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주 목요일 거국적인 행사 하나가 무사히 끝났다. 이념, 세대, 지역, 계층으로 나뉘어 갈등과 반목의 골을 좀처럼 좁히지 못하고 있는 우리 사회 구성원들이 약속이나 한 듯이 모두 한마음으로 응원하고 격려를 보낸 행사, 바로 대학수학능력시험이다. 올해는 응시 인원이 가장 적었다지만, 그래도 49만 명이 넘는 청춘들이 미래의 자기 인생 등급을 결정지을 시험을 위해 이날 하루를 온전히 바쳤다.
수능 때면 단골로 등장하는 '미담'들 또한 올해도 어김없이 매스컴을 탔다. 지각이 우려되는 수험생들을 위해 운송 작전에 나선 경찰 순찰차, 생계를 잠시 내려놓고 수험생을 자신의 오토바이로 실어 나른 퀵 서비스 배달원, 수험표를 집에 두고 와 포기할 위기에 처한 수험생이 무사히 시험을 볼 수 있도록 조처한 감독관 등등이다. 이런 것이 매년 반복되던 레퍼토리라면 코로나19로 올해 새롭게 등장한 미담들도 있다. 확진 판정을 받았거나 감염 의심이 있는 수험생을 위해 교육청에서는 병원에 1인 1실의 별도 시험장을 마련했고, 교사들 또한 전신 방호복을 입는 불편을 무릅쓰면서 시험 감독관으로 자원하였다는 소식이 대표적이다.
그래서 그런지, 아이를 고사장으로 들여보내고 돌아서며 눈물을 훔치는 엄마들의 모습이나, 시험이 끝난 뒤 정문을 나서자마자 부모 품에 얼굴을 묻고 어깨를 들썩이는 수험생들의 모습이 올해는 더 애잔해 보였다. 코로나19 때문에 학교교육이 정상적으로 이루어지지 못한 것은 물론이고 잦은 방역 조치로 학원 수강도 여의치 않았을 터이니, 부모는 부모대로 아이는 아이대로 그 노심초사가 어떠했을지 이 과정을 먼저 겪은 경험자 입장에서 충분히 짐작이 간다.
그런데 그와 같은 감정의 이면에는 불쑥 치밀어 오르는 분노도 함께 자리함을 부정할 수 없다. 왜 우리는 저 아이들에게 항상 대견함과 애잔함이 교차하는 시선밖에 보내지 못할까? 수능 때만 되면 온 국민이 수험생들을 꼭 그렇게 안쓰러워하며 바라보아야 할까? 한 번의 시험으로 인생의 등급이 결정되는 이 야만스러운 제도를 그저 '변별력 확보'라는 주술에 걸려 계속 시행해 가야 하는 걸까? 수능이 목을 매어야 하는 시험이 아니라 수학여행처럼 고등학교 때 거치는 축제나 통과의례 정도로 받아들여지게 하는 방안은 없을까?
아무리 인간다움과 직결되는 감정일지라도, 배려나 동정은 그것이 표현되어야 하는 상황보다 애당초 표현될 필요조차 없는 상황이 더 낫다. '가정의 달'인 오월이 되면 이런저런 시상식이 많이 열린다. 그중 효부상이나 자랑스러운 어머니상 같은 것을 받는 분들의 스토리를 보면 대동소이하다. 대부분 어려운 환경 속에서 기꺼이 자기를 희생하며 가족을 위해 헌신한 사람들이다. 남편을 젊어서 일찍 여읜 뒤, 중풍으로 자리보전하고 누운 시어머니를 지극정성으로 모시면서 먹을 거 안 먹고 입을 거 안 입으며 자식들을 모두 훌륭하게 성장시켰다는 식이다.
그렇다면 그분의 입장에서 본다면, 가족을 위한 자신의 헌신이 기려져 상을 받는 것이 더 좋을까, 아니면 아예 그런 희생이 필요 없는 평온한 일생을 사는 것이 더 좋을까? 샘이 마르면 물고기들이 땅에 드러나게 된다. 그러면 비늘이 마를까 봐 서로 입김을 뿜으며 축여준다. 서로를 위하는 따듯한 풍경이다. 하지만 그러는 것보다는 물이 넘실대는 강과 호수에서 자유롭게 헤엄치며 서로를 잊고 사는 것이 더 낫다. '장자'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모두가 편안하고 만족한 삶을 누리고 있어 누가 누구를 배려하거나 동정할 필요조차 없는 사회, 그런 사회가 배려와 동정이 필요한 사회보다 더 나은 사회임은 누구도 부정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사회를 충분히 만들 수 있음에도 책임을 방기하고, 그저 습관처럼 안쓰러움의 눈길만 보낸다면 우리 모두는 집단적 마조히즘에 빠져 있다고 해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내년에도 후년에도 수능을 보는 우리 아이들에게 표할 수 있는 것이 고작 대견함과 애잔함이 버무려진 싸구려 감정뿐이라면 기성세대 모두는 '어른' 사표를 내야 한다. 그렇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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