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계의 창] 45년전 체험한 화랑도 교육과 그 현대적 의미

김인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선장

김인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선장
김인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선장

교장선생님께서 나를 찾으셨다. 경주의 교육기관에서 교육과정을 성실히 이수하여 반드시 우수상을 받아 오라고 말씀하셨다. 동해안 면 단위 영해고에 다니던 나는 친구 둘과 같이 1975년 가을 어느 날 1주일 과정에 입교를 했다. 설명을 들어보니, 수료하기 전에 시험을 본다는 것이었다. 대구를 포함한 경북 각 고등학교에서 학생 100여 명이 모였다. 당시 고2였던 나는 대학 진학을 꿈꾸고 있었다. 그러나 대학 진학에 대한 확신이 부족했다. 당시 모교의 대학 진학률이 높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수상을 받기 위해 1주일 교육 기간 내내 긴장했다. 명문 K고등학교 학생들과 같은 방에 배정받은 것도 해보자는 의지를 다지는 계기가 됐다. 그 학생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편하게 나를 대했을지 모르지만, 나는 그들을 경쟁 상대로 보았다. 강사들의 강의를 듣고 복습에 복습을 거듭했다. 대부분은 쉬는 시간에 잡담을 하며 지냈지만 나는 그렇게 하지 않고 최대한 시간을 아꼈다. 보초 역할을 하는 당직을 서는 시간에도 쪽지를 만들어 시험에 대비했다.

드디어 5일 차를 마치고 졸업시험을 보았다. 객관식 시험인데 잘 보았다. 수료식에서 기대했던 우수상을 받았다. 단상에 올라가서 메달을 목에 걸었다. K고 친구들도 진심으로 축하해 주었다. 학교로 복귀해 선생님들께 수상 결과를 말씀드리니, 크게 기뻐해 주셨다. 당시 경상북도의 동료 고등학생들과 경쟁을 하면서 시험을 본 것은 처음이었다. 여기서 일정한 성과를 거둔 나는 '하면 된다'는 자신감을 크게 얻게 되었다.

이때 체득한 경쟁하는 방법과 자신감은 그 후 인생을 살아오면서 나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나는 목표가 주어지면 경쟁자들보다 더 많은 시간을 냈고 열성을 보였다. 그때로부터 45년이 지났고 나는 세칭 성과를 거둔 인생이 되었다. 시골 면 단위 고등학교 학생으로서 열등감에 사로잡혀 있던 나에게 평생의 인생을 좌우할 자신감을 심어준 교육기관은 어디인가? 그 기관은 바로 화랑교육원이었다.

경상북도는 신라를 통일한 인재였던 화랑들의 정신을 오늘날을 살아가는 청소년들에게 심어주기 위해 1973년 화랑교육원을 설립했다. 2019년까지 40만 명이 교육을 받았다. 설립 초기에는 필자와 같은 고등학교 학생들을 모아서 교육을 시켰다. 신라시대에 화랑들이 익혔다는 세속오계(世俗五戒)를 가르쳤다. 경주 유역의 산야를 다니면서 호연지기(浩然之氣)를 길러 주었다. 다른 고등학교 학생들과 만남의 기회를 제공하기도 했다. 화랑교육원은 이러한 교육과정을 통하여 충효사상, 신의를 중시하는 행동 방식, 그리고 자신감을 학생들에게 길러 주었던 것이다.

현재 화랑교육원은 고등학생들에게만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은 아니다. 다양한 사람들에게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화랑교육원은 대구경북인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교육의 장으로서 기능해 왔다. 화랑이 익히고 실천했다는 세속오계는 오늘날에도 충분히 효용가치가 있다. 사군이충(事君以忠)과 사친이효(事親以孝)는 사익보다 공익을 우선하고 부모에게 효도하라는 가르침으로 오늘날도 여전히 의미가 있다. 교우이신(交友以信)은 친구들 사이에는 의리가 있어야 한다는 인간관계를 말하는 것이다. 임전무퇴(臨戰無退)는 주어진 일에는 최선을 다해 물러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약 1천400년이 지난 지금에도 변함없는 삶의 자세를 포함하고 있어 오늘날에도 충분히 활용도가 높다. 전통적인 자기 수양과 행동 양식을 지역의 청소년과 시민들에게 전수하는 것은 화랑교육원의 핵심 기능으로 이어져 가야 한다. 경상북도와 대구의 정신적인 정체성이라고 하면 바로 이런 화랑정신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우리만의 정신적인 정체성은 계속 지켜나가야 한다.

이제는 전 국민, 전 세계인을 교육 대상으로 넓힐 필요가 있다. 화랑교육원은 전통적인 화랑정신의 교육에 더하여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요구되는 행동 방식도 교육과정에 가미하면 좋을 것이다. 전국의 학생들이나 외국 학생들과 교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도 순기능이 될 것이다. K-팝(pop), K-방역이 세계로 뻗어가듯이, K-화랑정신이 세계로 뻗어가길 바란다. 그 중심에 화랑교육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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