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동 사진집/디자인시소 펴냄
"연구실에 있을 때 가끔 동물실험에서 얻어진 세포조직을 전자현미경으로 찍었다. 조직을 고정하고 얇게 썬 후 염색해서 만 배, 때로는 십만 배의 배율로 사진을 찍는다. 세포 조직 내에 있는 수많은 기관들 중 보고 싶은 부분만을 보기 위해서다. 나는 이렇게 길들여졌다."(작가노트 중에서)
육안으로는 잘 보이지 않는 미시세계를 들여다보면서 터득한 남다른 관찰력은 플라타너스의 표피가 생장하고 벗겨지고 다시 새 표피가 생기는 가운데 새겨진 '자연의 명화와 조각' 작품을 찾게 했다.
평생 식품가공학 연구에 매진했던 김순동(75) 대구가톨릭대 식품공학과 명예교수가 사진집 'PLATANUS 2020'를 펴냈다. 사진집은 크게 ▷여인 ▷사랑 ▷인간 군상 등 3부로 나뉘어져 360여장의 근접촬영사진이 실려 있으며, 플라타너스가 그야말로 화가인 동시에 조각가요 환경보호가임을 웅변하고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거리를 스쳐가도 결코 찾지 못했던 아름다운 여인들의 모습, 사랑하는 가족이나 아기를 업은 엄마, 깊은 포옹을 나누는 연인의 형상, 대가의 솜씨를 뛰어넘은 나신 등 플라타너스는 자신의 몸을 캔버스 삼아 마음껏 상상의 나래를 펴고 있었으며, 김 명예교수는 이를 카메라 렌즈에 포착하게 됐던 것이다.
"2010년 퇴임 후 사진을 취미 삼아 카메라를 들고 자주 자연 풍경을 담곤 했는데 어느 날 집에서 나와 거리를 걷고 있는데 가로수인 플라타너스의 표피에 생긴 묘한 그림들이 제 눈에 확 들어오더라고요."
자연과학자로서 늘 미시 세계에 대해 관찰을 해온 그의 습관은 사람들이 무심코 지나쳤던 플라타너스 표피의 흉터가 빚어낸 자연의 페인팅에 시선을 빼앗기고 했다. 이후 김 명예교수는 '이것이다' 싶어 계속 플라타너스 표피를 살피게 됐고 그때마다 찾아낸 형상들을 30~50cm의 근접 촬영방식을 통해 촬영한 것이 지금까지 약 1천여 점이 된다. 사진집은 이 중 360여점을 추려 책으로 엮었다.
그렇다면 플라타너스 표피에 그려진 형상들은 어떻게 생기게 된 걸까?
대개 나무의 외피 성분은 섬유소가 주류이며 가장 바깥층은 왁스와 코르크로 구성돼 있다. 나무가 성장하면서 나이테를 얻게 되면 먼저 생긴 껍질은 허물을 벗는 데 이때 덜 떨어진 이전 껍질과 새로 생긴 껍질이 중첩되면서 각각의 화학적 성분이 뒤섞이게 된다. 특히 섬유소와 왁스, 코르크는 태양광선에 견디는 힘과 눈비를 맞았을 때 흡수성이 제각각이다. 이 중 코르크는 흡수성이 뛰어나고 왁스는 기름성분으로 물과 섞이지 않고 흘러내리게 된다. 바로 이러한 화학 작용이 빚어낸 흔적이 기괴한(?) 무늬를 만들어 내는 셈이다.
이뿐만 아니라 나무껍질이 만든 형상은 육안과 카메라 렌즈를 통해 보면 확연히 차이가 난다. 계절에 따라 달라지고 1, 2년 지나면 그 흔적들이 사라지고 새로운 형상이 드러나기도 한다. 그는 또한 나무가 그린 명작들을 찾기 위해 해당 나무를 오랫동안 관찰하기보다 과학자적인 직관으로 자연의 그림을 찾아낸다.
김 명예교수는 비단 플라타너스 외 벚나무, 배롱나무, 모과나무가 그려낸 그림도 추가했다. 특히 배롱나무가 그린 지름 10cm 크기의 명화, 두 연인이 꼭 껴안고 있는 모습과 벗겨진 플라타너스 껍질에 새겨진 여인상은 그가 가장 아끼는 작품이기도 하다.
'함께 걷는다/맞댄 어깨에서 따뜻한 열기가 전해온다/가슴 속에 얼굴을 품는다/심장박동을 느낀다/작년 봄에 보이던 모습이/올 봄에는 사라지고 없다'
김 명예교수는 플라타너스 껍질이 그린 어여쁜 여인의 모습을 찾아 오늘도 카메라를 매고 길을 나선다. 혹 시간을 타고 사라졌던 그리운 여인이 다른 나무에 다시 재현되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135쪽, 비매품. 문의 010-3527-7462
PLATANUS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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