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밤이었다.
화톳불이 타고 있었다.
겨울 무덤 주위에선 가랑잎 한 장도 흔들리지 않았다.
나무들이 어둠 속에서 검게 숯이 되고
세상의 모든 시간들이 당나귀처럼 어둔 산맥을 넘어갔다.
얼음이 벤 돌들이 오래도록 강물 속에서 흐느껴 울었다.
어디선가 쩔렁거리며 자꾸만 요령소리가 들렸다.
사람 하나 없이 저문 산맥을 넘어 시간은 모두 어디로 가고 있었다.
아직 한 번도 가닿지 못했던 시간의 뼈
그 냉기의 뼈를 바르며 빙어들이 눈을 뜨고 있었다.
그들은 여름내 건너지 못한 언 강물을 거스르며
자신들의 생애에 대해, 시간에 대해, 죽음에 대해 골똘해져 있었다.
더는 외롭지 않을 방법에 대해 생각하고 한 방울의 눈물로 밤을 지새기도 했다.
세상 어디서나 꽃은 피고 꽃은 졌다.
달밤이었다.
강물 속에선 자꾸만 요령소리가 들렸다.
바람은 아무 데도 보이지 않는데 한 무더기의 억새가 흔들리고 있었다.
발목이 가는 빙어의 옆구리가 물살에 흔들릴 때마다
달빛은 얼음 속에서 하얗게 깊어갔다.
내 친구 병희는 꾀가 많다. 필요하면 무엇이나 거기에 맞게 뚝딱 만들어 낸다. 집 앞에 커다란 저수지 하나가 있는데 겨울이 되면 모기장을 이용해 빙어를 잡는다. 아침 햇살에 모이는 곳에, 그것을 설치해 뒀다가 친구들이 원하면 희고 작고 투명한 빙어를 한 소쿠리 끌어올린다. 빙어는 나에게 슬프고 애처로운 물고기. 이 작고 투명한 물고기는 一時에 잡히고 一擧에 잡힌다.
팔뚝이 굵고 허리가 실했던 그 옛날 청년들은 겨울이 되면 해머를 들고 강가로 나갔다. 머리 위로 번쩍 그것을 들어 올렸다가 있는 힘껏 돌덩이를 향해 내리쳤다. 그러면 뇌진탕에 걸리거나 장 파열을 당한 물고기들이 허옇게 배를 까뒤집고 나와 출렁출렁 강물에 떠내려갔다. 그 무식하고 용감한 행위를 아직 뼈가 덜 여문 우리도 본능적으로 답습하려고 들었다.
세상의 시간은 늘 우리가 원하지 않는 쪽으로 움직이고 있다. 시인에게도 예외가 아니었던 모양이다. 강물 속 빙어처럼 외로움을 견뎌야 했던 겨울밤, 장작불 타오르는 아궁이 앞에 앉아 '나무들이 어둠 속에서 숯이 되'는 과정을 지켜본 것 같다. '얼음이 벤 돌들이 오래도록 강물 속에서 흐느껴 우'는 소리를 들은 것 같다. '자신의 생애에 대해, 시간에 대해, 죽음에 대해 골똘했'던 것 같다.

시인 유홍준:1998년 『시와반시』로 등단. 시집 『喪家에 모인 구두들』 『나는, 웃는다』 『저녁의 슬하』 『북천-까마귀』 『너의 이름을 모른다는 건 축복』이 있다. 시작문학상 이형기문학상 소월시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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