있던 중년 배우보다 어린 진행자들이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설마 종이 신문을 구독하시는 건 아니죠?" "설마 요즘 누가 신문을 봐!" 하는 멘트를 날리는 장면이 있었다. 그 장면을 보자마자 '내 모습인데 뭐가 잘 못된 거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디지털 시대에 종이 신문을 보면 안 되는 건가?
'신문은 영어로 newspaper인데, 종이인데…' 하면서 혼잣말을 중얼거린 기억이 있다. 디지털 시대의 아날로그 감성은 시대에 뒤떨어진 것일까? 이제 점차 신문을 통한 정보의 습득과 국내외 문제에 대한 소식보다는 인터넷 포털사이트, SNS, 유튜브 등 온라인을 통한 의존도가 높아지고 있다. 관찰 예능 프로그램에서 요즘 20, 30대가 보인 반응처럼 대부분의 사람들은 핸드폰을 통해 정보 획득과 기사 구독을 주로 한다.
학보라고 불렸던 대학에서 나오는 신문은 신입생들에게 이성 친구와의 중요한 매개체였다. 학보 안에 편지를 써서 이성 친구에게 보내는 신문은 신문이 아닌 연애편지와 같은 것이었다. 학생수첩에 항상 우표를 갖고 다니던 친구에게 가끔은 우표를 붙여 학보를 보내면서 답장이 언제 올까 하고 설레곤 했던 기억도 이제는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의 이야기가 되었다.
신문과 더불어 아날로그 감성을 대표하는 또 다른 상징은 필름 카메라와 우체통이다. 소풍이나 수학여행을 가면 카메라를 가지고 오는 친구에게 한 장 찍어 달라고 마음에 없는 비위를 맞추면서 찍었던 기억이 있다. 신중하게 사진을 다 찍고 나서 필름을 제대로 감지 않고 필름을 꺼냈다가 소중하게 담겨진 추억들이 하얀 빛으로만 남게 된 추억 하나쯤은 독자들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여행을 다녀온 며칠 뒤 인화된 사진들을 가져오면 사진 속 표정을 보면서 친구들끼리 낄낄거리면서 웃고, 한 장에 50원이나 100원 정도를 주고받아 온 사진들은 커다란 앨범 사진첩에 끼워 놓곤 했다.
최근 지역 우체국이 우편 사업의 적자로 인해 문을 닫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우정사업본부 차원에서 우체국의 폐국을 점차 유도하면서 일부 지역에서는 우체국의 폐국으로 지역 주민들이 불편을 겪고 있다. 20년 전만 해도 길거리에서 빨간 우체통과 공중전화 부스를 찾는 일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요즘은 길거리에서 우체통과 공중전화를 찾아보기 어렵다.
우체국은 도시보다는 시골 지역에서 더 주민들에게 중요한 공공시설이다. 일부 지자체에서는 우체부들이 사회복지 공무원이나 사회복지시설과 협력하여 홀몸노인의 건강 상태와 생활을 점검하고, 노인들에게 필요한 물품을 전달해주는 역할을 하는 중요한 사회복지서비스 전달자 역할을 한다. 할아버지가 우체부를 통해서 이웃이나 지역의 소식이나 안부도 확인했던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이제 우체국들이 사업성을 이유로 해서 하나둘씩 사라져 가고 있다.
종이신문도, 필름 카메라로 찍은 사진도, 손으로 직접 써서 우표를 붙여 보내는 편지도 이제 한 손에 잡히는 핸드폰으로 모두 되는 세상이다. 디지털 시대의 편리함이다. 그럼에도 아직도 필자는 아침에 신문을 보는 것이, 회의 때 노트북이나 탭보다는 만년필과 수첩을 사용하는 것이 더 좋다. 작은 활자를 보는 것이 피곤하지만, 가끔은 만년필의 잉크가 새서 곤혹을 치를 때도 있지만, 디지털 시대의 속도와 편리함을 아날로그가 따라갈 수는 없지만, 그래도 아날로그 물건과 그 물건을 사용하는 아날로그적 행위가 좋다.
단풍이 막바지이다. 길거리에 떨어진 낙엽을 보면서 시간의 변화를 더듬어보다 이렇게 칼럼의 주제로 쓰게 되었다. 떨어진 빨간 단풍 낙엽을 하나 주워서 책갈피에 보관했다가 소중한 사람에게 편지를 쓰고, 편지지 사이에 그 낙엽을 끼워 넣고, 설레는 마음으로 우체통에 편지를 보냈던 그 시절의 감성이 그리워지는 것은 왜일까?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 속에서 잠시 아날로그 추억 여행을 마지막 단풍과 함께 해보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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