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달리며 쓴 주행기(走行記)] 스스로 돕는 자들, 살아서 다시 만나자

함께 달리는 '구보'라면 5km, 10km도 어렵지만은 않아
K방역의 핵심은 자율방역… 대구가 보여준 연대의식 되살펴야
정부 탓해봤자 효용 없어… 서글프지만 자율방역에 더욱 철저히

올 1월 5일 대구 두류공원에서 열린
올 1월 5일 대구 두류공원에서 열린 '2020 전국새해알몸마라톤대회'에서 참가자들이 새해 소망과 목표 등을 가슴에 적고 힘차게 출발하고 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2021년 1월에는 이런 모습을 볼 수 없게 됐다. 성일권 기자 sungig@imaeil.com
김태진 문화부 기자
김태진 문화부 기자

무릎 연골이 닳아 없어질 때까지 달리기를 멈추지 않는다는 러닝마니아들도 야외에서 뛰는 걸 포기할 때가 있다. 크게 세 가지 경우다. 태풍(비바람 포함), 눈보라(압도적 추위), 미세먼지다.

겨울은 추워야 제격이겠지만 압살하듯 몰아치는 추위에는 방법이 없다. 특히 엄동설한의 공포는 시각보다 청각에서 극에 달하는데 손 끝, 발 끝, 귀 끝 말초신경을 일일이 할퀼 것 같은 바람소리, 단말마의 비명 같은 '호오오~', '휘잉~' 따위에 오금이 저려 무릎부터 꺾인다. 뛰고 싶어 도가니가 펄펄 끓는 이들이 마침내 향하는 곳은 러닝머신이다.

그런데 러닝머신 자리 확보 눈치싸움이 그리워질 때가 올 줄이야. 언젠가 벌어질 일이 아니길 바라며 조금만 참으면 좋아질 거라던 기대는 주문(呪文)에 머물고 말았다. 웬만한 체력단련실에는 빗장이 걸렸다. 러닝머신 자리 확보 눈치싸움 대신 코로나19와 싸움이 확전일로이기 때문이다.

무엇이든 '비접촉'인 시대다. 새해를 알리던 대구알몸마라톤도 언택트 대회다. 달리는 곳이 어디든 운동장이 된 것이다. 좋게 말하자면 그렇고, 다르게 표현하면 '각자 알아서'다. 새해 복도 각자 알아서 받아가고, 기록도 각자 인증해 자긍심으로 넣어두게 된다.

'독립심 고취, 셀프 천하'. 코로나19 시국이 거둔 '뜻밖의 수확'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0월 5일(현지시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치료를 받던 메릴랜드주 베데스다의 월터 리드 병원을 퇴원해 백악관으로 돌아온 뒤 블루룸의 트루먼 발코니에 나와 쓰고 있던 마스크를 벗어 양복 상의 주머니에 넣고 있다.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0월 5일(현지시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치료를 받던 메릴랜드주 베데스다의 월터 리드 병원을 퇴원해 백악관으로 돌아온 뒤 블루룸의 트루먼 발코니에 나와 쓰고 있던 마스크를 벗어 양복 상의 주머니에 넣고 있다. 연합뉴스

◆혼자가 아니야

그럼에도 우르르 뛰며 함께 맛보던 '땀맛'에 비할 수 없다. 특히 완주를 목표로 삼는다면 함께 뛰는 건 큰 동력이다. '구보'와 '조깅'의 차이가 좋은 예다. 달린다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같은 둘이다. 간단히 구분하자면 구령 붙여 뛰는 게 '구보', 개별적으로 자유롭게 뛰면 '조깅'이다.

심각한 부상이 아니라면 구보에서 낙오는 없다. '집단의 힘'이다. 함께 달리면 5km, 10km도 거뜬한 이유다. '나 혼자 이러고 있다'고 체념할 시간을 주지 않는다. 자신과의 싸움에 가까워 힘들면 걸어도 되는 조깅과 대비되는 지점이다.

