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내가 여의도에 있음을 확인하는 시간이다. 대구시 관계자로부터 전화가 온다. "홍 기자, 우리 예산 어떻게 됐는지 더 취재된 내용 있습니까?"
경북 안동 풍천면에 있어야 할 도백(道伯)도 여의도에 모습을 드러낸다. 그러고는 경북에 지역구를 둔 국회의원들에게 말한다. "내년 국비 예산 확보에 최선을 다해 도와 주십시오."
이 대목에서 지난날 읽은 기사가 떠오른다. 2016년 8월, 지금은 고인이 된 한동수 청송군수는 세종시에 있는 기획재정부 청사 앞에서 아이스아메리카노를 들고 서 있었다. 당시 그는 청사 밖으로 나오는 예산실 사무관을 기다렸다. 지역 사업 관련 국비 지원 필요성을 한 번 더 설명하려고 땡볕을 불사한 것이다.
어쩌면 이 같은 모습은 당연한지도 모르겠다. 야권에서 '정권 황태자'로 부르는 김경수 경남도지사마저 지난 7월 기재부 예산실장과 예산총괄심의관을 시작으로 사회예산심의관, 경제예산심의관, 복지안전예산심의관, 행정국방예산심의관을 차례로 만난 뒤 "재정분권이 실현되지 않은 상황에서 지역 발전을 위해 지방정부에 가장 중요한 문제 중 하나가 국비 예산 확보"라며 "정부에 지역의 현실, 균형발전의 중요성과 절박함을 충분히 설명하려고 노력했다"고 했을 정도이니 말이다.
3년 전이었다. 2017년 6월 14일 문재인 대통령은 시·도지사 17명 앞에서 자신의 대선 공약이었던 '연방제에 버금가는 강력한 지방분권 실현'을 재확인했다. 문재인 정부는 또 이를 달성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과제로 강력한 재정분권 추진을 설정했다. 국세와 지방세 비율을 8대 2 에서 7대 3을 거쳐 6대 4 달성을 목표로 지방소비세 및 지방소득세 비중 확충, 국고보조사업 개편 등의 계획도 내놓았다.
그럼에도 아직 여의도의 늦가을 풍경은 바뀌지 않았다. 여전히 10월부터 11월 사이 전국 광역단체마다 단체장과 공직자들이 국회 문지방이 닳도록 드나들며 '한 푼만 줍쇼' 신세가 돼 머리를 조아리고 읍소한다.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시대에 지방분권, 재정분권의 시곗바늘만은 지방소비세 세율 10%포인트(p) 인상, 8조5천억원 이양, 국세와 지방세 비율 7.5대 2.5 수준으로 더디 움직여서다.
매년 이 무렵이면 국비를 한 푼이라도 더 받아가려고 서울을 찾는 지역 공직자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현재 조세 체계에서 법인세와 부가세, 소득세 등 굵직굵직한 세수는 모두 중앙정부가 가져가니 지방재정은 항상 열악할 수밖에 없다고. 이러다 보니 자치단체가 할 수 있는 일도 제한적이라고. 이래서는 행정 부처와 국회가 세종으로 이전한들, '대한민국의 수도는 서울'이라는 불문의 관습헌법이 뒤집힌들 지역은 식민지이자 서울에 의존적 타자의 자리에 그대로 머물 수밖에 없다.
온전한 의미의 지방자치는 중앙집권 사고에 찌든 서울의 기득권층이 받아들이기 가장 싫은 이야기일 테다. 하지만 지역이 중앙정부로부터 지원받아 돈을 쓰는 전통적 지방재정 운영 시스템으로는 사회복지비 급증, 인구 감소 대책, 환경문제 등으로 가파르게 상승하는 지출을 감당할 수도 없고, 지역민의 기본권 보장도 힘들다.
부디 돈주머니를 움켜쥔 이들이 그렇게 좋아하는 효율성 측면에서도 재정분권화는 정부를 비롯한 공공 부문의 운용과 소득재분배 효과에 긍정적 효과를 미친다는 연구 결과가 있음을 상기하길 바라본다. 그래서 언젠가는 여의도의 가을이 지금과는 완연하게 달라져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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