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 판사가 법률신문에 "칠흑 같은 긴 생머리, 폐병이라도 걸린 듯 하얀 얼굴과 붉고 작은 입술, 불면 날아갈 듯 가녀린 몸"이라며 자신의 페티쉬를 묘사한 칼럼을 써 논란이 되고 있다.
수원지법에 근무하는 A 판사는 14일 법률신문의 '법대에서' 칼럼란에 'fetish'(집착)이라는 제목의 글을 쓰고 "물론 지금은 그와는 거리가 먼 여자와 살고 있지만, 나이가 들어도 이상형은 잘 변하지 않는다. 아직도 생각만 해도 가슴이 설렌다"며 이같이 적었다.
이어 A 판사는 "소년 재판을 하다 보면 법정 안은 물론 밖에서도 어린 친구들을 많이 만나게 된다"며 "생김생김은 다들 이쁘고 좋은데, 스타일이 거슬린다. 호섭이 같은 바가지 머리는 머리카락이 눈을 찌를 듯 말 듯 한 곳까지 길렀다. 줄여 입은 교복은 볼품 없다. 짙은 화장과 염색한 머리는 그 나이의 생동감을 지워버린다"고 묘사했다.
그러면서 A 판사는 "저 친구들(위기 청소년)이 내 눈에 이뻐 보이기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었다. 긴 생머리에 하얀 얼굴은 내 페티시일 뿐이라는 걸 비로소 알았다"며 "강요된 좋음은 강요하는 자의 숨겨진 페티시일 뿐"이라고 글을 마무리했다.
이 칼럼은 본래의 주제나 의도와는 달리 '소년 재판을 담당하는 판사가 위기 청소년들을 성적 대상화해 표현했다'는 비판을 면치 못하고 있다.
한국여성변호사회는 15일 성명을 내고 "소년재판을 담당한 현직 판사가 부적절한 내용의 기명 칼럼을 썼다는데 유감을 표명하며, 판사로서 더욱 신중을 기해 줄 것을 당부한다. 아울러 문제가 될 소지가 다분한 기명칼럼을 아무런 가감 없이 그대로 게재한 법률신문에도 유감의 뜻을 전한다"고 밝혔다.
여성변호사회는 "자신이 '여성'을 바라보는 시각을 드러내는 글로 칼럼을 시작하며, 판사가 판사석에서 성적 대상화를 하고 있음을 유추할 수 있도록 한 것은 그 대상이 미성년자가 아니더라도 충분히 문제가 될 수 있는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다음은 법률신문에 게재된 해당 칼럼 전문.
나의 여자 보는 눈은 고전적입니다. 칠흑 같은 긴 생머리, 폐병이라도 걸린 듯 하얀 얼굴과 붉고 작은 입술, 불면 날아갈 듯 가녀린 몸. 물론 지금은 그와는 거리가 먼 여자와 살고 있지만, 나이가 들어도 이상형은 잘 변하지 않습니다. 아직도 생각만 해도 가슴이 설렙니다.
소년 재판을 하다 보면 법정 안은 물론 밖에서도 어린 친구들을 많이 만나게 됩니다. 족히 25살 이상 차이 나는 그 친구들을 만나면 나는 할 말이 없습니다. 소녀시대 이후 내가 구별할 수 있는 연예인도 없습니다. 칭찬도 훈계도 한두 번이지요. 뭐가 잘 사는 건지는 나도 모릅니다. 대신 스타일은 한눈에 들어옵니다. 생김생김은 다들 이쁘고 좋은데, 스타일이 거슬립니다. 호섭이 같은 바가지 머리는 머리카락이 눈을 찌를 듯 말 듯 한 곳까지 길렀습니다. 줄여 입은 교복은 볼품 없습니다. 짙은 화장과 염색한 머리는 그 나이의 생동감을 지워버립니다. 그래서 말합니다. "염색도 파마도 하지 않은 긴 생머리가 이쁘다. 머리는 시원하게 넘기든지, 짧게 자르는 게 단정해 보인다. 바지, 치마 줄여 입지 마라." 그렇게만 하면 정말 이뻐 보일 것 같은 안타까움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다 문득 깨닫는 게 있었습니다. 저 친구들은 내 눈에 이뻐 보이기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닙니다. 저 친구들도 자기만의 스타일이 있을 터, 제가 좋아하는 스타일로 꾸미고 거기에 만족하면 그것뿐입니다. 아무리 재판하는 판사라고 해도 그걸 뭐라고 할 수는 없는 법입니다. 소싯적 천지간 분별 못 하고 체 게바라처럼 살겠다며 반항과 똘끼 충만했던 시절도 있었는데, 단정(端正) 운운하던 그 옛날의 학주의 모습은 이제 내 모습이 되었습니다. 긴 생머리에 하얀 얼굴은 내 페티쉬일 뿐이라는 것을 비로소 알았습니다.
세상에는 좋은 것도 있고 나쁜 것도 있지만, 그것은 오직 '나에게만' 좋고 나쁠 뿐입니다. 언제, 어디에서나 통하는 좋음과 나쁨 같은 건 없습니다. 재판은 옳고 그른 것을 가릴 뿐 좋은 것을 강요하는 곳이 아닙니다. 소년재판도 가사재판도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강요된 좋음은 강요하는 자의 숨겨진 페티쉬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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