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나의 예술, 나의 삶]구상화가 이영철

예술보다는 미술로 뭇 사람들에게 치유의 효과를 듬뿍 주고 싶다는 구상화가 이영철이 자신의 화실에서
예술보다는 미술로 뭇 사람들에게 치유의 효과를 듬뿍 주고 싶다는 구상화가 이영철이 자신의 화실에서 '어른아이를 위한 행복 동화'를 주제로 그림을 그리고 있다.

이영철 작
이영철 작

"너거는 예술 해라, 나는 미술 할란다"는 생각을 갖고 '어른아이를 위한 행복동화'를 주제로 38년째 전업 작가로서 화업을 이어가고 있는 구상화가 이영철(61). 그는 고향 김천에서 고교 시절 문예부와 미술부 동아리 활동을 동시에 했던 재주 많은 청소년이었다. 그의 원래 꿈은 소설가였다. 그 시절 미술대회와 글짓기대회에 나가 상도 많이 탔던 그였지만 왠지 미술대회 수상보다 글짓기 대회의 수상이 어려웠다고 토로했다. 그런 이유에서인지는 몰라도 거부할 수 없는 삶의 관성은 그를 미술 쪽으로 내밀었다.

구미시 인동 50길 양지바른 곳에 자리한 '인동헌(人東軒) 아트 스튜디오'(500㎡)는 이영철이 수차례 화실을 옮겨가며 작업하던 중 1년 전 지인의 도움으로 정착한 작업공간이다. 안에 들면 책장, 캔버스, 물감, 작품 등이 비교적 가지런히 정돈돼 있으며 동화적 구상그림을 그리기에는 안성맞춤의 화실로 여겨진다.

고교 졸업 후 이영철은 가난한 집안 사정으로 인해 진학을 미루고 대구에 와 미술학원 강사로 생계를 잇다가 25살에 늦깎이 학생으로 안동대학교 미술학과(83학번)에 진학한다. 이 해 대입시험 날에 부친이 타계하는 불운을 겪으면서 어려운 가정형편은 더욱 어려워졌다.

어렵사리 대학을 마친 작가는 1988년 신라미술대전 대상 수상, 1989년 대한민국미술대전 구상부문 특선을 거머쥠으로써 전업 작가의 길을 가게 되는 큰 계기를 마련했다.

"신라미술대전 수상 인센티브로 1990년 유럽 미술관들을 둘러볼 기회가 생겼죠. 교과서에서 보던 명화를 직접 감상하면서 그림에 대한 생각이 완전히 바뀌게 됐죠. 특히 기법에서 손등의 핏줄마저 생생하게 느껴질 정도로 발색효과가 탁월한 그림들을 보면서 '아! 이들 방식으로 그려서는 작가로서 살아남기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작가는 귀국 후 전국을 여행하면서 절간의 단청과 불상, 탱화를 유심히 살핀 후 전통 민화에 관심을 갖게 됐고 ▷기법은 서양화 ▷색은 오방색 위주 ▷내용은 동심을 주제로 한 '이영철식 화면 구성법'을 만들어 냈다.

사실 1992년 이영철이 대구 삼덕동에 자리했던 두빛갤러리에서 첫 개인전을 열 때만 해도 그의 화풍은 사실적인 인물화를 중심으로 생로병사를 주제로 그렸었다. 그러던 것이 유럽 미술관 관람 후 배경을 선명한 원색 위주로 한 면분할과 조각보 형태의 그림 등 다양한 실험적 기법을 구사하게 된다. 첫 개인전 후 15년에서 16년 정도 걸렸다.

"당시 주변의 평가는 이영철이 사실적 그림을 잘 그리고 있는데 왜 사서 고생하느냐는 말들이 있었지만 아랑곳 않고 열심히 나만의 화법(畫法)을 구축해 나갔죠. 돌이켜 보면 전업 작가로 살아남은 현재, 그들은 화단에서 사라지고 저는 계속 그림을 그리고 있죠.(웃음)"

이윽고 2008년 무렵 이영철의 현재적 화풍이 제자리를 잡았다. 이른바 '색은 선명하고 원색적으로, 형태는 쉽고 단순하게 그리고, 내용은 순수하고 동화적으로 할 것'이라는 3법칙이 완성된 것이다.

