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는 한 권의 책이다. 세상의 모든 장르를 총망라하고 수많은 사람들의 삶이 녹아있는 스케일이 무척 큰 책이다. 도시는 인류가 만들어낸 수많은 발명품 중에서 인간의 삶에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치는 삶의 무대다. 멈출 줄 모르고 달려온 인간의 욕망을 상징하는 곳이기도 하다. 이렇듯 도시에는 인간의 역사와 삶이 집약되어 있다.
◆역사, 예술, 미래로 풀어낸 도시
건축가 부부 노은주·임형남이 13개국의 21개 도시를 여행하며 도시에 담긴 역사·예술·미래의 풍경을 풀어내 신간 '도시 인문학'을 펴냈다.
스페인 바르셀로나, 프랑스 파리, 이탈리아 베니스, 터키 이스탄불처럼 유명한 도시부터 미국 벨뷰, 일본 시가현 고카, 네덜란드 스헤인덜, 오스트리아 바트블루마우 등 약간은 생소한 도시까지, 도시의 이야기가 대표 건축물을 중심으로 생생하게 묘사된다.
책은 역사, 예술, 미래라는 주제로 총 3장으로 구성된다. 제1장은 '역사가 만든 도시'에서는 홀로코스트의 아픔을 새긴 유대인박물관이 있는 독일 베를린을 비롯해 로마의 마지막 영광인 하기아 소피아 성당이 있는 터키 이스탄불, 슬픔과 불안이 새겨진 홍콩 상하이 은행이 있는 홍콩을 여행한다. 제2장은 예술이 만든 도시들을 찾아가본다. 자연과 예술을 존중한 지추 미술관이 있는 일본 나오시마, 예술의 향연이 펼쳐지는 산 마르코 성당을 품은 이탈리아 베니스를 탐구한다. 제3장은 '미래가 만든 도시'를 통해 도시와 건축의 미래를 전망한다. 유연한 사고가 만들어낸 하이테크 건축 퐁피두센터가 있는 프랑스 파리, 21세기 문명의 상징이자 정보의 왕국 페이스북 사옥이 있는 미국 멘로파크, 인간의 욕망이 담긴 부르즈 칼리파가 있는 아랍에미리트연방 두바이를 둘러본다.
'건축계의 노벨상'이라고 불리는 프리츠커상을 수상한 건축가도 만나볼 수 있다. 미국 멘로파크의 페이스북 사옥을 설계한 프랭크 게리(1989년 수상), 일본 가가와현 나오시마의 지추 미술관을 설계한 안도 다다오(1995년), 미국 시애틀의 시애틀 공공 도서관을 설계한 렘 콜하스(2000년), 일본 효고현 고베의 종이로 만든 집을 설계한 반 시게루(2014년)가 주인공이다.

◆유대인박물관부터 구글·애플사옥까지
다니엘 리베스킨트가 설계한 독일 베를린의 유대인박물관은 홀로코스트의 참담한 기억을 기록한 곳이다. 아연과 티타늄으로 둘러싸인 유대인박물관의 표면에는 사선으로 그어진 선들이 할퀸 상처처럼 아프게 다가온다. 유대인박물관에는 납작한 철로 제작된 가면 1만 개가 깔린 메나셰 카디슈만의 설치 작품 '공백의 기억'이 있는데, 이는 홀로코스트로 희생된 유대인을 상징한다. 또한 기울어진 49개의 콘크리트 기둥으로 구성된 '추방의 정원'은 유대인이 정착하지 못하고 떠도는 삶을 표현하고 있다. 모든 것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유대인박물관은 과거에 인류가 저질렀던 죄악에 대한 강력한 건축적인 기록이다.
'베니스의 상인' '베니스에서의 죽음' 등 여러 작품의 배경이 된 이탈리아 베니스는 감각의 도시이자 예술의 도시이자 건축의 도시다. 120여 개의 섬을 400여 개의 다리로 연결해놓은 물 위의 도시인 베니스는 촘촘하게 붙어 있는 작은 섬들이 정교하게 꿰매놓은 천 조각 같다. 베니스의 중심에 있는 산 마르코 성당은 11세기에 재건되면서부터 동방을 침략할 때 가져온 그리스 시대의 조각 등 여러 가지 장식품으로 가득하다. 예술은 인류의 자산이며, 베니스는 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매혹적인 도시다.
21세기 전세계에서 지배력을 높여가고 있는 글로벌 IT 기업의 사옥은 어떻게 생겼을까. 노먼 포스터가 설계한 미국 캘리포니아 쿠퍼티노의 애플 사옥은 가운데가 뻥 뚫린 도넛 모양으로 거대한 우주선을 연상시킨다. 미국 멘로파크에 있는 페이스북 사옥은 축구장 7개를 합친 규모로 단층의 오픈 플랜 형태 사무실로 지어졌다. 직원 2천800명이 칸막이 없이 열린 채로 서로 얼굴을 맞대고 소통하며 일하고 있다. 구글이 2018년 발표한 캘리포니아 서니베일 캠퍼스 계획안은 직원들이 일하거나 거주할 수 있는 공동체 친화적인 공간을 구성해 주택과 교통이라는 삶의 큰 이슈를 해결하고자 했으며, 2021년 이전 개장을 목표로 하고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는 단순히 물리적인 환경이나 시스템으로만 돌아가는 공간이 아니라 여러 세대의 시간이 중첩되며 만들어진 시간의 무늬 위에 다시 새로운 무늬가 더해지며 생기는 그림과도 같다. 저자들은 "많은 이미지가 파편처럼 여기저기 널려 있고, 파편 위로 빛들이 난반사되어 일정한 형상을 인식하기 힘들다"며 "그래서 우리는 도시라는 책을 천천히 읽으며 그 모습을 이어 붙여야 한다"고 말한다. 308쪽, 1만6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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