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설립 10주년 맞은 수성문화재단… 코로나19 시대에 더 주목

전국 매니페스토 우수사례 경진대회 지역문화활성화 사업으로 최우수상
전대미문의 상황에서 전례 없는 파격 시도… 극과 극은 통한다는 전략

대구 수성구는 올 8월 코로나19 시국이라는 전대미문의 상황에서 기분좋은 상을 하나 받았다. '2020 전국 기초단체장 매니페스토 우수사례 경진대회'에서 받은 상이었다. 그런데 상을 받은 분야가 더 의미있었다. 지역문화활성화 분야였다. 대구 수성구는 이 분야에서 최우수상을 받았다.

지역문화활성화를 주도한 것은 수성문화재단이었다. 이들의 전략은 단순했다. 전례 없는 시대에는 전례 없는 파격이 통할 것이란 확신이었다. 예술인에 대한 선제적 대응으로 공연료의 70%를 선지급하는가 하면 갇힌 공간으로 인식되던 도서관을 복합문화공간으로 끄집어냈다. 지역예술가들에게 일자리를 만들어 그들이 지역문화축제의 주역으로 서도록 한 점도 신의 한 수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코로나19로 갇혔던 지역사회의 탈출구가 돼 준 수성문화재단의 각종 예술프로그램들이 다시금 조명을 받고 있다.

매호천에서 도심 속 작은 음악회가 열리고 있는 모습
매호천에서 도심 속 작은 음악회가 열리고 있는 모습

◆전례 없는 공연료 70% 선지급

코로나19 팬데믹이라는 초유의 상황에서 관행적인 대응책은 속수무책이었다. 올 2월 코로나19 첫 대유행의 확산지가 된 대구는 이후 한 달 동안 6천 명이 넘는 확진자 발생으로 모든 것이 멈춰버린 암흑도시가 됐다.

모든 공공문화시설이 문을 닫고, 문화예술행사는 취소 또는 연기되던 4월 초 수성문화재단은 일자리를 잃어버린 문화예술종사자들을 위한 대응 방안 마련에 나섰다. 수성아트피아와 수성문화재단의 예정된 기획공연 출연 예술가들에게 공연료의 70%를 선지급하겠다는 선제적 대책을 내놓았던 것이다.

'예술인 기 살리기'라는 이름으로 진행된 대응책이었다. 500명이 넘는 문화예술종사자들에게 2억5천만원가량의 금액이 우선 지급됐다. 모든 활동이 중단돼 고립 상태였던 지역 문화예술종사자들에게 조금이나마 숨통을 틔울 수 있는 계기가 됐다.

그 뒤 수성아트피아에서는 비대면 공연사업이 진행됐다. 6월부터 수성못 동편 울루루문화광장에서는 방역지침을 지키며 야외 상설공연이 시작되었다. 대구의 다른 구군이 일체의 야외행사를 자제하고 있을 때였다. 울루루문화광장 상설공연의 시작은 마중물이었다. 대구 전역에서 숨죽이고 있던 문화행사들이 조심스럽게 야외 행사 형태로 재개되기 시작했다.

범어도서관 런치음악회의 한 장면
범어도서관 런치음악회의 한 장면

◆열람실 밖으로 나온 도서관, 독서공간에서 복합문화공간으로

무기한 휴관이 이어지는 가운데 주민들과 만날 방법을 찾던 도서관은 열람실 밖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3월 말 '북 워크스루'로 이용자가 미리 온라인으로 대출을 신청하면 지정된 시간에 도서관을 방문해 대출희망 도서를 수령할 수 있는 서비스를 시작한 것이었다.

4월부터는 한 걸음 더 나갔다. '잠시나마 독서, 잠시나마 일상'이라는 타이틀을 걸고 도서관 앞마당에 책과 방석을 비치해 주민들이 자유롭게 독서와 휴식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을 운영했다. 주민들의 셀프 방역과 거리두기는 일상화된 상태였다. 여기서 동력을 얻어 6월부터는 매주 '정원런치음악회'를 열었다. 점심식사를 마친 직장인과 주민들이 음악을 감상하며 식후 디저트처럼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즐길 수 있도록 한 것이었다.

야외가 비교적 코로나19에서 안전하다는 확신은 '숲으로 간 도서관'으로도 연결됐다. 무학숲도서관에서는 어린이들이 숲 속을 뛰어다니며 놀 수 있는 숲체험프로그램, 예술교육프로그램 등을 운영했다.