그 사이에 작가의 삶에 우여곡절도 적지 않았다.

어머니가 뇌졸중으로 쓰러졌던 것이다. 병실에서 간호를 하던 작가는 물감통 박스 종이를 뜯어 그 겉면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어느 날 꼼짝도 못하던 불교 신자인 어머니를 위해 작가는 박스 종이에 작은 부처상을 그려 어머니가 볼 수 있도록 창가에 두었는데 이를 본 어머니가 반응을 하게 됐다. 이 순간 작가는 어머니가 좋아했던 꽃을 그려 계속 보여드렸고, 다른 환자들과 의료진들에게도 그림을 선물했다.

"아, 그때 그림이 지닌 치유효과를 실감하게 되는 순간이었죠. 어머니는 입원 43일 만에 부자연스럽지만 걸어서 퇴원하셨는데, 침상 밑을 보니 그동안 그렸던 그림이 200여점 쌓여있었습니다. 이 시기에 저는 어디 가든지 그림을 그려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됐죠."

작가는 이 그림들은 선별해 1997년 대구 맥향화랑에서 '삶 속의 그림들'전을 열었다. 특이한 점은 이 전시의 그림은 그가 못을 이용해 오브제의 선을 묘사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 '그림을 통해 나와 타인이 행복할 수 있다면 그보다 족한 게 있을까?'라는 생활 속 깨달음을 통해 이영철은 '어른아이를 위한 행복동화'의 힘찬 출발을 시작한다. 모든 어른의 마음 한 구석에는 어릴 적 마음 즉 동심이 남아 있다. 작가의 그림은 바로 이 동심을 이끌어 내는 열쇠가 된다. 그리고 그 동심의 오브제들은 보름달, 아기새(일명 콩새), 꽃랑이(아기 호랑이 별칭), 첫 사랑, 연인, 계절로는 봄, 개망초, 구절초 등으로 형상화되어 그의 화면에 등장하게 된다. 특히 그가 '행복동화'를 주제로 한 그림들에는 화면 하단에 수천여 송이의 꽃이 등장하는 데, 이는 2011년 끝내 타계한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의 몸부림이자, 가족을 잃은 슬픔이 결국엔 작가적 자아의 연민이었음을 토로하는 장(場)이기도 하다.

개인적 슬픔과 이를 극복하는 과정에 새롭게 구축된 그의 이러한 '행복동화'그림은 2008년 법륜스님의 책 '날마다 웃는 집'의 표지와 삽화에 쓰였고, 2014년엔 혜민 스님의 베스트셀러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의 개정판 표지와 삽화에도 등장했다.

"이들 그림은 어찌 보면 제 인생의 반성이자 기도문입니다. 살면서 유년시절 들꽃과 같은 행복한 시간을 잊어선 안 된다는 생각에 비록 보잘 것 없는 들꽃이지만 한 송이 한 송이 일일이 붓 터치로 그리다 보면 어느 새 마음이 평화롭게 됨을 느끼게 되는 거죠."

38년째 화업에서 26회의 개인전을 가진 이영철은 지금까지 16년째 벽화 봉사를 하는가 하면 유기동물에 대한 관심을 갖고 자신의 집에서 버려진 강아지 4마리와 고양이 3마리를 키우고 있다. 또 종교단체 사회사업 공익사업에 필요하다면 자기 작품을 무료로 제공하고 있는데, 대구 영생원, 보명학교, 김광석 거리 입구에 이영철의 벽화가 있다.

2012년 '그린 꽃은 시들지 않는다'와 2014년 '사랑이 온다'는 2권의 책을 쓰기도 한 이영철은 현재 가칭 '마음 풍경 속에는 사랑이 있다'는 책명으로 자신의 화집을 제작하고 있다. 이 화집이 발간되는 2021년 봄에 화집발간기념전시회를 열 예정이다.

글 사진 우문기 기자 pody2@imaeil.com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