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화봉 너머
얼어 있던 별들은 다 녹았을까
터널을 빠져나오자
하얗게 날아오르는 사과꽃
지난겨울에 올라간 나는
하산 않고
군데군데 하얗게 남았는데
곧 기차는 도착하고
백 년 후 네가 뛰어오고
허물어지는 언덕
묘지 방향으로
기차가 떠나고
홀로 남은 역
입 꽉 다문 대합실
나무의자 옹이에
오래된 사과 냄새가 났다
오래도록 머릿속에 남아 사라지지 않는 곳이 있다. 희방사역이 그런 곳이다. 청량리에서 밤 기차를 타고 내려올 때, 성에 낀 차창에 젊은 내 얼굴을 비춰보며 얼마나 많이 나는 쓸쓸했던가. 있는 힘을 다해 밤 기차가 죽령을 넘을 때 어떤 아득한 곳으로 내 인생도 가버렸으면 했다.
지난 12일은 희방사역이 역사 속으로 사라진 날이다. 지나치기만 했을 뿐, 한 번도 내려보지 못한 역. 주섬주섬 풍기읍 사람들이 선반 위의 짐을 내리던……. 희방사역은 이제 기억 속 그리움의 대상으로만 존재할 것이다.
연화봉 위의 별들은 이제부터 제대로 얼어 더 빛날 것이다. '터널을 빠져나오자 하얗게 날아오르는 사과꽃'과 '입 꽉 다문 대합실//나무의자 옹이에/오래된 사과 냄새'. 소백산 천문대야. 잃어버린 내 청춘의 별들아. 새봄이 오면 내 죽령 옛길을 다시 한번 가보리라.

시인 유홍준:1998년 『시와반시』로 등단. 시집 『喪家에 모인 구두들』 『나는, 웃는다』 『저녁의 슬하』 『북천-까마귀』 『너의 이름을 모른다는 건 축복』이 있다. 시작문학상 이형기문학상 소월시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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