생태환경 특화사업도 거침없이 진행했다. 도서관 마당에서 부모와 아이들이 직접 벼나 곤충을 길러보고, 생태공예체험을 하도록 했다. 도서관이 조용한 실내공간을 넘어 주변 산과 숲 전체로 확장되는 인식의 전환을 이뤘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 결과 올해 문화체육관광부 전국도서관 운영평가에서 구립 범어도서관과 고산도서관이 각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을, 용학도서관은 전국 빅데이터 활용 사례에서 최우수상을 받았다.

울루루문화광장에서 행복수성 콘서트가 진행중인 모습
울루루문화광장에서 행복수성 콘서트가 진행중인 모습

◆지역예술가 일자리 창출, 축제 주역으로 나서는 지역예술가들

코로나19 장기화로 경제적 고초를 겪는 이들을 위해 정부는 8월부터 희망일자리사업을 시행하고 있다. 수성구는 공연, 행사 등이 일시에 사라지면서 일거리가 없어진 지역예술가들의 상황도 심각하다고 판단했다. 희망일자리사업 일자리 전체 인원 2천100명 중 약 20%에 해당하는 400여 명을 지역예술가 몫으로 돌렸다. 공연과 미술 분야 각 200명의 예술가들은 지난 4개월간 고정적인 급여를 받으며 일상적인 연습과 공연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이들 중에는 올 상반기 공연이 아예 없어지자 예술가로서의 삶을 접고 다른 일거리로 생계를 유지할 수밖에 없었다는 사연이 적잖았다. 10월 들어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가 완화되자 이들은 결초보은에 나섰다. 실내 또는 야외에서 공연 기회를 만들어 코로나19로 지친 시민들의 마음을 위로할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한 것이었다.

특히 희망일자리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예술가들은 수성구 대표축제인 수성못페스티벌과 수성빛예술제에도 주역으로 참여했다.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가 격상과 완화를 반복하면서 지역축제 대부분이 취소됐지만 야외전시 중심 비대면 축제는 진행이 가능했던 덕분이었다.

시민들 앞에 선보인 대표적 작품이 지난달 4일 수성아트피아 용지홀에서 열린 '치유의 공간–마음을 잇다'라는 공연이다. 이 공연에는 오케스트라, 합창단, 연극·뮤지컬배우, 무용단, 전통음악가, 대중음악밴드 등 200여 명이 무대에 올랐다. 이날 공연에선 최근 수성구 명소 곳곳에서 열린 야외공연 모습을 영상으로 상영하기도 해 눈길을 끌었다. 코로나19 시대를 살아가는 지역예술가의 삶이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변조된 순간이었다.

김대권 수성구청장은 "인류는 전쟁 속에서도 축제를 열고 삶의 희망을 이야기해왔다"며 "시련을 이겨나가기 위해 예술가들이 시민들과 함께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기록해야만 한다"고 했다.

수성못 주변에 설치된 미술 작품들
수성못 주변에 설치된 미술 작품들

◆문화도시로 새로운 도시경쟁력을 준비하는 수성구

수성구는 올 4월부터 본격적인 문화도시 준비에 나섰다. 문화도시의 핵심가치는 시민 주도다. 시민이 주도해 지역공동체를 활성화시키고, 지역 고유의 문화적 가치를 증진해나가는 것이다. 그래야만 문화 창의성에 기반을 둔 지속가능한 성장동력이 생긴다.

이를 위해 수성구는 올 4월 문화도시추진단을 출범시켜 체계적인 조직을 갖춰 나갔다. 7월에는 문화도시 조성계획을 문화체육관광부에 제출했다. 예비도시 선정까지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가고 있다.

수성문화재단도 팔을 걷었다. 마을 기반 활동가는 물론 예술, 생태, 교육, 경제 등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문화활동가들과 접촉하는 등 전방위적 의견 수렴에 나선 것이다.

배선주 수성문화재단 대표이사는 "자기 내면을 바라보고 이웃과의 관계를 생각하면서 자신의 삶과 공동체의 미래를 논의하는 장으로 시민들이 나왔으면 좋겠다"며 "배움과 나눔, 협력과 성장이 이루어지는 마을과 도시, 수성구를 꿈꾼다"고 포부를 밝혔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