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집 강아지 이름은 봄이다. 열두 해 전 어느 봄날 식구의 일원이 되었다. 여느 강아지들처럼 세 살 정도 아이의 지능을 갖고 있는 봄이는 자신과 관련된 단어는 물론 문장까지 이해한다. 예를 들어 ○○한테 밥을 달라고 하라면 자신에게 밥을 줄 사람이 ○○이라는 걸 알고 그에게로 가서 정면으로 광선을 발사한다. ○○을 다른 사람으로 바꿔 말하면 다른 이에게 가서 꼬리를 세차게 흔든다. 문장 안에서 단어가 변형된 품사를 이해하는 것이다.
그런 봄이가 요즘 예전 같지 않다. 잠시 깨어 있는 걸 제하곤 대부분의 시간을 그냥 잔다. 귀가 잘 안 들리기도 하지만 한 해 전부터 앓기 시작한 병 때문에 그렇다. 그러다 보니 봄이와의 마지막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세 살 천사와 함께한 즐거움이 다가올 상실감으로 희석되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 포스트 봄이를 키운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인 듯싶다.
그런데 만일 예쁜 세 살로 변함없이 머물 수 있는 강아지가 있다면 어떨까. 시끄럽지도 않고, 아프지도 않고, 배변 관리도 필요 없고, 털도 날리지 않고, 주인을 반기며, 그렁그렁한 눈망울로 귀를 쫑긋거리고, 배를 뒤집는 애교까지 부리고, 무언가를 가르치면 배울 수 있는 강아지가 있다면 말이다.
인공지능 기술은 그걸 가능케 한다. 인공지능의 한 분야인 딥러닝은 우리의 뇌가 뉴런이라는 신경망을 통해 자극을 처리하는 것처럼 뉴런에 해당되는 컴퓨터의 퍼셉트론이 여러 층으로 깊이 네트워크를 형성해 마치 복잡한 미로에서 출구를 찾아가듯 데이터에서 규칙을 찾도록 훈련하는 머신 러닝이다. 예를 들어 로봇 강아지는 전면에 부착된 카메라 이미지 픽셀의 명암과 테두리의 반복적인 패턴을 파악해 사람을 알아볼 수 있다. 마이크 구멍을 통해 간단한 명령을 알아듣고 몸에 있는 터치 센서로 행동이 강화될 수 있다. 이러한 것이 강아지 특유의 행동으로 연결되고 주인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더 많은 것을 학습할 수 있다면 그것은 생물과 무생물의 경계를 넘나드는 또 하나의 창조물이 될 것이다.
인공지능 기술은 이미 우리 생활에 속속 들어와 있다. 우리의 취향을 파악해 관심 분야를 추천하는 인터넷 검색 알고리즘부터 간단한 기능을 수행하는 음성 인식 비서, 높은 단계 자율주행 자동차의 출시 임박까지. 우리의 직업 또한 기술에 의한 영향을 피할 수 없게 될 전망이다. 안내, 배송, 물류, 방역, 의료 영역에서 자동화된 기계가 도입될 것이고 전체 직업의 반 이상에서 3분의 1 이상의 업무가 자동화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강아지는 어떨까. 그 또한 애완 로봇의 영향을 받게 되지 않을까. 그것이 휴일을 알고 주인과의 산책을 기대하며 아침부터 주인을 따라다니고 행동을 관찰하며 주인이 모자를 쓰는 순간 흥분이 절정에 달한다면. 또 주인을 깨우기 위해 속사포처럼 방으로 달려가 침대로 폴짝 올라간 뒤 주인의 얼굴을 핥고 온몸으로 치대며 애정 공세를 퍼붓는다면 그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로봇은 감정을 흉내 낼 뿐 강아지가 가진 동기와 욕망 그리고 감정이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애완 로봇은 이런저런 이유로 강아지 키우길 망설이는 사람들에게 선택되어 자신의 영역을 넓혀나갈 것이다.
인공지능으로 사라지는 일자리는 더 많은 새로운 일자리로 대체될 거라는 전망도 있다. 애완 로봇이 강아지 대신 선택되어 강아지 자리가 줄어들어도 강아지의 배변 훈련을 담당하고 주인이 없을 때 밥을 주고 함께 놀아주는 친구가 되도록 기술이 개발되고 활용되는 상황이 만들어진다면 유기견이 줄어들 수도 있는 것처럼 말이다.
2016년에 치러진 알파고와 이세돌의 바둑 대국은 기계의 지능이 인간의 능력을 넘어설 수 있다는 걸 보여준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경기 후 이세돌은 이세돌이 진 것이지 인간이 진 게 아니라는 의미 있는 말을 남겼다. 인간은 바둑처럼 승패에 대한 면밀한 예측이 필요한 곳에서는 인공지능에 질 수밖에 없지만 인간에겐 인공지능을 만들어 낸 상상력이 있으며, 감동하고, 영감을 받고, 개성을 가지며, 결과보다 과정이 더 아름다울 수 있다는 걸 보여줄 능력이 있다. 인공지능에 지지 않는다는 건 결국 인간다움을 잃지 않는 데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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