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는 아홉을 위하여, 아홉은 하나를 위해 헌신한다."
말처럼 쉽지 않다. 하지만 이런 믿음을 실천한 이도 없지 않다. 일제 식민 치하의 1919년 11월 10일, 중국 땅 길림의 한 중국인 집에 모인 망명 한국인 13명이 이런 맹세를 했다. 대구 사람 이종암과 서상락 등 혈기 넘치는 젊은이였다. 이름 하여 의열단(義烈團)이다. 뒷날 단원 숫자는 늘었지만 처음 스스로 맹세한 20가지 행동강령과 10개 공약을 바탕으로 한 이들의 '7가살'(七可殺) '5당파'(五當破) 활동은 변하지 않았다.
잃은 나라를 되찾기 위해 처단할 조선 총독과 친일파 등 7부류를 마땅히 없애야 했고, 조선총독부 등 5가지 기관을 무너뜨리려 단원 모두 일(一)은 구(九)를 위해, 구는 일을 위해 헌신해야 했다. 그렇게 10년을 싸우다 1929년 해체됐지만 이들 정신은 꺼지지 않고 이어졌다.
바로 윤봉길 의거다. 1932년 4월 29일 중국 상해 홍구(虹口)공원에서 폭탄을 던져 일본 장군 등을 죽이고 세계를 놀라게 했다. 중국 지도자 장개석(蔣介石)은 "중국 100만 대군도 못 할 일을 해냈다니 감격스럽다"고 찬탄했고, 1967년 유족에게 헌시와 함께 '장렬천추'(壯烈千秋)란 휘호를 써 보낸 일도 있다.
이들처럼 독립운동에 온몸을 던진 한국인은 당시 2천만 인구의 10%쯤이 아닐까 하는 추정도 있다. 한국은 이들 헌신과 희생에 외부 세계 응원 등으로 독립의 날을 맞았다. 그리고 올 8월 15일 현재, 비록 그들의 1%를 밑도는 1만6천282명만 겨우 나라의 서훈을 받았지만 그들 희생은 빛나지 않을 수 없다.
이들 소수의 삶이 돋보인 까닭은 불가능의 악조건에서도 2천만 동포의 행복을 위해 가시밭길 독립운동을 스스로의 운명으로 삼은 때문이리라. 이런 사람들 활약은 시대가 바뀌고 세월이 흘러도 여전하다. 역사는 인해(人海)의 기록보다 하나는 아홉, 아홉은 하나를 위하는 소수의 정신을 더 비추는 모양이다.
경북대가 올 총선에서 국회의원 8명을 배출했지만 정작 내년도 나라 예산 지원은 0원이라 낙담인 모양이다. 그러나 그리 놀랄 일이 아니다. 그들 8이 1(모교)을 위해, 1(경북대)이 8을 위해 뭘 할지 고민도 않았는데 무슨 성과를 바랄까. 앞으로도 이러면 숫자는 그냥 숫자일 뿐이다. 이리 여기면 마음은 편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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