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게 하세요." 프랑스혁명 당시 프랑스 왕 루이 16세의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가 했다고 알려진 말이다. 기근으로 신민(臣民)들이 고통받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이렇게 말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그는 백성의 비참한 현실에 무지한, 철없는 왕비로 각인됐고 결국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졌다.
마리 앙투아네트가 이런 말을 했다는 기록은 없다. 당시 혁명 세력이 왕실에 대한 증오를 부풀리려고 조작했다는 설이 유력하다. 이와 비슷한 표현이 루소의 고백록에 있기는 하다. "나는 농부들이 빵이 없다는 말을 듣고 '그들에게 브리오슈를 먹이자'는 위대한 공주의 해결책이 떠올랐다." 브리오슈란 빵 부스러기에 버터를 많이 넣어 만든 대용식이다.
루소가 '위대한 공주'가 누군지는 밝히지 않았지만 마리 앙투아네트가 아닌 것은 분명하다. 루소가 고백록을 출판한 시기는 1765년, 1766년, 1767년 등 매체마다 다르다. 어쨌든 마리 앙투아네트가 태어난 1755년과 10~12년 차이밖에 안 난다. 루소가 고백록을 쓸 당시 마리 앙투아네트는 어린애로 루이 16세와 결혼하기 한참 전이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빵이 없으면 케이크"라는 말은 동서양에서 모두 마리 앙투아네트가 한 것으로 줄기차게 반복·전파돼왔다. 가장 최근의 예로는 2019년 김현철 전 청와대 경제보좌관이 청년층을 향해 "취업 안 된다고 헬조선 하지 말고 동남아로 가라"고 하고, 50, 60대를 향해서는 "조기 퇴직하고 할 일 없다고 산에 가고 SNS에 험악한 댓글만 달지 말고 동남아로 가라"고 하자 '마리 앙투아네트식 사고'라는 비판이 나온 것을 들 수 있다.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가 또 마리 앙투아네트를 억울하게 만들고 있다. 진선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아파트에 대한 '환상'을 버리면 임대주택에서도 주거의 질을 마련할 수 있다"고 한 데 대해 '마리 진투아네트냐'는 비판이 쏟아진다.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라던 마리 앙투아네트와 다를 것이 무엇이냐"는 것이다.
진 의원은 골프장, 헬스장 등 각종 편의시설을 갖췄고 초등학교도 가까이 있어 누구나 선망하는 지하철 역세권의 대단지 아파트에 살고 있다. 남에게 '환상'을 깨라고 하려면 본인부터 아파트에서 나올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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