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석재현의 사진, 삶을 그리다]팔공산의 향기/강위원 작

소년대의 신선송, 270년 전 대산 이상정이 고색창연한 소나무라는 기록이 있다
소년대의 신선송, 270년 전 대산 이상정이 고색창연한 소나무라는 기록이 있다
석재현 아트스페이스 루모스 대표
석재현 아트스페이스 루모스 대표

11월 초쯤, 참 오랜만에 팔공산을 찾았다. 필자가 기획한 '굿_영혼의 숨결' 전시와 관련한 촬영을 위해서였는데, 수능을 앞둔 시점이라 그런지 합격을 기원하는 학부모들의 모습이 자주 곁을 스쳐간다. 가뜩이나 긴장되는 시험이라, 수능 때만 되면 부는 찬바람도 야속한데 올해는 코로나19까지 정말 산 넘어 산이었다. 편치 않은 상황에 수능을 치르는 자녀를 위해, 짊어진 무게를 조금이라도 덜어주고픈 마음이, 넓은 그늘을 드리운 '갓바위 부처님' 앞에서 얼마나 간절했을까.

공산의 미소로 불리는 갓바위 부처의 측면모습
공산의 미소로 불리는 갓바위 부처의 측면모습

골마다 옛 절이 있고 산등성이 구석구석 불상과 탑을 만날 수 있는 곳, 팔공산은 신라, 고려, 조선 등 왕조가 달라도 늘 약사여래를 신앙의 대상으로 삼는 약사 신앙의 1번지였다. 천 개가 넘는 돌계단을 헉헉대며 밟고 올라서야 마주할 수 있는 갓바위 부처는 '평생 한 가지 소원은 들어준다'고 한다. 오랜 시간이 흐르고 흘렀지만 저마다의 기원을 품은 채 머리를 조아리는 중생들의 모습은 그 옛날에도 지금도 변함이 없다. 이렇게 국내의 다른 산들이 넘보지 못할 역사와 문화, 경승을 지닌 팔공산의 오랜 역사와 향기를 사진으로 기록한 이가 있으니, 바로 다큐멘터리 사진가 강위원이다.

하늘정원에서 본 동봉과 사자바위, 그리고 팔공여봉
하늘정원에서 본 동봉과 사자바위, 그리고 팔공여봉

그는 1988년 사진집 '팔공산'을 출간한 데 이어 2017년에는 신라 오악 중에서 유독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지 않은 팔공산의 현실을 알리는 '팔공산, 그 짙은 역사와 경승의 향기'란 사진전을 열었다. 국립공원 승격의 염원을 담은 사진집과 전시를 통해 팔공산의 인문학적 진면목으로 사람들을 이끌었던 그는 지난 11월, '팔공산의 향기'를 주제로 22번째 개인전을 열기도 했다.

워낙 산자락이 넓은 탓에 골짜기 하나를 달리하면 분위기와 표정이 사뭇 다른 팔공산, 그 흘러내린 산줄기를 얼마나 누볐기에 이런 작업이 완성됐을까. 그의 표현처럼 우리 민족의 성산이자 문화와 역사의 발원지요 빼어난 경관과 희귀한 생태 자원의 보고라는 팔공산은, 그의 사진 속에서 때론 웅장하고 때론 경이롭게 다가온다.

팔공산은 백두산에서 시작된 산줄기가 내륙으로 흘러 마지막 힘을 모아 솟은 산이라 그만큼 기운이 강하다고 한다. 김유신 또한 이 산에서 기도를 하고 삼국을 통일했다고 전해지는데 그의 수도처였던 중앙암, 공산의 미소라 불리는 갓바위 부처의 모습, 팔공산에서 가장 강한 기운이 뿜어져 나온다는 소년대의 노송과 짙은 물안개를 병풍 삼은 듯한 동화천의 아침까지 그의 사진을 보고 있노라면 그 옛날 팔공산의 역사와 향기가 고스란히 전해지는 듯하다.

김유신장군의 수도처였던 중암암, 중앙석굴위의 만년송
김유신장군의 수도처였던 중암암, 중앙석굴위의 만년송

사진은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철저한 인식의 작업'이라 말하는 그는 아주 오래전부터 우리 삶의 근원을 찾는 묵직한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중국 동북 3성에서 살아가는 조선족들의 삶을 비롯해 백두산, 두만강, 압록강에 이어 팔공산의 모습까지 오랜 시간 삶의 뿌리를 찾는 그의 작업은 큰 산처럼 든든하게 지역 예술계를 지키고 있다. 지역의 소중한 문화유산인 팔공산에 대한 깊이 있는 작품들을 감상하면서 2021년을 힘차게 맞이할 새로운 에너지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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