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찬바람이 불어오는 이맘 때 쯤이면 어머니, 당신이 더욱 그리워집니다"
12월 17일은 어머니께서 돌아가신 지 3년되는 날. 당신께서는 자신과 자식들에게는 엄격함으로, 이웃에는 늘 온유함으로 정을 베푸셨다.
너나 할 것없이 먹을 것 없고 춥게 지내던 1960년대말 어린 시절, 모처럼 명절이 되면 떡,고구마 부침 등 먹을 게 생겨 며칠간은 좋겠다 싶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가난한 옆집 할머니에게 장독간 담장너머로 음식을 넘겨 주곤 하셨다. 실제로 그 할머니 댁은 명절음식을 장만하지 못해 솥에 물만 부어 불을 피워 음식을 장만하는 것처럼 보이게 할 정도로 가난하셨다. 어쨌든 우리도 넉넉하지 못한데, 어머니는 항상 나누셨다.
또 그 시절에는 정신박약자 부랑인이 어찌 그렇게도 많았던지. 그런 사람이 길을 지나가면 어머니께서는 꼭 다가가셔서 '집은 오데고?', '밥은 묵었나?' 하면서 말을 거셨다. 나는 그런 어머니가 매우 못마땅하여 한번은 '제발 엄마는 좀 그라지 마라.속으로만 불쌍하다고 생각하면 되지. 내가 창피스러워 죽겠다'하고 역정을 낸 적이 있다. 어머니는 빙그레 웃으시기만 하며, '몸도 저래 가지고 집도 없이 떠돌아 다니는 게 얼마나 불쌍하노'하시던게 생각난다.
고향 경남 마산에서 어머니는 총 8남매를 낳으셨지만, 그 중 4남매가 살고 있다. 어머니는 얼마나 마음이 아프셨을까. 상황이 이렇다보니 우리가족 모두가 항상 우울함의 연속이었다. 어머니가 40세가 되던 해 막내동생을 낳아 잘 성장하면서 어두운 과거의 기억들은 조금씩 잊혀져 갔다.
자식들이 장성해 화목한 가정을 이루고 부모님도 특별히 불편하신 데 없이 평범하지만 행복한 삶을 사셨다. 항상 베푸시고 사려깊고 바른 말씀들을 하시며 살아오신 탓에 우리집과 집앞 공터에는 늘 어머니 연배의 이웃들이 모여 이런저런 이야기 꽃을 피우곤 하셨다. 오랜 객지생활로 부모님을 줄곧 모시지는 못했지만 주말에 아이들을 데리고 본가에 가면 '효자아들 오네. 할매는 참 복도 많다'라며 동네 아주머니들이 인사를 건네곤 했다.
하지만 어머니가 연세 88세가 된 2017년 봄 빈혈로 쓰러지셔서 마산의료원에 입원하셨다. 안타깝게도 그곳에서 위암말기 판정을 받으셨다. 앞으로 3~4개월 정도 남으셨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눈앞이 캄캄하고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기분이었다.
어머니는 오래 전부터 가슴 아래 복부 부분을 손으로 쓸어내리시고, 답답해 하시며 깊은 한숨을 쉬곤 하셨다. 어머니는 젊었을 때 밭일 등을 하시면서 더위를 먹어서 그렇다고 하셨다. 그래서 우리 자식들도 그러려니 하고 넘겼는 데, 위암 때문이었다 생각하니, 진작 어머니를 병원으로 모셔가지 못한 자식으로서 무책임했다는 생각에 참담한 심정이었다. 어머니께는 차마 위암이라고 말씀드릴 수도 없었다.
그 해에는 어머니께서 60년을 넘게 사셨던 마산 회원동 본가가 주택재개발사업으로 철거에 들어가 온갖 애환이 서리고 정들었던 집에서 이사를 하며 눈물을 보이셨다. 이사를 하고는 하루가 다르게 어머니 병세가 악화되어 갔다.
항상 이웃에 베풀며 바르게 살아오신 어머니께 이런 불행이 찾아오다니. 그런 어머니를 바라보면서 불민한 자식으로서의 자책감은 물론 고통스러워 하시는 어머니가 애처롭게까지 보여 속으로 뜨거운 회한의 눈물을 흘리곤 했다. 10월에는 어머니 88세 생신 상도 못차려드릴 만큼 더 악화되셨고. 결국 해를 못넘기고 영영 먼 길을 떠나 가셨다.
부모님 모두 살아계실 때에 좀 더 살갑게, 더 가까이 다가가서 살펴보고 챙겨드리지 못한 아쉬움과 후회만 가득할 뿐이다. 자식이 내려간들 어머니를 어떻게 해 드릴 수도 없다. 그래서 부끄럽고 죄스럽고 무력감만 더 밀려든다.
그런 자식을 불편하신 몸으로 집밖까지 나오셔서 기다리시던 어머니, 해마다 이맘 때쯤이면 '동지지나고 열흘쯤 지나야 날(낮)이 하루에 노루꼬리만큼 씩 길어지니라'고 하시던 어머니, 세월이 흘러도 그리움은 더욱 깊어져 가고, 자식으로서 부족하고 불충했다는 생각에 더욱 부끄러워질 뿐입니다.
어머니, 당신이 가슴에 사무치도록 그립습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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