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스포츠 스타들의 전성시대가 도래하는가. 최근 들어 스포츠 스타들을 내세우는 예능 프로그램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 중에서도 KBS '축구 야구 말구'가 주목되는 건 박찬호와 이영표만으로도 충분히 채워지는 이들의 스포츠에 대한 진정성이 담겨 있어서다.
◆미니멀 스포츠예능의 몰입감
KBS '축구 야구 말구'는 그 제목 속에 프로그램의 기획의도가 모두 담길 정도로 '미니멀'한 프로그램이다. 축구를 대표하는 이영표와 야구를 대표하는 박찬호가 출연하지만, 두 레전드 스포츠 스타가 해야 하는 스포츠 종목은 축구, 야구가 아니라 '생활스포츠'라는 것. 여러 명의 스포츠 스타들이 대거 출연해 함께 운동을 하는 여타의 예능 프로그램들과 일단 이 프로그램은 선을 긋는다. KBS '천하무적 야구단'도 SBS '진짜 농구 핸섬타이거즈'도, JTBC '뭉쳐야 찬다' 같은 야구, 농구, 축구를 소재로 한 예능 프로그램들이 다수의 스포츠 스타나 출연자들을 세워 놓던 방식을 떠올려 보면, 이영표와 박찬호 두 사람을 달랑 세워놓은 '축구 야구 말구'의 단출함이 눈에 띈다. 여기에 두 사람 사이를 중재하고 때로는 경기를 중계하는 오마이걸 승희가 함께 할 뿐이다. 그래서 처음 이 프로그램을 접하면 뭐 이렇게 미니멀한 스포츠 예능 프로그램이 있나 싶어진다.
물론 '축구 야구 말구'에는 이들 말고도 테니스 레전드 이형택과 배드민턴의 이용대 선수 그리고 탁구의 유승민 코치가 출연했다. 이들에게 짧게 '지옥훈련(?)'을 시키기 위함이었다. 즉 전국을 돌며 숨은 생활체육 고수들과의 일전을 벌이기 전에, 박찬호와 이영표의 타고난 기량이나 남다른 승부욕 같은 걸 슬쩍 들여다보기 위한 '사전 몸 풀기'에 이들이 출연했다. 하지만 그들은 말 그대로 조력자로서의 게스트 역할을 충실하게 할 뿐이었다. 그들이 나와 오히려 주목시킨 건 이 프로그램을 이끌 두 사람, 이영표와 박찬호의 남다른 존재감이었으니 말이다. 처음 테니스 라켓을 잡고 한 시간 정도 배운 것으로 랠리를 하는 두 사람이나, 배드민턴 셔틀콕으로 수박을 깨는 묘기를 선보이며 우쭐해하던 이용대 선수를 당황하게 만든 두 사람이 단번에 해낸 수박 깨기 장면, 또 가르치면 스펀지처럼 빨아들이는 기술에 유승민 코치를 놀라게 한 두 사람이 오히려 부각된 것.
이렇게 된 건 최근 예능 프로그램이 과거 리얼 버라이어티 시절 집단 체제에서 벗어나 1인(혹은 소수)에 집중하기 시작한 새로운 트렌드가 반영되었다. 마치 MBC '무한도전'의 집단 MC들 대신 지금은 '놀면 뭐하니?'의 유재석이 중심에 서고 다양한 인물들이 프로젝트에 따라 참여하고 빠지는 방식으로 변한 것처럼, '축구 야구 말구'는 박찬호와 이영표로 집중시키고 때때로 필요할 때마다 다른 레전드들을 소환하며 참여시킬 것으로 보인다.
◆왜 박찬호이고 왜 이영표인가
그런데 왜 하필 그 많은 레전드 스포츠 스타들 중에 박찬호이고 이영표일까. 두 사람 모두 야구와 축구라는 분야에서 독보적인 존재감을 드러냈던 스포츠 스타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하지만 스포츠를 소재로 하고 있다고 해도 중요한 건 이들의 합이 만들어내는 예능적인 케미다. 박찬호와 이영표는 스포츠 스타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지만 서로 사뭇 다른 캐릭터의 소유자들이다. '투 머치 토커'라는 닉네임을 가진 박찬호는 쉴 새 없이 이야기를 하는 반면, 이영표는 이를 들어주면서도 할 이야기는 하는 스타일이다. 게다가 이야기의 방식도 박찬호는 다소 엉뚱한 방식으로 기발한 상상력을 드러내는 편이지만, 이영표는 논리적으로 설명하려는 의지가 더 엿보인다.
