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풍] “관계를 맺어주면 안 될까요?”

천지원전 예정지였던 경북 영덕군 석리 일대 모습. 주민들은 지난 2012년 정부가 이곳을 전원구역으로 고시한 뒤 개발제한에 처해 재산권을 행사하지 못하는 불편을 겪었다고 주장한다. 홍준헌 기자 hjh@imaeil.com
천지원전 예정지였던 경북 영덕군 석리 일대 모습. 주민들은 지난 2012년 정부가 이곳을 전원구역으로 고시한 뒤 개발제한에 처해 재산권을 행사하지 못하는 불편을 겪었다고 주장한다. 홍준헌 기자 hjh@imaeil.com
정경훈 논설위원
정경훈 논설위원

"관계를 맺어주면 안 될까요?" 아주 오래전 큰 인기가 있었던 TV 코미디 프로에서 심형래가 날린 배꼽 잡는 멘트다. 극 중에서 심형래가 일을 잘못해 질책을 받자 말도 안 되는 변명을 했고, 이에 극 중 상관이 "야, 그게 이거와 무슨 관계가 있어?"라고 야단을 치자 심형래가 그렇게 둘러댔다. 프로그램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너무 웃겨서 눈물이 찔끔찔끔 난 심형래의 기발한 멘트만큼은 또렷이 기억한다.

월성 원전 1호기 조기 폐쇄 결정 과정에서 불법성이 있었는지를 수사하는 검찰을 공격하는 문재인 정권의 '말의 폭주'가 이를 생각나게 했다. 문 정권은 검찰 공격에 동원 가능한 모든 말을 끌어온다. 여당 의원이 "대통령의 정당한 통치행위이자 정책 결정"이라고 하니 법무부 장관이 "통치행위 개념과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고 맞장구를 친다. 여당 대표는 "정치 수사이자 검찰권 남용"이라고 하고, 원내대표는 "검찰의 국정 개입"이라고 한다. 급기야는 '대통령의 복심'이라는 사람의 입에서 "민주주의에 대한 정면 도전"이라는 거창한 소리까지 나왔다.

"관계를 맺어주면 안 될까요?"라는 소리와 하나도 다르지 않다. 심형래의 이 멘트는 웃음을 선사했지만, 이들의 '관계 맺기' 멘트는 듣는 사람을 화나게 한다. "야, 그게 이거와 무슨 관계가 있어?"라는 소리가 저절로 나온다.

검찰의 수사는 '통치행위 수사'도, '정치 수사이자 검찰권 남용'도, '국정 개입'도 아니다. '민주주의에 대한 도전'은 더욱 아니다. 폐쇄가 정당한 절차를 거친 합법적 결정인지 들여다보는 것일 뿐이다. 이는 검찰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 하지 않으면 직무 유기다. 문 정권은 검찰에 직무 유기를 강요하고 있는 것이다.

감사원 감사 결과는 폐쇄의 비밀을 드러내 줬다. 주무 부처는 경제성 평가를 시작하기도 전에 '즉시 가동 중단'을 청와대에 보고했다. 이어 '계속 가동'의 경제성은 낮추고 '즉시 가동 중단' 필요성은 높이겠다는 실행 계획도 청와대에 보고했다. 경제성 평가는 처음부터 폐쇄를 결정해 놓고 벌인 대(對)국민 사기극이었던 것이다. 주무 부처 공무원이 일요일 한밤중 사무실에 들어가 관련 자료 444건을 폐기한 감사 방해는 이를 웅변한다. 그 시작은 "가동 중단은 언제 결정되느냐"는 문재인 대통령의 말 한마디였다.

멀쩡한 원전의 폐쇄를 초래한 문 대통령의 '탈(脫)원전' 정책은 발상 단계부터 난센스였다. 좌파적 '환경 근본주의'의 망상(妄想)으로 버무려진 재난 영화를 보고 '탈원전'이라는 '깨달음'을 얻었다고 하니 코미디도 이런 코미디가 없다. 세상에! 다큐멘터리도 아닌 '픽션'을 보고 국가 정책을 결정하다니.

무식하면 용감하다. 탈원전 도그마에 빠진 문 대통령만큼 이를 실감케 하는 것도 없다. 원전이 가장 환경친화적이고, 가장 안전하며, 가장 지속 가능한 에너지원이라는 과학적 증거도, 세계 각국이 원전 건설에 매진하는 '원전 르네상스'도 '픽션'과 '현실'을 분간하지 못하는 문 대통령의 몽환(夢幻) 앞에서는 맥을 못 춘다. 이런 무지가 7천억원을 들여 고쳐 잘 돌아가고 있는 원전을 폐쇄하는 무모함을 초래했다.

그래도 폐쇄는 그럴듯하게 보여야 했다. 데이터를 악의적으로 조작한 범죄행위가 필요했다. 대통령의 몽환을 지켜주려고 거짓을 사실로 둔갑시키고 국민을 속인 것이다. 이를 덮기 위해 문 대통령의 수하(手下)들은 감사원과 검찰을 '정치 집단'으로 몬다. 그리고 범죄행위를 '통치행위'로 포장한다. 문 대통령은 법 위에 있다는 소리다. 이들의 눈에는 국민이 개, 돼지로 보임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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