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책] 서울은 천재를 품었고, 천재는 서울에서 열정을 불태웠다

서울이 사랑한 천재들/ 조성관 지음/ 열대림 펴냄

옥인길 57의 옛 윤동주 하숙집 터. 자료사진 열대림
옥인길 57의 옛 윤동주 하숙집 터. 자료사진 열대림
책
책 '서울이 사랑한 천재들'

시인들의 시인 백석,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시인 윤동주, 나목의 화가 박수근, 삼성그룹 창업자 이병철, 현대의 신화 정주영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이들은 모두 1910년대에 태어났으며, 고향을 떠나 서울에서 꿈을 이루고 역사에 이름을 남겼다.

신간 '서울이 사랑한 천재들'은 서울에서 활동한 다섯 명의 천재를 통해 천재들의 삶과 업적뿐만 아니라 그들의 무대가 되어준 도시, 서울의 얼굴을 들여다본다.

◆다섯 인물의 평전이자 여행의 기록

조성관 작가의 '도시가 사랑한 천재들' 시리즈가 '서울이 사랑한 천재들'로 완결을 맞았다. 저자는 지난 15년간 9개 도시에서 각자의 분야에서 치열하게 살았고 훌륭한 업적을 남긴 '천재' 54명을 만났다. 그 대미를 장식한 이는 서울이 사랑한 백석, 윤동주, 박수근, 이병철, 정주영이다.

천재들이 살고 사랑한 곳들을 순례하며 그들의 삶과 예술세계, 업적을 되짚어본 이 책은 다섯 인물의 평전이자 역사서이며, 저자의 여행 기록이다. 저자는 천재들의 결실과 그들의 인생을 복기하면서 사생활이나 흥미로운 에피소드도 곁들여 천재들의 삶을 더욱 가까이에서 들여다볼 수 있게 했다.

저자가 천재들의 발자취를 따라 도시 곳곳을 순례한 감상평도 어우러져있다. 백석이 기자로 일하던 시절 묵었던 종로구 통의동 하숙집과 길상사를 시작으로, 윤동주의 서촌 누상동 하숙집과 윤동주 기념관, 박수근의 일터와 집터, 박수근미술관, 이병철의 생가와 호암미술관, 정주영의 청운동 집과 하남의 묘지가 사진으로 수록돼 현장감을 살렸다.

혼돈의 시기, 서울은 천재들을 품었고, 천재들은 서울에서 열정을 불태웠다. 사후 빛나는 이름을 지니게 된 그들의 현실에서의 삶이 평탄하고 행복하기만 했을까. 천재들의 삶은 결코 행복한 것만도, 영광스러운 것만도 아니었다. 때로는 궁핍과 시기, 혹평과 비난, 질병과 고독에 시달려야 했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그들의 고통과 기쁨, 영광과 좌절, 강렬한 예술에의 투혼을 읽어낼 수 있다.

대문채에서 본 이병철 생가. 자료사진 열대림
대문채에서 본 이병철 생가. 자료사진 열대림

◆대한민국과 서울을 바꾼 5명의 천재

시인이자 소설가이자 번역가이자 에세이스트인 백석. 그가 서울에서 기자로 일하던 시절 묵었던 종로구 통의동 하숙집과 길상사를 둘러본다. 길상사는 백석의 연인이었던 '자야' 김영한이 자신의 전 재산을 부처님에게 시주해 짓게 된 사찰이다. '모던 보이' 영어 교사로도 유명했던 그는 분단과 함께 재북 시인이 되었다. 그의 신산했던 삶의 여정을 좇는다.

'서시'의 시인 윤동주는 35년을 산 모차르트보다도 짧은 생을 살다 갔다. 그의 27년 생애에서 가장 자유로웠던 기간은 서울의 연희전문에 다닐 때였다. 연세대 교정, 윤동주 기념관, 서촌 누상동의 하숙집뿐만 아니라 윤동주가 유학했던 교토와 도쿄의 대학, 체포되어 죽음을 맞은 후쿠오카 형무소까지 돌아본다. 엄혹한 시절, 윤동주의 유고를 고이 간직해 세상에 나오게 한 감동적인 사연도 읽을 수 있다.

'빨래터', '나무와 두 여인' 등 우리에게 친숙한 화가 박수근은 천재 예술가의 전형이다. 변변한 아틀리에 하나 없이 가난 속에 살다 간 박수근이지만 지금은 한국을 대표하는 화가이자 가장 사랑받는 화가가 되었다. 초등학교 졸업 후 독학으로 조선미전에 여러 번 당선되어 화가의 길로 들어선 그는 생업을 위해 미8군 PX 초상화 가게에서 일해야 했다. 초상화 가게가 있던 곳, 창신동과 전농동 집터, 박수근미술관 등을 순례한다. 더불어 박수근의 대표작들을 마음껏 감상할 수 있다.

한국 경제를 이끌며 오늘의 대한민국을 있게 한 주역, 이병철과 정주영의 일대기도 흥미롭다. 비슷한 시기에 태어난 두 경제인은 성장 배경은 아주 달랐지만 '삼성'과 '현대'를 세계 굴지의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의령의 이병철 생가와 삼성의 모체가 된 옛 삼성상회, 호암미술관, 승지원 등을 둘러보고, 정주영이 젊은 시절 공사장 인부로 일했던 고려대 본관, 울산 현대중공업 현장, 청운동 집과 하남의 묘지 등을 찾는다.

저자는 "서울에 태를 묻지는 않았지만 이들이 만개한 곳은 서울이었다. 이들이 세상에 왔다 가고 나서 서울과 대한민국은 전혀 다른 세상으로 바뀌었다. 21세기를 사는 우리들은 1910년대생인 다섯 사람에게 큰 빚을 지고 있다"고 말한다. 312쪽, 2만3천원.

※저자 조성관은

천재 연구가이자 작가. 연세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해 '월간조선' 기자를 거쳐 '주간조선' 편집장을 지냈다. 저서로는 '도시가 사랑한 천재들' 시리즈인 '빈이 사랑한 천재들', '파리가 사랑한 천재들', '뉴욕이 사랑한 천재들' 등 9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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