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가 평범하면서도 소중한 일상을 삼켜버린 한 해였다. 수험생은 불안한 마음을 스스로 다스리며 힘들고 고통스러운 시간을 버텨내야 했다. 그들은 허허벌판이나 칼날 바람 휘몰아치는 산꼭대기에 홀로 내버려졌다는 생각도 많이 했을 것이다. 수험생을 뒷바라지하는 부모님 역시 막막하고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냈다. 시련의 시간을 슬기롭게 견뎌 낸 수험생과 학부모님께 힘찬 박수를 보낸다.
사뮈엘 베케트의 희곡 '고도를 기다리며(Waiting For Godot)'에서 주인공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은 나무만 한 그루 달랑 서 있는 시골길에서 고도를 기다린다. 그들이 기다리는 고도는 어떤 구체적인 대상이 아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하염없이 기다린다. "아무도 오지도, 가지도 않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정말 끔찍하다"라고 에스트라공은 푸념한다.
이 희곡의 중심 주제는 '기다림'이다. 이 연극을 처음 본 사람들은 고도란 신을 의미한다고 생각했다. 베케트는 그렇게 생각하지 말라고 했다. 미국의 어느 교도소에서 이 극을 공연했을 때, 수감자들은 고도란 바깥세상과 자유를 의미한다고 말했다. 지금, 이 순간 전 세계 인류에게는 코로나19의 종식이 고도일 것이다. 부모에게는 내 아이가 가고 싶은 대학에 입학하는 것, 자녀가 소망하는 괜찮은 일자리를 구하는 것이 고도일 수 있다.
이 땅의 부모와 자녀는 나무만 한 그루 달랑 서 있는 무대에서 올지 안 올지도 모르는 고도를 막연히 기다리는 극 중 두 주인공과 같다. 블라디미르는 "사람들은 서서히 늙어가고, 하늘은 우리의 외침으로 가득하다. 그러나 습관은 우리의 귀를 틀어막는다"라고 절규한다.
무의미하고 부조리한 세계를 표현하는 이 명대사는 수험생을 둔 가정에 그대로 적용된다. 부모와 자녀가 지금 기다리는 것은 영혼을 구원해 주는 신이나 엄청난 재물 같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그들이 기다리는 고도는 예측 가능한 대입제도, 졸업 후의 취업과 결혼 같은 기본적이고 근본적인 것들에 대한 소망이다. 이제 우리 사회는 부모의 가슴앓이와 젊은이들의 처절한 절규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자녀를 양육하는 부모와 자녀가 부조리극의 주인공이 되게 해서는 안 된다.
인류 역사에서 아주 예외적인 몇몇 시기를 제외하고는 희망이 절망보다 더 압도적인 힘을 가지던 시대는 드물었다. 어느 시대나 인륜과 도덕은 무너졌고 전체적인 상황은 어둡다고 생각했다. 몇 세대 후의 사람들이 이 시대를 돌아보며 "그때야말로 엄청난 기회가 폭발적으로 생겨나던 시대였다"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코로나19 이후 세계는 여러 면에서 달라질 것이고 새로운 기회를 많이 제공할 것이다.
이제 한번 명문대에 입학하면 죽을 때까지 특혜가 보장되던 시대는 지나갔다. 모든 사람은 죽을 때까지 공부하며 끊임없이 자신을 업그레이드해야 한다. 자신의 수능 성적에 맞는 대학에 진학해서 차근차근 실력을 쌓아가면 어디에나 항상 길은 있다고 믿어야 한다.
'고도를 기다리며'는 '무엇을' 기다리느냐보다는 '어떻게' 기다리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을 암시한다. 대학은 이미 완성된 무엇을 얻는 곳이 아니다. '어느 대학'보다는 '어떻게 내 꿈을 실현할 것인가'를 먼저 생각하며 진로를 탐색하는 지혜가 필요한 시간이다.
윤일현 지성학원 진학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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