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도사 산내 암자인 극락암의 삼소굴에서 사셨던 경봉스님의 '달마'이다. 예로부터 글씨나 그림으로 이름 난 스님이 있어서 선묵(禪墨), 선필(禪筆)이라고 했다. 학자들의 글씨를 유필(儒筆)이라 하듯. 한국서예사는 선필과 유필이 차지하는 부분이 적지 않아 신라, 고려 때는 고승의 글씨가, 조선시대는 유학자의 글씨가 시대 서풍의 한 흐름을 이룬다. 신라의 김생이나 영업, 고려의 탄연, 혜소, 조선의 서산대사, 사명대사를 비롯해 영파, 아암, 초의 등 선사(禪師)의 글씨가 있어 우리 서예사가 더욱 풍부했다. 만해(卍海)스님을 비롯해 20세기에도 고승대덕의 현판, 게송, 법어, 편지 등이 선묵일여(禪墨一如)의 세계를 이었다.
경봉스님은 17세에 출가해 강원을 졸업하고 경을 읽다 '종일수타보(終日數他寶) 자무반전푼(自無半錢分), 즉 "종일토록 남의 보배를 세어본들 나에겐 반 푼의 이익도 없다"는 구절에 충격을 받아 참선에 몰두해 36세 때 방안의 촛불이 일렁이는 것을 보고 크게 깨달았다. 선묵은 법보시, 법공양의 한 부분이어서 경봉스님의 글씨를 통도사는 물론 불국사, 낙산사, 동화사 등 곳곳의 절집에서 볼 수 있지만 그림은 달마도가 약간 있을 뿐이다.
경봉스님의 '달마' 흉상은 머리가 드러나 있어 정수리 쪽이 민머리인 것이 좀 특이하다. 필치는 굵고 가늘게 변화를 주었지만 먹은 팥죽처럼 뻑뻑한 초묵(焦墨) 한 가지여서 흑색이 강렬하다. 붓이 잘 나가지 않는 이런 초묵을 사용하려면 필력이 대단해야 한다. 화면의 글씨는 이렇다.
지허노호지(只許老胡知) 불허노호회(不許老胡會)
(노호(老胡)의 지혜를 허용할 뿐 노호에 부합하기를 허용하지 않는다)
범안개처(凡眼開處) 수류화개(水流花開)
(범안(凡眼) 열린 곳에 물 흐르고 꽃 피네)
영축산(靈鷲山) 삼소굴(三笑窟) 원광(圓光) 경봉(鏡峰)
노호(老胡)는 외국인인 호인(胡人) 노사(老師) 달마를 말한다. 두 군데 찍은 머리도장은 공자님 말씀인 '온고지신'이어서 살벌할 정도인 선종의 종풍과 좀 맞지 않는 듯하다. 중국 선종의 2조 혜가는 팔 하나를 잘라 바침으로서 자신의 진정을 증명해 달마에게 입문을 허락받았고, 임제종을 연 당나라 임제선사는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여라"라는 말로서 부처라는 우상, 조사라는 권위를 살불살조(殺佛殺祖)로 거부하며 믿음이 아닌 깨달음의 길을 갔기 때문이다. 달마의 부릅뜬 눈이 졸음으로 감기는 자신의 눈꺼풀을 잘라내 던져버렸기 때문이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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