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그립습니다] 성백광 씨 아버지 故 성보환 씨

전날까지도 살아오신 얘기 들려주시고 밤새 타계하시니…너무 허무해

아버지에게는 마지막 가족여행이 되었던 지난해 새해, 온가족이 함께 했던 1박 2일의 포항 여행 때의 아버지와 어머니 모습.가족제공
아버지에게는 마지막 가족여행이 되었던 지난해 새해, 온가족이 함께 했던 1박 2일의 포항 여행 때의 아버지와 어머니 모습.가족제공

올해 1월 1일 새벽에 아버지께서 갑자기 돌아가셨다. 어둑한 새벽에 아버지는 병실 간호사에게 물 한 잔 달라고 했단다. 무엇이 아버지 속을 그리도 타게 했는지 아버지는 물 한 모금으로 목 한번 축이시고 거짓말처럼 우리 가족 곁을 영원히 떠나시고 말았다. 돌아가시기 전날까지도 병실 침대에 누운 채 오랜 세월 살아온 얘기를 우리 가족에게 들려주었는데…. 심지어 코에 산소 호스를 꽂은 채 손주들 보란 듯 제 팔을 힘껏 당기시며 힘자랑까지 했었는데 밤사이 눈을 감으시고 말았다.

정말 꿈만 같다. 오래전 교통사고로 사경을 헤맬 때도 아버지는 불사조처럼 일어나셨기에 아버지는 늘 오래도록 우리 가족 곁에 있을 것이라 굳게 믿었다. 그런데 이런 믿음이 너무도 허무하기만 하다. 아마도 아버지는 자신이 돌아가시는 순간 우리 가족들의 슬픈 표정을 보고 싶지가 않았던 모양이다. 아니면 그동안 너무나 힘든 여정을 참고 견디기에 지쳐버려 아무도 없는 고요한 시간에 혼자서 몰래 떠나고 싶었던 것이었을까?

왜 아무도 없는 이른 새벽에 눈을 감으신 걸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돌아가신 아버지 마음을 도저히 알 수가 없다. 그 물음이 지금도 아버지를 사무치도록 보고 싶게 만든다. 아직도 못다 한 얘기들이 많은데. 아버지는 우리 다섯 남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얼마나 많았을까? 정말 꼭 해야만 할 얘기들은 어떡하고?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아버지가 홀로 사셨던 시골집을 찾았다. 맞벌이하는 우리 부부를 위해 어머니는 우리와 함께 사시고 아버지는 시골 고향 마을에서 10여 년을 홀로 사셨다.

시골집에 열쇠 꾸러미랑 농기구 하나하나마다 이름표와 함께 가족들이 찾기 쉽도록 가지런히 정리해 둔 흔적을 난 금방 알 수가 있었다. 집안 행사 때마다 멋지게 뽐내기 위해 입었던 회색빛 두루마기는 장롱 속 깊숙한 곳에 가지런히 놓아두었고 농사일에 막 입던 옷들은 구석진 옷걸이에 단정히 걸어 놓은 모습이 마치 농사짓는 가난한 선비 모습을 연상케 했다. 지금도 아버지가 사용했던 물건을 만질 때면 자꾸만 아버지 모습이 아련 거려 눈물이 마구 쏟아진다.

요즘 주말마다 아버지가 홀로 계셨던 시골 촌집을 자주 간다. 지금은 초겨울의 문턱이라 아버지가 안 계신 시골집 마당은 마치 내 마음처럼 황량하기만 하다. 며칠 전에는 아버지가 손수 만드신 텃밭에서 감을 땄다. 그리고 감 껍질을 깎아 곶감을 만들기 위해 처마에 감을 매달았다. 아버지가 살아계실 때 하던 방식 그대로 옆에서 보고 배운 그대로 따라 했다. 그리고 아버지가 가꾸어 놓은 촌집에서 지금까지 맡아 보지 못한 이 세상에서 가장 깨끗하고 신선한 공기를 마시고 왔다. 그곳에 갈 때마다 살아계실 때 자주 오지 못한 것이 자꾸만 후회된다.

요즘 멀리서 나이 드신 분들을 볼 때면 왠지 꼭 아버지가 걸어오는 것처럼 느껴진다. 심지어는 길을 걸을 때 뒤에서 들리는 나이 드신 분의 목소리는 마치 아버지 목소리처럼 들린다.

돌아가시기 며칠 전, 아버지는 자장면이 먹고 싶다고 말씀하셨지만, 병원에서 허락해주지 않아 드시지 못한 것이 한이 되어 앞으로 난 절대 자장면을 먹지 않기로 했다. 혹시 자장면 먹을 때 아버지 생각이 날까 두려워서다. 지금도 아침 잠자리에서 눈을 뜨면 제일 먼저 아버지가 생각난다. 거짓 없는 자식 사랑으로 가득 찬 아버지의 모습이 정말 그립다. 헛웃음 짓는 얼굴도 보고 싶다.

아침마다 하시던 산책이었는데 왜 하필 그날은 계단에서 넘어지셨나요? 넘어지지만 않았다면 갈비뼈도 부러지지 않았을 것이고 부르진 갈비뼈가 폐를 찌르지도 않았을 것이고 바닥에 머리도 안 부딪혔을 텐데. 만일 시간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그날 아침 산책만큼은 꼭 말리고 싶다.

아버지께서 요양병원으로 옮기기 전 대학병원 중환자실에 홀로 누워계실 때, 매일 퇴근 후 곧장 병원으로 달려갔었다. 어둑한 병실에서 홀로 두려움에 잠 못 이루었을 아버지를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메어온다. 요즘도 가끔 아버지 전화번호를 눌러본다. 하지만 아무리 눌러도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너무나 허망하다. 정말 꿈속에서라도 자주 불러 보고 싶고 만져 보고 싶은 얼굴이 바로 아버지다. 하늘나라에 계시는 아버지께 이 편지를 띄우며 나즈막히 불러봅니다.아들 성백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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