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문재인 대통령이 "긴 터널의 끝이 얼마 남지 않았다"며 "정부의 방역 역량을 믿어 달라"고 말한 지 나흘 만에 국내 코로나19 신규 확진자가 1천 명이 넘는 최다 기록을 깼다. 방역 당국조차 앞으로 신기록 경신을 예고하고 있다.
정부는 그동안 'K방역' 홍보에만 열 올리다 위기를 맞게 되면 "엄중한 상황" "절체절명의 위기"라며 국민들의 경각심에 호소해 왔다. 확진자 1천 명대를 맞자 대통령이 10개월 만에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를 주재했다. 그저께 나온 구체적인 대책이라고 해봐야 2025년까지 지방 공공병원 20개가량 만들어 병상 5천 개를 확충하겠다는 것이었다.
곧 종식된다는 상황 인식도 가볍지만, '불났는데 소방서 짓겠다'는 식으로 지금의 위기에서 5년 뒤 계획을 말하는 것은 정말 몰염치스럽다. 스스로 '양치기 소년'이 된 정부 아래, 우리 국민들은 그야말로 각자도생(各自圖生) 입장에서 방역을 떠맡게 됐다.
주요 선진국들이 대통령까지 나서 사활을 걸고 있는 백신 확보는 또 어떠한가? 의료계 및 전문가들이 지난 8월부터 백신을 선구매해야 한다고 노래를 불렀지만, 느긋하거나 허우적거려도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는 평가다.
정부가 지난 8일에야 공개한 코로나19 예방 백신 확보량은 모두 4천400만 명분. 내년 2, 3월쯤 한국에 들어오며, 일반인 접종은 내년 하반기에야 가능할 것이라고 했다. 이 가운데 영국의 아스트라제네카와는 정식 계약을 완료했고, 화이자와 존슨앤존슨-얀센(구매 확정서)과 모더나(공급 확약서)와는 구매 물량을 확정했다고 밝혔다.
문제는 아스트라제네카 1천만 명분을 제외한 나머지 제약사와는 실제 도입으로 연결될지가 불확실하다는 점이다. 서민 단국대 의대 교수는 "(이들과 맺은) 구매 확정서와 공급 확약서는 인터넷 쇼핑몰의 '장바구니 담기'와 같아 재고가 없으면 무용지물"이며 "화이자와 모더나에는 내년 말까지 한국에 줄 물량이 남아 있지 않다"고 비판했다. 세계 각국이 '백신 전쟁'에 목을 매고 있어 1년치 이상 계약이 밀린 상황이란 것. 남의 사정 봐줄 수 없다는 뜻이다.
그동안 우리 정부는 코로나19 백신 확보에 있어 안전성과 효능을 최우선으로 고려한다고 수차례 밝혀왔다. 이 또한 작금의 백신 도입 상황을 봤을 때 변명으로 여겨진다. 겨우 붙잡은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은 현재 임상 3상을 통과하지 못한 상태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신뢰를 잃어 연내 승인이 어렵다는 외신 보도까지 나온다.
정부 말대로 백신 안전성을 따지려면 가능성이 높은 백신을 빨리, 많이 확보하는 것이 우선이어야 했다. 선진국들이 다양한 제약사들의 백신을 입도선매한 것도 그 이유다. 선택지가 많아야 중대한 부작용이 나와도 차선을 고를 수 있다. 접종할 백신이 준비된 상황에서 안 맞는 것과 없어서 못 맞는 것은 국가 역량의 차이로 귀결된다.
지난 8일 전 세계에서 처음으로 화이자의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개시한 영국에 이어 미국과 캐나다도 14일 접종이 시작됐다. 바레인, 사우디아라비아, 멕시코, 쿠웨이트도 화이자 백신 긴급 사용을 승인했고 싱가포르도 이달 접종 예정이다.
영미권, 유럽을 차치하고도 일본은 2억9천만 회, 인도 15억 회, 홍콩도 전체 인구의 2배에 해당하는 백신 물량을 확보했다. 중국과 러시아는 자국 백신이라도 있다.
최악의 경우 우리가 맺은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에 차질이 생긴다면, 인도주의 차원에서 백신 공동구매·배분 국제 프로젝트인 '코백스 퍼실리티'를 통한 1천만 명분을 쳐다볼 수밖에 없다. 졸지에 아프리카 빈국(貧國)들과 같은 처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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