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요리 프로그램에서 요리의 '요'자도 모르는 요리 왕초보들을 '요리'와 '어린이'를 합쳐 '요린이'라고 부릅니다. 등산 초보자는 '등린이', 헬스 초보자는 '헬린이'가 되지요. '초보' 또는 '어떤 일을 잘 해내지 못함'이라는 의미를 나타내기 위해 어린이라는 단어를 빌려오는 것은 어른들이 무심코 차별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한 작가는 '어린이의 미숙함을 어린이에 빗대는 건 비겁한 일'이라 말하기도 했습니다. 오늘은 어린이를 그 자체로 존중하고, 그래서 많은 어른들이 놓쳐버린 놀라운 세계를 만나게 된 어른들이 쓴 책 두 권을 소개합니다.

◆ 왼쪽 신발 끈을 혼자 묶는 아이의 얼굴을 보는 기쁨
우리 모두 한때 어린이였고, 우리 곁에는 늘 어린이가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어른들은 어린이란 존재에 대해 생각하며 살고 있을까요? 독서 교육 전문가인 김소영의 '어린이라는 세계'는 독서 교실을 운영하며 만난 어린이들의 이야기와 그 어린이들과 함께 하는 과정에서 만나게 된 놀라운 세계를 우리 앞에 펼쳐 보입니다.
왼쪽 신발 끈을 혼자 묶는 아이가 나오는 '시간이 걸릴 뿐이에요'는 이 책의 첫 번째 글인데요. 어린이를 바라보는 작가의 다정한 시선이 그대로 느껴집니다.
작가가 현성이와 함께 읽은 '시간이 흐르면'이라는 그림책에는 신발 끈을 묶는 어린이 모습이 '어려웠던 일이 쉬어지기도 해'라는 문장과 함께 등장합니다. 뭉클해진 작가는 "그러니까 어른이 되면서 신발 끈 묶는 일도 차차 쉬워질거야"라고 말합니다. 그러자 현성이는 담담하게 "그것도 맞는데, 지금도 묶을 수 있어요. 어른은 빨리 할 수 있고, 어린이는 시간이 걸리는 것만 달라요"라고 대답합니다.
작가는 말합니다. 어린이에게 빨리 하라고 눈치를 주지 말라고. 지금 어린이를 기다려 주면, 어린이들은 나중에 다른 어른이 될 것이라고.
현성이 외에도 마음을 담은 책을 선물로 건네는 자람이, 생활 계획표를 '게임, 야구, 놀기, 텔레비전 보기, 휴식, 잠'으로 빈틈없이 채운 현우 등 다양한 얼굴의 어린이들이 등장합니다. 책은 그들의 눈높이에서 마음을 다하여 바라보고, 함께 호흡하고, 함께 나눈 시간과 경험으로 가득합니다.
작가의 시선에서 섬세하게 관찰하여 기록한 어린이들의 이야기는 때로는 웃음과 감동을 주고, 때로는 어린이를 잊고 살아온 시간들에 대해 반성하게 합니다. 어린이를 대하는 시선과 태도와 마음에 관해 깊이 고민해 보게 하는 이 책은 우리의 세계를 넓힐 수 있는 문이 되어줄 것입니다.

◆ 너는 커서 네가 될 거야. 아마도 최대한의 너일 거야
책 '부지런한 사랑'은 '몸과 마음을 탐구하는 이슬아 글방'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습니다. 이 책의 저자인 이슬아는 '일간 이슬아 수필집', '나는 울 때마다 엄마 얼굴이 된다'를 쓰기도 했습니다.
그녀는 작가로 살기 전부터 수년간 글쓰기 교사로 일해 왔습니다. 사방이 꽉꽉 막힌, 빼곡한 네모칸들로 가득한 원고지보다 유튜브와 축구공과 종잡을 수 없는 수다에 더 이끌리는 아이들에게 작가는 같이 글을 써보자고 말을 겁니다.
아이들이 스스로의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꺼낼 수 있도록 먼저 자신의 일상과 생각에 대해 시시콜콜 털어 놓습니다. 그리고 그날 쓸 글감들을 신중하게 가려 뽑아 그 글감의 의미와 아름다움에 대해 들려줍니다. 이슬아는 그렇게 아이들과 함께 글방의 시간을, 원고지를 채워가기 시작합니다.
이 책에는 아이들이 쓴 재미있고 기발한 문장들이 삐뚤빼뚤한 손글씨의 원고지 그대로 실려 있는데요. 자신이 쓴 원고지를 챙겨갈 생각조차 하지 않고 마당으로 놀러 나가는 아이들의 원고지 아래에 감상평을 묵묵히 남기는 이슬아의 모습도 큰 감동을 줍니다. 작가는 자신의 독후감과 궁금한 것들, 더 듣고 싶은 이야기들을 메모하고, 때로는 그냥 '왕 좋아!'라는 뿌듯한 감탄사를 남기기도 합니다.
실제 아이 한 명, 한 명의 모습을 떠올리며 정성을 다해 적은 작가의 원고지와 아이들이 남기고 간 원고지들을 추려 정리하고, 그 속의 찬란한 문장들과 아이들이 새롭게 발견하고 써내려 간 사물과 세계를 넋 놓고 바라보곤 합니다. 아이들이 또박또박 적어나가는 문장을 보며 작가는 세상 모든 글쓰기는 사랑과 맞닿아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놀라운 순간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대구시교육청 학부모독서문화지원교사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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