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97년 1월 일본이 조선을 다시 침략하는 정유재란이 일어났다. 일본군은 임진왜란 때 조선을 완전히 점령하지 못한 가장 큰 이유로, 제해권을 주도하지 못한 것을 꼽았다. 해전에서 불패의 신화를 이룬 이순신 장군이 존재하는 한 정유재란에서의 성공을 장담할 수 없었다. 일본 측에서는 이순신의 지휘권을 없애는 교란 작전을 펼쳤다.
이중간첩 요시라로 하여금 조선 측에 부산해협에 일본 군선이 출동한다는 정보를 제공하도록 했다. 선조는 이 정보를 그대로 믿고 이순신에게 출동 명령을 내렸지만, 이를 계략으로 파악한 이순신은 출동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이순신에게 왕의 명령을 거부했다는 비판이 이어졌고, 1597년 2월 이순신은 투옥되었다. 참형에 처해야 한다는 분위기도 있었지만 정탁, 류성룡, 이덕형 등의 변호로 이순신은 4월 1일 의금부 감옥에서 풀려나 백의종군(白衣從軍)의 길을 나서게 되었다.
백의종군은 계급과 권한을 내려놓고 종군한다는 뜻으로, 이순신은 도원수 권율이 있는 경상도 합천 초계에 가서 군사 자문을 하는 임무를 부여받았다. 4월 3일 서울을 출발하여 초계에 도착한 것은 6월 4일이었다. 이순신이 이때 걸었던 백의종군 길은 한양에서 시작하여 인덕원, 오산, 평택을 거쳐 4월 5일 고향인 아산까지 이르는 길이었다.
"4월 9일에는 동네 사람들이 각기 술병을 들고 와서 멀리 떠나는 길을 위로하였다. 인정상 거절하지 못하고 몹시 취하도록 마시고 헤어졌다"고 '난중일기'는 기록하고 있다. 아들이 고향에 왔다는 소식을 들은 장군의 어머니는 여수에서 배를 타고 오다가 사망했다. 4월 13일 어머니의 부음을 듣고 이순신은 난중일기에서, "조금 있다가 종 순화가 배에서 와서 어머님의 부고를 전했다. 뛰쳐나가 뛰며 뒹구니 하늘의 해조차 캄캄하다. 곧 해암(蟹巖:게바위)으로 들어가니 배가 벌써 와 있었다. 길에서 바라보는, 가슴이 미어지는 슬픔이야 어찌 이루 다 적으랴"고 하여, 어머니를 잃은 자식의 아픔을 절절하게 기록하였다. 이순신이 어머니의 부음을 들었던 아산시 소재 해암 지역을 필자는 지난주에 찾은 적이 있는데, 아산시가 복원 사업을 진행 중에 있음을 확인하였다.
이순신은 백의종군 기간에도 좌절하지 않고, 자신의 노하우를 알려주고, 전쟁에 대비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1597년 5월 24일의 난중일기에 "체찰사가 군관 이지각을 보내어 안부를 묻고, 경상우도 연해안 지도를 그리고 싶으나 도리가 없으니, 본 대로 그려 보내 주었으면 고맙겠다고 하므로, 내 거절할 수 없어 지도를 초 잡아 보냈다"거나, 6월 4일의 "고개를 넘어오는데 기암절벽이 천 길이나 되고, 강물은 굽이 돌며 깊고, 길은 험하고 다리는 위태롭다. 만일 이 험한 곳을 눌러 지킨다면 군사 만 명이라도 지나가지 못하겠다"는 기록 등이 대표적이다.
이순신은 백의종군 기간인 1597년 8월 3일 마침내 삼도수군통제사로 복귀하였다. 7월 27일부터 머물던 진주 수곡면 원계마을 손경례의 집에서였다. 8월 3일의 일기에는 "이른 아침 뜻밖에 선전관 양호가 와서 임금이 내린 교서, 유지와 유서를 가져왔는데, 삼도통제사를 겸하라는 명령이었다. 오후 8시에 하동 땅 행보역에 이르러 말을 쉬게 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삼도수군통제사에 복귀했지만, 그 이전인 7월 16일 원균이 이끄는 조선 수군이 칠천량에서 대패하여 12척의 판옥선만이 겨우 수습된 최악의 상황이었다. 이러한 악조건 속에서도 40여 일간의 치밀한 준비와 전략으로, 9월 16일의 명량해전에서는 10배가 넘는 일본 군선을 대파할 수 있었다.
백의종군이라는 좌절의 시기에도 뜻을 잃지 않고 준비하고 노력하는 의지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순신이 걸었던 백의종군 길은 현재의 서울, 경기도, 충청남도 아산을 거쳐, 전라북도 남원과 구례, 전라남도 순천, 경상남도 하동, 산청, 합천 등을 잇는 길이었다. 최근 관련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장군의 자취가 남아 있는 백의종군 길을 복원하고, 이를 널리 알리는 작업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백의종군 길을 역사적 명소로 조성하여, 최악의 상황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나라를 구한 장군의 체취를 직접 접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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