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라고 표를 몰아준 게 아닌데…." 20여 년 전 서울로 간 대학 동창 A의 말이다. A는 얼마 전 술자리에서 "지난 총선 때 더불어민주당 후보를 찍었고, 주위 사람들에게도 민주당 선거운동을 했던 게 후회된다"고 털어놨다. 174석이라는 의석을 확보한 거대 여당의 총선 이후 행보가 못마땅한 모양이었다.
A의 말을 종합해 보면 경제와 집값 등 민생은 엉망인데 정부 여당은 정치에만 관심이 있다는 게 불만의 핵심이다. 국민들은 몇 차례 이어진 코로나19 대유행으로 거덜 난 살림살이는 물론 정신적으로도 피폐해진 상황에 이르렀는데도 정부 여당은 공수처법이니, 경찰법, 5·18 광주민주화운동 처벌법, 대북전단금지법, 국정원법 등 민생과는 별 연관이 없어 보이는 법 개정에만 몰두해 있다는 것이다. 그것도 야당 등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나홀로 '입법 폭주'에 나선 모습을 보니 정녕 현재 이 나라의 가장 큰 문제가 무엇인지 의구심이 든다고도 했다.
그는 "이럴 줄 알았으면 야당에도 견제할 수 있는 최소한의 힘을 줬어야 했다.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최근 주위에 부쩍 늘었다"고 전했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문재인 정부의 국정지지도가 철벽으로 믿었던 40%대 밑으로 떨어지고, 여당 지지도 역시 야당에 뒤집히는 결과가 나온 게 A의 말과 전혀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A의 말대로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8일 야당의 비토권(거부권)을 삭제하는 공수처법 개정안을 단독 처리하며 '공룡 여당'의 위력을 실감케 했다. 이날 민주당은 국민의힘이 개정안 처리를 막기 위해 요청한 안건조정위원회를 일사천리로 무력화시킨 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를 열고 7분 만에 단독 처리한 것이다. "도둑질을 해도 절차를 지켜야 한다"는 야당 법사위원들의 항의는 강력한 여당의 힘 앞에서는 공염불에 지나지 않았다. 야당은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을 통한 합법적 의사진행 방해)까지 썼지만, 이마저도 절대적 수적 우위에 있는 여당에는 별 효과가 없어 보인다.
공수처법뿐만 아니다. 거대 여당은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부인·비방·왜곡·날조하거나 허위 사실을 유포하면 5년 이하 징역이나 5천만원 이하 벌금형에 처하는 법안을 법사위에서 단독으로 통과시켰다. 174석이라는 막강한 의석수로 밀어붙였다. 군사분계선 일대에서 대북 전단을 살포하면 처벌하는 법도 단독 처리했다. 국가정보원의 대공수사권을 경찰에 통째로 넘기는 국정원법 개정안, 대부분 기업 경영권을 위협하는 이른바 '경제 3법'도 경제계와 야당의 반발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마음대로 주물러 상임위를 통과시켰다.
흥분한 A는 거대 여당의 폭주로 서거 5주년을 맞은 김영삼(YS) 전 대통령까지 소환된 사실을 청와대는 아는지 모르겠다고 따졌다.
이번에 회자된 YS 제명 파동은 1979년 9월 29일 집권당이던 민주공화당과 유신정우회가 신민당 총재였던 YS의 뉴욕타임스 인터뷰를 빌미로 그의 의원직을 박탈한 사태다. 이 일은 부마항쟁을 불러일으켰고, 10·26 사태로 이어져 유신정권 종식의 촉매제가 됐다.
정부 여당이 윤석열 검찰총장 찍어내기를 힘으로만 밀어붙일 경우 문 정부의 말로(末路)는 유신정권의 퇴보와 같은 결말을 맞을 수 있다는 경고성 메시지다.
윤 총장에 대한 징계위원회가 오늘 오전 10시 30분 법무부에서 열린다. 징계위가 윤 총장의 해임 또는 면직 등 중징계를 의결하면 문 대통령 재가를 거쳐 실행된다. '역사는 언제나 두 번 반복된다. 첫 번째는 비극으로, 두 번째는 희극으로'라고 했던 독일 사상가 칼 마르크스의 지적처럼 역사는 반복될까.
댓글 많은 뉴스
권영세 "이재명 압도적 득표율, 독재국가 선거 떠올라"
이재명 90% 득표율에 "완전히 이재명당 전락" 국힘 맹비난
이재명 "TK 2차전지·바이오 육성…신공항·울릉공항 조속 추진"
이재명, 민주당 충청 경선서 88.15%로 압승…김동연 2위
전광훈 "대선 출마하겠다"…서울 도심 곳곳은 '윤 어게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