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기고]인권은 국론 통합의 출발점

정상환 변호사(전 국가인권위 상임위원)

정상환 변호사(전 국가인권위 상임위원)
정상환 변호사(전 국가인권위 상임위원)

1948년 12월 10일. 파리에서 개최된 유엔총회는 2년여에 걸친 논의 끝에 세계인권선언문을 채택했다. 세계인권선언문은 최소 5천만 명의 인명 피해를 냈던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인종과 피부색, 민족, 성별에 관계없이 모든 인간이 누려야 할 기본적 권리에 대한 인류의 염원이 집약된 결과물이었다. 미국 등 자유 진영과 소련과 같은 사회주의 진영이 같이 참여한 회의였기에 공통의 합의를 도출한다는 것이 쉽지 않았고, 결국 소련 등 사회주의 6개국은 사유재산권, 종교의 자유 등 문제로 최종적으로 기권했다. 하지만 세계인권선언에는 사회주의 국가들이 주장한 사회권에 관한 규정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

인권선언문 채택에 결정적 역할을 한 사람은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의 부인 엘리너 루스벨트 여사였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소아마비로 인한 지체장애를 딛고 미 역사상 전무후무한 4선 대통령을 역임한 인물이었는데, 루스벨트 여사는 남편 못지않은 강한 여성으로서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큰 자취를 남겼다. 그녀는 기존의 퍼스트레이디들과 달리 여성의 권리, 사회적 약자의 인권 증진을 위해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냈다. 남편 사후 그녀는 트루먼 대통령의 요청으로 새로 탄생한 유엔의 인권위원회 의장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했다.

세계인권선언문은 전문과 30개 조문으로 이루어져 있다. 전문은 인권선언의 배경과 인권의 가치, 목표를 담고 있는데, "…사람들이 폭정과 억압에 대항하는 마지막 수단으로서 반란에 호소하도록 내몰리지 않으려면, 인권이 법에 의한 지배에 의하여 보호되어야 함이 필수적…"이라고 선언하고 있다. 인권보호가 각 국가와 개인의 자발적인 선의에만 의존해서는 안 되고, 법치주의의 확고한 기반 위에, 그 보호막 밑에 서야 한다는 점을 명시하고 있다.

제1조는 "모든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롭고, 존엄성과 권리에 있어서 평등하다. 사람은 이성과 양심을 부여받았으며 서로에게 형제의 정신으로 대하여야 한다"며 인권의 대의를 선포하고 있다. 30개 조문은 크게 '시민적‧정치적 권리'에 관한 규정과 '경제적‧사회적‧문화적 권리'에 관한 규정으로 나뉜다. '시민적‧정치적 권리'는 생명권, 안전권, 법 앞의 평등,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 무죄추정의 원칙, 사유재산권, 종교의 자유 등이 포함되어 있다. '경제적‧사회적‧문화적 권리'는 사회보장제도, 일할 권리, 휴식과 여가에 관한 권리, 학습권, 문화향유권, 자신과 가족의 건강과 행복을 위한 적절한 생활향유권 등이 규정되어 있다.

그렇다고 인권이 무제한으로 보장되지는 않는다. 모든 사람은 공동체에 대한 의무를 가지며, 자신의 자유와 권리를 행사하기 위해 타인의 권리와 자유를 침해할 수 없다. 공동체가 없이는 인격의 자유롭고 완전한 실현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29조 참조)

올해는 세계인권선언이 제정된 지 72주년이다. 인권의 역사라는 면에서 많은 굴곡을 거쳤고, 아쉬운 점이 없지 않지만 국제사회에서 더 이상 한국의 인권 상황이 큰 이슈가 되지 않을 정도로 발전을 이룩했다. 진영 간, 남녀 간, 세대 간으로 나뉘어 극한 대립으로 치닫는 현 상황에서 인권 문제가 또 하나의 분열 요소가 아니라 공동체의 유지와 번영이라는 커다란 목표 아래 국론 통합의 출발점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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