하지만 두 사람을 더욱 극명하게 나누는 건 다름 아닌 그들이 몸담았던 스포츠 종목의 차이다. 처음 만나서부터 제목을 갖고 축구와 야구 중 어느 걸 앞에 붙여야 하는가를 갖고 나름의 논리로 말 대결을 벌이는 과정에서 이들은 자신이 몸담았던 스포츠가 왜 더 수준 있는가를 어필한다. 이영표가 축구를 하는 국가가 훨씬 많다는 논리를 쓰자, 박찬호는 이영표가 차는 공을 자신이 한두 개 막을 수는 있지만 자신이 던지는 공을 이영표는 못 받을 거라는 다소 엉뚱한 논리로 야구를 어필한다. 물론 이들은 스포츠라는 공통 지점으로의 공감대를 드러내기도 한다. 이영표는 껌 씹으며 할 수 있는 야구를 스포츠 범주에 포함시킬 수 있는가 하는 다소 박찬호의 심기를 건드리는 이야기를 하다가도 9회말 2아웃 상황에서 투수가 던지는 공 하나가 갖는 몰입감은 그 어느 것보다 클 것이라고 공감한다. 결국 논리로는 어려워 공기 대결로 이영표가 이김으로써 '축구 야구 말구'라는 제목이 결정됐지만, 두 사람 사이의 축구와 야구를 대표하게 될 때 만들어지는 긴장감은 이 프로그램의 중요한 동력이 된다. 또한 서로 다른 종목의 선수들이었지만 이제 그것 말구 생활체육 종목을 함께 하며 갖게 될 동지 의식과 형제 같은 관계는 이 프로그램의 또 다른 관전 포인트가 될 것으로 보인다.
◆코로나 시대, 생활체육에 관심 높아져
'축구 야구 말구'는 생활체육을 널리 알리는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KBS라는 공영방송의 가치를 드러낸다. 이미 이전에 '우리동네 예체능'에서도 시도했던 생활체육이 코로나19 시대에 맞게 새 단장을 하고 등장한 것이랄까. 당시 '우리동네 예체능'은 그 제목에서 풍기듯 마치 동네 잔치 같은 시끌벅적함이 존재했다. 어느 지역을 가고 그 곳에서 생활체육인들을 만나 한 판 벌이는 대결은 동네잔치처럼 벌어졌으니까. 하지만 코로나19로 인해 물리적 거리두기가 일상이 된 지금, 그런 동네잔치는 부적절한 일이 될 수밖에 없다. 이 프로그램이 이처럼 미니멀한 출연자들을 세워두고 전국의 고수들을 찾아나서는 방식을 채택한 데는 코로나19의 영향이 깃들어 있다는 걸 부정하긴 어렵다.
또한 코로나19로 인해 야외활동은 물론이고 운동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점점 줄어들고 있는 현실은 최근 대중들이 스포츠에 대한 관심이 커진 이유로 작용한다. 스포츠 경기장을 찾는 일도 점점 어려워지고, 아파트 커뮤니티 센터에 있는 헬스클럽도 문을 닫는 요즘, 스포츠를 소재로 하는 예능 프로그램은 대리충족의 장이 된다.
물론 '축구 야구 말구'에서 다른 요소들보다 프로그램에 대한 집중도를 높여주는 건 박찬호와 이영표다. 이제 너무 많은 스포츠 스타들이 방송에 진출해서인지 요즘은 '스포테이너'라는 말이 과거만큼 많이 쓰이지 않는 상황이다. 그만큼 스포츠 스타들의 방송 진출이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많은 스포츠 스타들이 본연의 스포츠에 대한 진정성을 담아 방송에 들어오는 경우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예를 들어 서장훈이나 허재, 현주엽 같은 스포테이너를 떠올려보라. 농구를 비롯한 스포츠가 먼저 떠오르는가 아니면 다른 예능의 장면들이 떠오르는가.
그런 점에서 '축구 야구 말구'는 스포츠인으로서의 박찬호와 이영표의 진정성이 묻어나는 프로그램이 아닐 수 없다. 남다른 적응력을 보여주는 이영표와 남다른 근성과 승부욕을 드러내는 박찬호의 기저에는, 자신들이 했던 스포츠 종목에서 그들이 어떻게 최고의 위치에 올랐는가를 알 수 있는 면모들이 드러난다. 게다가 이들이 갖는 스포츠에 대한 남다른 철학이 대화를 통해 전해지는 면도 프로그램의 색다른 묘미가 아닐 수 없다. 물론 이들의 티키타카 케미가 만들어내는 예능적 재미도 빼놓을 수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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