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남의진(山南義陣)! 경북 영천시를 비롯해 포항, 영일, 청송 등 경북 동남부 지역에서는 제법 많이 알려진 사실(史實)이지만 학자나 향토사가를 비롯한 전문 연구자들 외 일반 지역민들이나 국민들에게는 아직까지 조금은 낯선 이름이다. 산남의진은 1905년 을사늑약 이후 전국에서 들불처럼 일어나던 의병운동 중 대표적인 항일 의병운동이다.
여러 자료에 의하면 산남의진은 을사늑약 이후 고종이 중추원 의관이던 영천 출신의 정환직에게 밀서를 전해 의병 궐기를 촉구하고, 정환직은 아들 정용기에게 창의할 것을 지시해 영천에서 의병을 조직해 싸우던 중, 아들 정용기가 전사하고 이어 정환직마저 일본 군인들에게 순국한 역사적 사실을 말한다. 물론 이 두 부자만 의병으로 싸운 게 아니고 최세진 의병장을 비롯해 많은 이름 없는 의병들이 합세해서 싸웠다. 그 기간은 대략 1906년 3월부터 1910년까지이고, 130여 차례 전투에서 700여 명이 사상했다고 기록은 전하고 있다. 주 활동 무대는 태백산 줄기인 경북의 보현산과 동대산 일대이다.
지난여름(2020. 8. 21.), 나는 우연한 인연으로 경상북도 영천시에서 열린 한 세미나에 참석했다. '영천의병 좌담회-영천의병 무엇을 기억하고 무엇을 배울 것인가!'라는 제목의 이 좌담회는 '임란영천성수복대첩기념사업회'와 '산남의진기념사업회'가 주최하고 '영천시'가 후원하는 행사였다. 두 기관의 관계자뿐 아니라 지역 향토학자, 콘텐츠 전문가, 시인 등 다양한 분들이 참석해 이 문제에 대해 열띤 논의를 벌이는 모습이 내게는 매우 인상적이었다.
이 자리에서 지역문화콘텐츠의 국제 교류와 관련해 짧은 코멘트를 했다. 20세기 산업화 시대가 끝나고 21세기 디지털 문명의 시대에 들어서면서 문화나 콘텐츠에 대한 개념이 많이 변하고, 또 콘텐츠의 생산이나 유통의 형태가 바뀌고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문화콘텐츠는 대중성과 독창성이 적절히 균형을 맞추어야 한다. 문화콘텐츠의 관점에서 본다면 산남의진을 비롯한 임란 때의 영천 지역 의병 활동은 좋은 소재가 될 수 있다. 특히 국제화, 세계화 시대에 희미해져 가는 민족성과 애국심(물론 둘 다 너무 폐쇄적이거나 국수주의적이어서는 안 되겠지만)을 환기시키는 데 이만한 지역의 원형적 소재가 있기도 어렵다. 각 지역에 묻혀 있는 지역 고유의 전통을 발굴해 문화콘텐츠로 만들고 이를 세계화시킨다면 지역문화 발전과 문화 분권에도 매우 의미 있는 일이 될 게 분명하다.
정환직-정용기 부자 의병장에 대해 나는 1990년 한 일간지에 지역의 의병장들에 대해 연재할 때 두 분의 행적을 다룬 적이 있다. 그 연재물에는 두 분 부자 의병장 외에도 구미의 왕산 허위, 영해의 신돌석 장군을 비롯해 경북 지역의 의병장을 새롭게 발굴해 조명했다. 당시 영천시 자양면과 같은 산골짝은 물론 포항시 죽장면 입암 등을 들러보았던 기억이 아스라하다. 먼지가 풀풀 날리던 비포장 산길, 도로 포장은 물론 교량이 제대로 건립이 안 된 오지여서 물이 흐르던 하천을 과감하게 지프로 돌진해 건너다가 차바퀴가 자갈밭에 빠졌던 기억, 내가 힘들게 탐방했던 그 산골짝 오지가 구한말 당시 의병들이 맨몸으로 진퇴를 거듭하던 죽음의 전장과 우국충절의 현장이라는 사실을 느끼며 숙연하면서도 비감했던 기억이 새롭다. 그리고 오지 중의 오지인 죽장면 입암에 들렀을 때 그 황홀하게 아름답던 비경은 오랫동안 내 기억에 남아 있었다.
의병들의 거점이 됐던 보현산에 있는 사찰 거동사와 두 부자 의병장을 기리는 충효재 등에서는 의병들 추모제와 기념 백일장과 같은 행사를 하고, (사)산남의진기념사업회는 산남의진의 뜻을 이어가기 위해 여러 가지 사업을 하고 있다. 지역의 전문 학자나 향토사 연구자들뿐 아니라 뜻있는 시민들이 힘을 합쳐 산남의병들의 애국심을 기리고 있다. 여기에 덧붙여 이런 좋은 지역 원형 재료를 문화콘텐츠로 변화시켜 세계화하는 일은 지역문화가 담당해야 할 몫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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