코로나19 시국의 우리는 함께 구보에 나선 이들에 가깝다. '우리 모두 이렇게 견디고 있다'는 동질감이 보이지 않는 연대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함께 가면 무난히 완주할 수 있는 구보 코스가 자칫 죽음의 랠리로 바뀌기도 한다. '선착순'이라는 호령이 없었는데도 제멋대로 뛰기 시작하는 경우다.

지난달 13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백악관 인근 BLM(흑인 목숨도 소중하다) 광장에서 열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반대 집회 참가자가 트럼프 지지자와 설전을 벌이며 충돌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 지지자들이 하루 뒤 워싱턴DC에 모여 트럼프의 선거 불복 주장에 동조하는 대규모 시위를 벌일 예정인 가운데 트럼프 반대 집회도 예고돼 있다. 연합뉴스
지난달 13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백악관 인근 BLM(흑인 목숨도 소중하다) 광장에서 열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반대 집회 참가자가 트럼프 지지자와 설전을 벌이며 충돌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 지지자들이 하루 뒤 워싱턴DC에 모여 트럼프의 선거 불복 주장에 동조하는 대규모 시위를 벌일 예정인 가운데 트럼프 반대 집회도 예고돼 있다. 연합뉴스

미국이 그렇다. 확진자 수가 1천800만 명에 육박하고 있다. 29만 명 넘게 숨졌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전사한 미군 숫자(29만1천500여 명)를 넘어섰다. 지난 4월 백악관 코로나 대응팀이 사회적 거리두기 유지를 전제로 예상한 사망자수가 24만 명이었다. 그 예상수치마저 넘은 것이다.

당연한 수순이다. 백악관의 경고가 있던 4월까지도 미국은 마스크 쓰기를 강제하지 않았다. 외려 '마스크 안 쓰기'를 자유의 표상인 듯, 인권의 상징인 양 여긴 이들이 적잖았다. 아무리 정부가 싫어도 위험 경고는 받아들였어야 했다.

치명적인 위험을 담보로 자유와 인권의 이름을 앞세우는 건 무슨 만용인가. 백신 개발에 성공할 자국 기술을 확신한 것이었을까. 그래도 1천800만 명이라니. 정부 권고에 콧방귀를 뀐 대가치고는 혹독하다.

지난 2월 24일 오후 6시 40분쯤 대구 중구 동성로의 중앙파출소 삼거리 일대가 차량과 오가는 사람이 뜸하다. 연합뉴스
지난 2월 24일 오후 6시 40분쯤 대구 중구 동성로의 중앙파출소 삼거리 일대가 차량과 오가는 사람이 뜸하다. 연합뉴스

◆스스로 돕는 자가 살아남는다

대구가 코로나19 1차 대유행을 어떻게 버텨냈는지 돌이켜본다. 대구의 봄은 한 단어로 말해 '칩거'였다. 동성로는 텅텅 비었고, 대구 간선의 중심인 반월당 통행 차량 수를 셀 정도였다. 마스크 쓰기는 생활이었다.

대구시민들의 자발적 방역 동참을 전 세계는 존경의 시선으로 타전했다. 그게 'K방역'이라는 이름으로 퍼진 것이었다. 인구 250만 명 도시가 자율적이고도 체계적으로 자제하고, 서로를 북돋우며 넘긴 위기였다. '자율방역'이었다.

대형 재난에 대비하던 일본이 떠올랐다. 자조와 자율을 유독 강조하던 이들이었다. 10년 전 취재수첩을 뒤적였다.

"과연 정부가 어느 선까지 우리를 도울 수 있을까요? 대지진을 겪으면서 '내 안전은 내가 지켜야 한다'는 걸 각인했습니다."

"재해는 예측이 불가능했습니다. 불가능한 부분을 정부에게 책임지라고 할 수 있을까요? 대형 재난이 일어났을 때 언제까지 정부의 도움을 기다릴 수 있을까요?"

지진 등 자연재난이 비일비재한 일본은 '자율방재'를 신념처럼 떠받든다. 지역자치방재 개념이다. 쉽게 말해 '내 목숨은 내가 알아서'다. 내가 살면 이웃을 구조하는 데 간다. 정부가 처리해줄 때까지 기다릴 새가 없다는 것이다.

