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경제는 1991년 버블 경제 붕괴라는 엄청난 위기 이후에 기록적인 저성장을 아직도 경험하고 있다. 잃어버린 30년의 단초가 된 버블 경제 붕괴 이후에도 1998년의 아시아 통화 위기, 2001년의 IT 버블 붕괴, 2008년의 세계 금융위기, 2011년의 동일본 대재난과 같은 큰 경제적인 충격이 이어져 왔다.
그러나 엄청난 자연재해와 세계 규모의 경제적인 충격에도 일본 경제는 위기 이전의 수준으로 회복했다. 하지만 버블 경제 붕괴의 충격은 네 번에 걸친 큰 위기와 달리 버블 붕괴 이전 수준으로 회복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장기적인 경제성장 추세도 바꾸어 놓았다.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MIT대학 솔로 교수의 표준적인 경제성장 이론에 의하면 자산 가치의 붕괴로 인한 금융 충격은 1인당 소득에 장기적인 효과를 미치지 않아야 하는데, 이 이론은 지난 30년 동안 일본 경제의 현상을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버블 경제의 붕괴로 인한 위기와 네 번에 걸친 경제위기는 발생원이 어디인지에서 차이가 있다. 네 번에 걸친 경제위기처럼 외생적으로 주어진 일시적인 충격은 경제 내부의 힘으로 극복할 수 있지만, 버블 경제의 붕괴와 같은 내부적인 모순에 의해 발생한 구조적인 충격은 일시적인 방편으로 회복될 수 없고, 경제에 장기적인 악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일본 경제의 내부적인 모순은 아이러니하게도 과거 일본의 눈부신 경제적인 성공을 가져다 준 고용과 생산 시스템에 있다. 종신고용제, 연공임금제, 기업별 노동조합으로 이루어진 경직적인 고용 시스템은 버블 경제 붕괴로 생긴 불황의 국면에서 새롭게 고용시장에 진입하는 청년들의 채용을 어렵게 했고, 1993년에서 2004년 사이에 졸업한 취직 빙하기 세대를 만들고 말았다. 그리고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수직계열화로 이루어진 생산 시스템은 내수 침체와 국제경쟁력의 상실로 대기업이 어려워 지면서 대기업에 의존해 온 중소기업을 더 어렵게 했고,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이중 구조의 문제를 선명하게 드러나게 했다.
취직 빙하기 세대(현재 35~49세)의 취직이 어려워지고, 일본 전체 고용의 70%를 담당하는 중소기업에 취직한 노동자들의 임금이 낮아지면서 청년 세대의 결혼율은 급격히 낮아졌고, 저출산으로 일본 사회의 고령화가 급속하게 이루어졌다. 그 결과 일본은 취직 빙하기가 끝나는 시점인 2004년부터, 산업혁명 이래 전쟁과 재난 없이 총인구가 감소하는 첫 나라가 되었다.
고령화와 인구 감소는 내수 침체를 가져와 물가 수준이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디플레이션을 발생시켰고, 이로 인해 기업의 수익은 악화되어 설비 투자 감소와 고용 축소로 이어져 다시 내수 침체와 물가 하락이 일어나 경기가 악화되고 청년 세대의 결혼율과 출생률의 하락이라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일본 청년들에 대한 앙케트 조사에서 결혼의 가장 큰 장애 요인은 결혼자금과 결혼 후의 주거 문제와 같은 경제적인 문제였다. 버블 경제 붕괴는 결과적으로 일본 경제가 내포하고 있었던 내부적인 모순을 극명하게 드러나게 했다. 일본은 드러난 내부적인 모순에 대해 근본적인 수술을 하지 않고, 미봉책으로 대응한 결과 잃어버린 30년이라고 불리는 시대를 낳고 말았다.
일본 경제가 장기적인 저성장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상황과는 대조적으로 한국 경제는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와 2008년 세계 금융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하고, 일본과 가장 근접한 1인당 소득 수준에 이를 정도로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루었다. 한국 경제는 세계에서 일본 경제와 가장 유사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경직적인 노동 관행,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이중구조, 정부 주도의 경제 등을 들 수 있다. 비슷한 경제구조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1990년대의 일본과 현재의 한국은 청년실업으로 인한 세대 간의 격차,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격차, 지역 간・계층 간 소득과 자산의 격차 등 겹치는 부분이 많다. 현 정부는 이 같은 한국 경제의 내부적인 모순을 해결한다는 명분을 내걸고 집권했지만, 잘못된 진단과 정책들로 역설적으로 내부적인 모순을 더 강화하고 있는 형국이다. 코로나19가 끝나도 한국의 청년들이 희망을 가질 수 없는 현실이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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