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훈이는 토를 잘하는 2살된 남자 아이다. 열이 나서 몸이 힘들어도, 조금만 심하게 울어도 금방 토를 한다. 그렇다고, 큰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런 정훈이가 지난 화요일 오후에 열이 나서 병원에 왔다. 이것저것 물어보면서 진찰을 하기 시작했다. 열이 나니 목이랑 편도 상태를 설압자로 살펴보는데, 아뿔사 정훈이가 '울컥' 하면서 구토를 했다. 다행히 흰 가운을 버리진 않았지만, 정훈이 옷은 엉망이 되었다. 정훈이도 힘들었는지, 아니면 놀랐는지 울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펼쳐진 일들로 정훈이 엄마는 당황했고, 한편으로 미안해 했다. 그리고 진료실 바닥엔 음식물 잔해가 역한 냄새를 풍기며 널부러져 있었다. 구토를 잘하는 정훈이란 걸 생각했어야 했는데, 열이 나니 목을 자세히 보려 한 것이 화근이었다. 진료실에 있는 화장지로 대충 정리를 하고 창문을 활짝 열었다. 진료실에는 청소 도구가 없기에, 또 진료를 기다리는 다른 아이들이 있기에, 병원 환경 미화를 담당하시는 분-우리는 이분들을 여사님 이라고 부른다-에게 연락을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물 밀대 등 청소도구를 가지고 여사님이 오셨다. 화장지로 대충 정리된 구토물을 깔끔히 정리하고 깨끗하게 청소해 주셨다.
종종 토하는 아이들이 있고, 그럴 때마다 뒷정리는 여사님들이 맡아주신다. 정리를 하실 동안 난 옆방으로 가서 음료수 한 병을 가운 속 주머니에 넣어 가지고 온다. 정리가 끝나면, "고맙습니다" 하면서 음료수를 건넨다. 그러면 여사님들도 "고맙습니다" 하고 다른 일을 하러 가신다. 이번에도 그렇게 음료수를 건넸다.
병원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일하고 있다. 아픈 아이들을 직접 보는 의사, 간호사, 약사, 임상병리사, 방사선사, 접수처에 근무하는 직원들. 또 환자들의 눈에 잘 띄진 않지만, 일하시는 분들이 많다. 환경 미화를 담당하시는 분들, 병원의 시설과 설비를 관리하는 분들, 환자의 식사를 만드는 분들, 주차 관리를 담당하는 분들, 의료폐기물과 쓰레기를 처리하는 분들 등등. 그 외에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여러 사람들이 열심히 일하고 있다.
이렇듯 다양한 직군의 사람들이 함께 움직이고 일해서, 아픈 아이들을 치료하는 곳이 병원이다. 아픈 아이들이 입원했다가 퇴원할 때, 늘 듣는 말이 있다. "고맙습니다" 라고. 그럴 때마다, 병원에서 아이를 치료하는 과정에서 직접적으로 혹은 간접적으로 헌신하는 분들이 많은데, 그런 감사의 말들을 혼자 독차지하고 있으려니 미안한 생각도 든다. 어쩌면 가장 편한 곳에서, 가장 대우를 받으면서 일하고 있는 나 자신이 '그럴 자격이 있나?' 하는 생각마저 든다.
케네디 미국 대통령이 1962년 NASA를 방문했을 때의 일화이다. 대통령이 이 곳에서 마주친 청소부에게 무슨 일을 하고 있느냐고 묻자 청소부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저는 우주인을 우주로 보내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난 그렇게 생각한다. 소아과 외래와 병실에서 궂은 일도 마다하지 않고, 일하시는 여사님들도 아픈 아이들이 건강하고 행복해지게 누구보다 열심히 일하고 계신다고. 그분들이 계셔서, 아이들이 더 좋고 깨끗한 환경에서 치료받을 수 있고, 우리들이 더 즐겁게 아이들을 돌볼 수 있는 것이다.
오늘도 보이지 않지만, 묵묵히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고 계시는 병원의 많은 분들께, 환자들에게 받은 말을 돌려드리고 싶다. "정말로 고맙습니다."
이동원 대구파티마병원 소아청소년과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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