(이랬던 일본이 코로나19에 무너져 가는 것은 아이러니다. 감염자 수가 19만 명을 넘었다. 올림픽 분위기 다잡으려 코로나19 확산세 쉬쉬하다 자국민을 잡고 있다. 지도자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느낀다.)

미국 뉴욕시 퀸스의 롱아일랜드 주이시 메디컬 센터에서 지난 14일(현지시간) 이 병원의 간호사 샌드라 린지가 미셸 체스터 의사로부터 화이자·바이오앤테크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을 맞고 있다. 린지 간호사는 미국의 첫 코로나19 백신 접종자로 기록됐다. 연합뉴스
미국 뉴욕시 퀸스의 롱아일랜드 주이시 메디컬 센터에서 지난 14일(현지시간) 이 병원의 간호사 샌드라 린지가 미셸 체스터 의사로부터 화이자·바이오앤테크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을 맞고 있다. 린지 간호사는 미국의 첫 코로나19 백신 접종자로 기록됐다. 연합뉴스

◆기약없는 자율방역

끝이 보이지 않을 것 같던 나락, 코로나19는 올해 신춘문예에 도전한 문청(文靑)들의 소재로 광범위하게 활용됐다. 최근 예심을 마친 매일신문 신춘문예 응모작에는 신종 역병에 대처하는 우리의 모습, 삶의 근원에 대한 질문, 그리고 일그러진 욕망이 묻어나왔다.

기성작가들도 다르지 않다. 66회 현대문학상 수상작인 최은미 작가의 '여기 우리 마주'는 코로나19로 자가격리된 주인공과 코로나19에 감염된 그의 지인이 겪은 올해 봄을 소재로 삼았다.

'이미 3월부터 단톡방에서 서로의 동선을 공유하고 있었다. 아이들의 학원과 학습지 방문교사의 지국 상황, 주말의 외식 장소, 남편의 출장지까지도. 해도 될지, 가도 될지, 누군가를 집에 들여도 될지, 누군가는 아무래도 좀 위험하지 않을지 매일매일 서로를 확인했다... (중략)

... 보건소에서 연락을 받았을 때 나는 은채한테 제일 먼저 이 말을 했다. 친구들한테 말하지 마 은채야. 아무한테도 말하지 마. 진단 키트가 든 보건소 종이가방을 들고 누군가 초인종을 누른다. 나를 부른다. 이나리님! 이나리님! 자가 격리중인 이나리님! 나는 울 것 같은 목소리로 말한다. 좀만 작게 불러주시면 안 될까요. 앞집 윗집 아랫집에서 다 들을 것 같아요.'

(최은미 作 '여기 우리 마주' 中)

소설도 현실도 모두 두려워하고 있다. 공포 요인으로 감염에 따른 신체적 후유증이 우선 꼽히겠지만 실은 사회적 분리와 배타적 낙인이 심층에 있는 원인이다. 이런 만인의 만인에 대한 배제와 격리는 시간이 갈수록 당연하다는 듯 공고해지고 있다. 자율방역 외에 답이 안 보이기 때문이다.

매일희평.김경수화백
매일희평.김경수화백

우리 정부는 이런 안타까운 인정과 사정들에 하나하나 대응할 수 없다. 맞서 싸울 무기도 마땅찮다. 국내에 백신은 없다. 마스크 착용과 손 씻기 주문이 연일 강조된다. 틀린 말은 아니나 정부에 종주먹을 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뼈아프지만 이게 현재의 우리다.

코로나19 1차 대유행을 기적처럼 버텨낸 대구에서도 최근 일주일 사이 150명 이상 확진자가 생겼다. 전국적으로도 15일부터 1천 명 선을 계속 넘고 있다. 이젠 전국이 전쟁터다.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아군이냐 적군이냐, 의인이냐 악인이냐, 남녀냐 노소냐를 재어가며 틈입하지 않는다. 서글프지만 자율방역 외에 답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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