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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기의 필름통] '여성'을 뛰어넘은 위대한 과학자의 인생 여정…영화 '마리 퀴리'

영화 '마리 퀴리' 스틸컷
영화 '마리 퀴리' 스틸컷

'세계 최초'라는 수식어는 열정과 집념의 다른 말이기도 하다. 아무도 가지 않았던 길은 그 만큼의 노력과 고난을 요구한다. 어린이 위인전에 빠지지 않는 마담 퀴리(1867~1934)는 그런 대표적인 인물일 것이다.

여성의 참정권도 없는 시기, 1903년 여성 최초로 노벨상(물리학)을 수상했고, 1911년 노벨 화학상까지 받으며 세계 최초로 노벨상을 2번이나 수상했다. 소로본 대학 최초의 여교수가 되기도 했다. '여성'이란 한계를 뛰어넘은 과학자이자 위대한 인간이었다.

그녀의 삶은 위인전 속에서 화려한 업적을 주입하는 용도로만 쓰이곤 했다. 과연 그녀는 업적만큼 그렇게 화려했을까.

18일 개봉한 '마리 퀴리'(감독 마르잔 사트라피)는 세상을 바꾼 그녀의 도전과 성공, 고난과 상실, 고뇌와 확신을 입체적이며 드라마틱하게 보여주는 전기영화다.

여성 최초로 파리 소로본 대학에 입학한 마리(로자먼드 파이크)는 거침없는 성격 때문에 연구실에서 쫓겨난다. 평소 그녀의 연구를 눈여겨 본 과학자 피에르 퀴리(샘 라일리)가 공동 연구를 제안하면서 두 사람은 연인으로 발전하고, 결혼까지 하게 된다.

연구에 미친 둘은 한 여름에도 불 앞에서 광석을 녹여 새로운 원소를 얻는데 성공한다. 폴로늄과 라듐이다. 4톤의 우라늄석을 40톤의 약품과 400톤의 물을 사용해 4년 동안 실험해서 얻은 결과다.

이로써 둘은 노벨상을 수상한다. 마리 퀴리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노벨상 시상식에 가지 못한다. 그래도 연구를 할 수 있다는 것에 만족한다. 그녀는 두 번에 걸친 임신과 출산을 거치면서도 연구를 멈추지 않는다.

2014년 '더 보이스'를 연출한 마르잔 사트라피 감독은 만화가에 배우, 감독에 시나리오 작가까지 다재다능한 이란 출신 여성 영화인이다. 그는 남성 중심의 과학계에 박힌 돌(?)처럼 출현한 마리와 그 누구도 멈추게 할 수 없었던 그녀의 도전과 열정에 카메라를 고정시킨다. 그렇다고 한계를 넘어선 위대한 여성이란 통속적인 프레임에 매이지도 않는다.

마리 퀴리의 내면과 고통을 섬세한 연출과 감각적인 영상으로 지루하지 않게 그려낸다. 남편 피에르의 갑작스러운 죽음과 폴란드인이라는 인종차별, 다른 과학자와의 염문으로 인한 거센 비난도 담대하게 그려낸다.

이 정도라면 위인전의 틀을 벗어나지 않겠지만, 그는 마리 퀴리의 업적이 인류에게 미친 파급력을 전제하며 새로운 고민과 방향을 제시한다.

영화 '마리 퀴리' 스틸컷
영화 '마리 퀴리' 스틸컷

영화의 원제는 '방사능'(Radioactive)이다. 방사능은 120년이 지난 지금 우리 생활 속에 깊숙이 자리 잡은 기술이다. 병원의 엑스레이 촬영에 암 방사능 치료, 공항의 보안검색대 등 다양하게 쓰이고 있다.

마리 퀴리는 남편이 발명한 전압기를 통해 역청우라늄석에서 나오는 광선을 연구했다. 불안정한 원자가 방출하는 광선을 방사능이라 명명하고 개념을 확립했다.

라듐과 폴로늄 그리고 방사능은 의학적인 치료뿐만 아니라, 인류 비극의 단초가 되기도 한다. 1945년 히로시마, 1961년 네바다의 원폭 실험, 1986년 체르노빌 원전 사고 등을 보여주면서 위대한 발명이 전쟁과 이념, 예기치 못한 사고로 인해 인간에게 재앙이 되는 것을 염려한다.

노년의 마리 퀴리는 딸 이렌(안야 테일러 조이)과 함께 엑스레이 구급차를 마련해 1차 세계대전 부상자를 치료하는 의료봉사를 펼치기도 한다. 순금으로 된 두 개의 노벨상 메달을 녹이라면서 영국 정부를 협박(?)한 끝에 그녀는 전장으로 달려갈 구급차를 마련했다. 영화는 마리 퀴리가 이후 원자폭탄이라는 가공할 포탄이 발명될 것을 예견이라도 한 듯 용감한 그녀의 면모를 그린다.

여느 전기영화와 달리 '마리 퀴리'는 풍성하고 입체적인 시선으로 속도감 있게 한 인물의 내면과 외면을 그리고 있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의 프랑스 파리의 모습과 실제 같은 연구실, 두 번째 노벨상 수상 장면의 연설 등 공을 들인 티가 역력하다.

영화 '나를 찾아줘'의 로자먼드 파이크가 안정적인 연기로 마리 퀴리의 삶을 잘 표현한다. 혈기 왕성한 20대부터 연구로 인한 심한 두통, 참을 수 없는 기침으로 고통 받는 60대까지 치열한 그녀의 삶을 연기한다. 피에르 퀴리 역은 '말레피센트' 등에 출연한 샘 라일리가 맡았다. 110분. 15세 이상 관람가.

김중기 문화공간 필름통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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