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문 정권의 속임수

정경훈 논설위원
정경훈 논설위원

1917년 러시아 10월 혁명 이후 레닌이 권력을 틀어쥐기까지의 과정은 속임수의 연속이었다. 레닌과 볼셰비키는 쿠데타로 케렌스키 임시정부를 전복하고 '인민위원회'라는 이름의 새 정부를 만들었지만 전 러시아를 지배할 힘은 아직 없었다. 범(凡)혁명 진영에서 볼셰비키는 아직 소수였다. 레닌이 새 정부는 제헌의회가 구성될 때까지 '임시'로 존재할 것이라고 약속하고, 케렌스키 정부가 11월 12일로 잡은 제헌의회 선거를 예정대로 치름으로써 약속을 지키는 척한 이유다.

선거 결과는 사회혁명당의 압승이었다. 전체 의석(707석)의 과반이 넘는 410석을 얻었다. 볼셰비키는 175석에 그쳐 제2당으로 만족해야 했다. 민주적 절차로는 볼셰비키의 권력 장악이 불가능해진 것이다. 그래서 레닌은 제헌의회를 무력화하기로 했다. 레닌은 제헌의회가 열리기에 앞서 프라우다에 기고한 '제헌의회에 관한 테제'에서 "소비에트 권력을 무조건 받아들이지 않으면 제헌의회는 혁명적 수단에 의해 해산될 것"이라고 협박했다.

1918년 1월 5일 개회한 제헌의회는 그 말대로 됐다. 그러나 민주적 절차로는 절대 그렇게 될 수 없었다. 소비에트 권력을 인정할지를 두고 격렬한 논쟁 끝에 실시된 표결에서 볼셰비키와 사회혁명당 좌파 등 그 협력 세력은 237대 138로 패배한 것이다.('모던타임스Ⅰ', 폴 존슨)

그러자 볼셰비키와 협력 세력은 곧바로 퇴장했다. 그리고 다음 날 새벽 5시 레닌의 명령으로 제헌의회를 포위하고 있던 무장 적위대가 "피곤하다"며 회의를 중단시켰다. 이후 12시간의 휴회가 결정됐지만 다시는 열리지 못했다. 소비에트 중앙집행위원회가 제헌의회 해산을 결정한 것이다.

공수처법 개정안을 통과시키려고 문재인 정권이 구사한 속임수는 이런 사실(史實)을 떠올리게 한다. 야당에 공수처장 비토권을 준다고 약속해 놓고 깨 버렸다. 안건조정위에 열린민주당 의원을 '야당 몫'이라며 집어넣어 개정안을 기습 통과시켰다. 예정됐던 낙태죄 관련 공청회 대신 개정안을 국회 법사위에 기습 상정했다. 그리고 야당의 반대토론 요구를 묵살하고 '기립'으로 통과시켰다.

이로써 우리의 의회 민주주의는 사실상 조종(弔鐘)을 울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수치스러운 막장극은 역사에 영원히 기록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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