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노정희의 추억의 요리산책] 김장하는 날 먹는 수육

김장김치와 수육
김장김치와 수육

나다니시면 넘어진다고 집안에만 있으라는 오빠와, 평생 호밋자루 쥐고 살았는데 어찌 손 놓고 있겠냐는 어머니 사이에 실랑이가 벌어진다. 보다 못한 언니가 제안했다. 어머니가 집 안팎 텃밭에 소일거리로 푸성귀 심어두면 가져다 먹겠노라고.

찬바람 불자 전화기에 불이 붙었다. 무와 배추를 빨리 뽑아가라는 것이었다. 어머니 성화에 못이긴 언니는 시골에서 먹을거리를 잔뜩 실어왔다. 오가는 시간과 기름값 따지자면 턱도 없는 셈이지만 어머니 마음 편하면 그것으로 족하다고 했다. 그런데 언니는 바통을 내게로 넘긴다. 시골에서 가져온 채소를 반으로 나눴으니 가져가란다. 올해는 하는 일이 바쁘고, 양념도 비싸서 김장을 건너뛰겠노라고 해도 막무가내다.

밀고 당기기를 몇 차례 하다가 결국 남편이 호출되어 두류동에서 범물동으로 채소를 싣고 왔다. 주방에 쌓아놓은 채소 무더기를 보니 걱정이 앞선다. 차일피일 미루다가는 이파리가 뜨거나 짓무를 것이다. 어머니가 흙 고랑에 엎디어 가꾼, 날마다 들여다보며 키운 푸성귀가 아닌가. 그 정성을 생각하니 날밤을 새워서라도 김장을 할밖에.

시골에는 겨울이 빨리 찾아온다. 겨우내 먹을 김장 준비를 하면 온 마당에 잡다한 그릇이 가득하였다. 김장하는 날에는 옆집, 뒷집 아주머니들까지 합세하여 왁자했다. 사랑채에는 동네 아저씨들이 모여 탁주 잔을 돌렸고, 사랑채 가마솥에는 돼지고기가 푹푹 삶겼다. 절인 배추는 동네 아주머니들이 버무리고, 어머니는 음식 해대기 바빴다. 배추 뽑고, 다듬고, 절이고, 씻고, 버무리고, 뒷마무리까지 마치면 사나흘은 족히 걸렸다.

아버지도 김장 때는 손 쉴 틈이 없었다. 담장 아래 구덩이 파서 김칫독 묻은 후, 독에 티 들어갈까 봐 짚을 손질해 두툼하게 깔았다. 나무둥치를 삼각뿔 모양으로 세워 묶은 후, 새끼를 꼬아 만든 거적때기를 둘러 김치 광도 만들었다. 땅을 파서 만든 움에 무와 배추도 보관했다. 김장하는 날은 잔칫날이었고, 이웃 간의 품앗이 행사였다.

그해는 몹시 추웠다. 어머니는 종일 배추 절이고 양념 장만하느라 파김치가 된 상태였다. 그런데 뒷간에 간 할아버지가 한참이 지나도 기척이 없었다. 어머니는 조심스레 할아버지를 불렀으나 대답이 없었다. 언니는 아버지를 찾으러 뛰어나갔고 집안은 갑자기 소란스러워졌다. 살얼음 물에 씻긴 김장거리 배추는 기름칠한 솥뚜껑에서 배추전으로 바뀌는 신세가 되었다. 서울에서 숙부가 내려오고, 동네 사람이 득시글거렸다. 들어설 방이 없어 사촌 동생이랑 뒤란 감나무 아래에서 놀고 있는데, 작은언니와 재종 언니는 눈물이 나오지 않는다며 침을 발랐다. 할아버지는 내가 초등학교 2학년 때, 김장 준비로 한창 바쁜 날에 떠나셨다.

고조리서에는 김장 양념으로 소금, 후추, 천초, 생강 등을 사용했다. 고춧가루는 임진왜란 때 일본 쪽의 무기 역할을 했다는 얘기가 전한다. 최루탄과 비슷한 용도로 쓰이지 않았을까. 17세기 이후부터 고춧가루가 김치에 사용되기 시작했다. '김치 담그기'는 2017년 11월 국가무형문화재 제133호로 등록되었다. 우리나라 전 지역에 전승되는 생활관습이라 특정한 보유자나 단체를 지정하지는 않았다.

고조리서를 참고하여 김치를 담갔다. 속을 넣지 않고 생강, 젓갈 등 기본양념만으로 버무렸다. 해가 바뀌면 김장 맛이 어떠할지 가늠하려고 한다. 김장하는 날에 빠지지 않는 게 돼지고기 수육이다. 삶아 익힌 고기는 원래 '숙육(熟肉)'이었다. 발음의 편의상 'ㄱ'이 탈락해서 '수육'으로 부르게 된 것이다. 김장김치와 수육으로 속대쌈을 준비한다. 예전에는 거부했던 비계를 양념 버무린 배추속대에 싸서 우물거린다. 탁주 한잔 곁들이니 그야말로 금상첨화이다.

노정희 요리연구가
노정희 요리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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